베를린은 벤야민의 도시인가

by 골목길 경제학자

베를린은 벤야민의 도시인가


어제 오전, 베를린 아카데미 오브 아츠(Akademie der Künste)에서 열린 전시 "What Stands Between Us"(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을 관람했다. 이 전시는 유럽사진의 달(EMOP Berlin 2025)의 일환으로,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구조적 조건을 성찰하고 있다. 전시 입구에는 벤야민의 유명한 인용문이 새겨져 있었다: "중대사건과 소소한 일을 구분하지 않고 사건을 이야기하는 연대기 작가는 다음과 같은 진리에 따라 행동한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것 중 잃어버려야 할 것은 없다."



전시는 AI와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에 이 문장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고 있었다. 오늘날 끊임없는 정보의 흐름 속에서, 사진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우리 사이에 서 있는지, 그리고 분열을 심화시키는 도구인 동시에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지를 20여 명의 작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었다. 특히 Steffen Mau가 말한 "변화의 소진"과 위기로 가득 찬 사회에서, 이미지를 통해 뉘앙스 있고 섬세한 방식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전시장 곳곳에는 국경, 이념, 기억, 소통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과거가 현재 속에서 번쩍이며 통찰의 순간을 제공한다"는 벤야민의 역사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전시의 일부로, 발터 벤야민의 아카이브 자료와 그의 도시 사유를 조명하는 섹션이 마련되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Das Passagen-Werk, 1927-1940)를 준비하며 남긴 메모와 기록, 그리고 『베를린의 유년시절』(Berlin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 1932-1938)에 등장하는 장소들의 이미지는, 도시를 기억과 욕망, 그리고 권력의 교차로로 본 그의 관점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벤야민은 베를린에서 성장하며 산업화와 근대화의 흐름을 몸으로 경험했다. 그의 도시 인식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사회적 구조와 인간 감각의 변화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었다. 벤야민에게 도시는 '변증법적 이미지'가 생성되는 공간이었다. 그가 말한 변증법적 이미지란 과거와 현재가 한순간에 번개처럼 만나 새로운 인식을 생성하는 순간적 이미지다. 이번 전시는 벤야민이 도시를 삶의 배경이 아니라, 인간 경험을 조직하는 적극적 매개로 이해했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벤야민의 고민과 현대 도시문화

발터 벤야민은 도시를 분석하면서, 근대 자본주의와 대중 소비문화의 심화 과정을 비판적으로 관찰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그는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상품 욕망의 결정체로 해석했고, 플라뇌르(flâneur)를 통해 도시를 거닐면서도 상품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 존재를 포착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제시한 '아우라(Aura)' 개념은 기술복제시대에 사라져 가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더 넓게는 도시 경험에서 상실되는 진정성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그가 근대 도시의 상업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데에는 사회주의적 세계관이 깊게 작용하고 있었다. 벤야민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아래,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도시 풍경을 비판하는 데 주력했으며, 인간 소외와 기억 상실을 주요 문제로 설정했다.


벤야민의 관점은 당대의 자본주의 도시를 분석하는 데 선구적 통찰을 제공했다. 오늘날에도 글로벌 자본이 '지배하는' 소비 지향적 공간, 상업적 로고로 점철된 거리, 균질화된 도시 이미지들은 벤야민이 비판했던 흐름을 강화시키고 있다. "What Stands Between Us" 전시가 지적하듯이, 현대 사회의 양극화와 분열은 도시 공간에서도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국가주의 경향, 강화된 국경, 사회적 단절과 같은 현상들은 도시 공간에서의 공동체적 경험을 위협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적지 않은 벤야민 기념 장소가 있다. 호텔 근처에 위치한 벤야민 광장도 그중 하나다. 베를린 명품 거리인 쿠담(Kurfürstendamm) 바로 뒤에 조성된 현대식 광장이다. 발터 벤야민플라츠(Walter-Benjamin-Platz)의 건축적 구성과 명칭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연상시킬 여지를 남긴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아케이드 형태를 띠고 있어, 벤야민이 분석한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광장에는 벤야민을 기리는 공식적인 안내판이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후 검색을 통해 광장 바닥에 벤야민의 인용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인용구들은 모두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발췌된 문장들이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 광장을 도시 공간과 소비문화에 대한 벤야민의 비판적 통찰을 직접 반영한 장소로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광장이 베를린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중심지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는 점은, 그가 비판했던 세계와의 긴장 관계를 드러낸다.


크리에이터 관점에서 본 벤야민

현대 관점에서 보면, 벤야민은 도시 안에서 생성될 수 있는 창조적 가능성까지 충분히 조명하지는 않았다. 그의 도시 진단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현대 도시문화의 또 다른 주체로 부상한 창의적인 소상공인과 도시 크리에이터들의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도시문화는 더 이상 대자본만의 결과로 환원될 수 없다. 독립 예술가와 디자이너, 골목길의 독립 상점, 지역 기반의 소규모 브랜드, 도시의 비어 있던 공간을 재해석하는 크리에이터 그룹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들이 새로운 도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간을 재구성하고 삶의 리듬을 창조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할 때, 벤야민의 도시 분석은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지만, 크리에이터 관점에서는 보완이 필요하다. 크리에이터 타운은 상품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성과 창조성이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장이며, 이러한 창의적 실천은 벤야민이 제기했던 기억과 소외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대표적인 크리에이터 타운 성공 사례가 베를린이다. 베를린은 냉전 종식 이후 다양한 창작자 집단과 자생적 커뮤니티가 도시 재구성에 참여한 대표적 도시로 부상했다. 베를린-미테(Mitte) 지역의 하커셔 훼페(Hackesche Höfe)는 오늘날 독립 디자이너, 수공예 장인, 문화 기획자들이 모인 창조적 공간으로, 인디 제작자와 메이커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도시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곳의 웹사이트(https://www.hackesche-hoefe.de/)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복합 문화공간은 예술, 문화, 작업, 상업이 공존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크리에이터 타운이 벤야민 도시를 구할 수 있을까

베를린의 크리에이터 타운이 벤야민이 고민한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1990년대 이후 베를린의 크리에이터 타운들은 반복적인 위기에 빠졌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대표되는 공간의 상업화와 소득 격차 심화가 크리에이터 타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것은 베를린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도시의 공통된 문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벤야민이 보았던 자본주의 도시의 문제는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의 사회주의적 배경을 고려할 때, 그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공동체적 도시를 제안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의 맥락에서 본다면, 꼭 사회주의를 경유하지 않더라도 해법은 존재한다. 크리에이터 타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창의적인 소상공인과 도시 크리에이터가 성공할 수 있는 온라인, 오프라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지역 기반의 경제와 문화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면, 그들의 도시가 지속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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