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대구경북 투어의 3번째 방문지는 영덕군 영해면이다. 건축 주도 지역발전의 실제 현장이다.
소멸지역 군청소재지나 이에 상응하는 대규모 면소재지에 건축마을과 로컬 메이커스페이스를 양축으로 로컬 브랜드 생태계와 크리에이터 타운을 구축하자는 것이 건축 주도 지역발전론이다.
건축마을 중심의 지역재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서 시도됐고, 현재 진행되는 사업 중에 가장 이 모델에 근접한 사례가 바로 경상북도가 청년 유치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영덕군 영해면 이웃사촌마을 사업이다.
영해면 이웃사촌마을 사업이 다른 지역 활성화 사업과 다른 이유는 선행된 '근대역사문화거리 조성사업'과의 구조적 연계에 있다. 이 두 사업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영해면 모델의 핵심이다. 먼저 근대역사문화거리 조성사업을 통해 건축적 기반을 마련했고, 이를 토대로 이웃사촌마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두 사업은 단절된 개별 사업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앞서 제시한 ‘건축마을에서 크리에이터 타운으로의 전환’이라는 전략과 일치하는 발전 궤적을 보여준다.
영덕군 영해면은 과거 영해도호부의 중심지로,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며 형성된 독특한 건축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구 영해우체국, 구 영해역사, 근대 상가건물 등이 그 예다. 이러한 건축적 자산은 단순한 관광 자원을 넘어 지속 가능성을 지닌 정체성 기반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지역 발전의 문화적 기반으로 기능하고 있다.
2019년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사업'에 선정된 영해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2020~2024년, 총사업비 550억 원)은 이러한 건축적 자산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업의 핵심은 단순한 건물 복원이 아니라, 이들 건축물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여 현재의 삶과 연결시키는 접근법이었다. 구 영해우체국은 전시·체험 공간으로, 근대 상가건물들은 카페와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 경험을 제공하게 되었다.
영해면은 근대역사문화거리 사업을 통해 개성 있는 건축물이 집적된 '건축마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붉은 벽돌 건물, 목조 한옥, 근대 양식 건축물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거리 경관은 이 지역만의 건축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2022년 8월, 경북도는 영천 금호읍과 함께 영덕 영해면을 '이웃사촌마을 확산지역'으로 선정했다. 영해면은 앞서 의성 안계면에서 진행된 이웃사촌시범마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확산형 이웃사촌마을 모델이다.
영해면 이웃사촌마을 사업은 지방소멸 위기 대응을 위한 지역 주도형 청년 유입 모델로 설계되었으며, 2022년부터 2026년까지 4년간 추진된다. 청년 인구 유입과 정착을 동시에 실현하려는 정책 실험의 성격을 띠고 있다. 경상북도와 영덕군이 협력하여 총 400억 원이 투입되고 있다.
이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기반시설 조성에 그치지 않고, 청년들의 실질적인 정착을 위한 종합적 지원 체계를 구축한다는 점이다. 주요 사업 내용으로는 청년창업 지원, 청년주택 40호 건립, 공유팩토리 및 청년농업 인프라 구축, 복합문화공간 조성 등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910년 3.18 만세운동의 역사적 현장인 만세길에 레트로 창업거리를 조성하고, 옛 의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창업허브센터로 활용하는 등 지역의 역사적 자산을 현대적 필요와 결합시키는 접근법이다.
영해면 사업의 차별성은 일회성 방문이 아닌 실제 정착을 목표로 하는 단계적 프로그램에 있다. '한 달 살기', '청년 문화예술발전소 운영' 등 체류형 청년 유입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이 지역을 충분히 경험해 본 후 정착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영해 모델은 기존의 일방적 유치 정책과는 차별화되는 지역 주도형 접근법으로, 청년들의 자발적 선택과 지역사회의 수용성을 동시에 고려한 실효성 있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영해면 이웃사촌마을은 5단계 선순환 구조로 정리될 수 있다. '정주환경 개선’에서 시작해 ‘수요 창출’까지 이어지는 5단계 과정을 통해 인구유입과 정착, 지역활성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첫째, 정주환경 개선 단계에서는 청년주택 조성, 문화체험 테마거리 조성 등을 통해 청년층이 실제로 거주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다.
둘째, 지역체험 단계에서는 ‘영덕한달살기’ 등 프로그램을 통해 외부 청년이 지역에 자연스럽게 진입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셋째, 네트워크 강화 단계에서는 청년활동지원센터 및 마을공모사업 운영 등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계 기반을 마련한다.
넷째, 공급창출 단계에서는 창업지원, 청년문화예술발전소, 스마트팜 조성 등을 통해 실제 정착과 창업이 가능한 공급 기반을 구축한다.
다섯째, 수요창출 단계에서는 마케팅 지원, 지역체험 페스티벌, 재방문 유도형 한달살기 운영 등을 통해 로컬 콘텐츠에 대한 외부 수요를 확대하고, 지역 내 선순환 구조를 완성한다.
이 다섯 단계는 ‘주민이 만들고, 함께 키우는 이웃사촌마을’이라는 사업의 핵심 가치 아래 설계된 것으로, 청년 개인의 진입 ->정착 -> 창업 -> 지역자산화 -> 다시 유입으로 이어지는 인구 순환 모델의 구조화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영덕 영해면 이웃사촌마을 사업은 소멸 위기 지역에 대한 건축 주도 지역발전의 중요한 실험 사례다. 근대역사문화거리 조성을 통한 건축마을 기반 구축, 로컬 브랜드 진입,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로컬 브랜드 생태계와 크리에이터 타운으로의 발전 시도는 기존의 콘텐츠 중심 지역 재생 사업과 차별화된 접근법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영덕군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건축마을 조성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 기존 건축 유산의 보존과 활용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건축마을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세 가지다. 첫째, 복원 근대건축물과 더불어 '양질의 상가 건축물'을 공급하는 문제다. 문화재 복원을 통해 건축환경의 정체성을 제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물주나 상인 입장에서는 실제 장사에 도움이 되는 현대적 상가 건축물의 공급이 절실하다. 상가 주택, 상가아파트, 서울 연희동의 '동네에 개방적인 상가' 같은 모델이 참고가 될 수 있다.
둘째, 로컬 콘텐츠와 브랜드의 지속적 공급을 위한 로컬 메이커스페이스 운영이다. 로컬 상권의 전반적 추세는 콘텐츠와 제조의 고도화다. 영해면 지역 자원의 사업화를 지원하는 소상공인 메이커 기술 교육과 훈련이 로컬 메이커스페이스의 핵심 기능이 되어야 한다.
셋째, 순환의 동력과 순서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지역 발전의 핵심 동력은 결국 락(樂), 즉 여가와 문화적 매력이다. 직주락(職住樂) 센터 형성을 목표로 한다면, 실제 작동 방식은 락(樂) → 직(職) → 주(住) 순서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국의 로컬 상권 사례를 보면, 로컬 브랜드 생태계가 먼저 형성되어야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것이 새로운 주민을 유치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영해 모델은 유사한 조건의 타 지역에도 현실적인 전략 대안을 제공한다. 대규모 투자 계획보다는 지역이 가진 고유한 자산을 발굴하고 활용해 청년 창업가를 유치하고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해면 이웃사촌마을 확산사업 추친현황 보고", 2025.6.26, 영덕군 이웃사촌마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