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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단길에서 배워야 할 것들

by 골목길 경제학자

황리단길에서 배워야 할 것들


경주 황남동은 오랫동안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여 신축이 어려웠다. 한옥은 낡아가고, 젊은이들은 떠나면서 동네는 점점 활력을 잃어갔다. 황리단길이란 이름조차 없던 시절, 이곳은 경주의 중심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뒤처진 원도심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 거리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래된 한옥이 카페와 식당으로 변신했고, 젊은 창업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골목은 다시 사람들로 붐볐다. 지금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리며, 국내외 관광객이 반드시 찾는 명소가 됐다. 인구감소지역에서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리단길의 특별함은 민간 주도의 재생에 있다. 중앙정부의 대규모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나 상권 활성화 지원이 없었다. 국가유산청이 진행한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 정도가 (지금까지 확인된) 유일한 중앙정부 사업이었다. 결국 이 거리를 바꾼 것은 창업자들의 도전, 상인과 주민들의 참여였다. 경주시는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전선 지중화나 보행환경 개선 같은 기반 정비를 도왔다. 행정이 최소한의 지원만 하고, 나머지는 민간이 스스로 길을 찾은 것이다.


각 주체들이 황리단길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


경주시의 평가는 행정적 지원의 성과를 강조한다. 경주시는 황리단길을 “전국에 몇 안 되는 상인과 주민 주도로 조성된 특화거리”라고 정의하며, 한옥 신·개축 절차 간소화, 보행친화거리 조성, 전선 지중화 같은 제도적·재정적 뒷받침을 주요 성과로 내세운다. 즉, 주민 주도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행정이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https://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59645


국가유산청의 시각은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의 대표적 성과로 황리단길을 부각한다. 10년간 총 719억 원을 투입해 한옥 456채를 정비하고, 전통 경관 요소 331건을 복원했다. 그 결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역사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외관 복원을 넘어, 고도의 정체성을 되살리면서 지역 상권과 창업률 향상까지 이끌어낸 도시재생 모델로 평가하고 있다.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42182


설계자 최무현 교수의 입장은 설계 철학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는 “한옥의 골격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접근을 통해 황리단길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문화재 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개발이 제한되며 슬럼화되던 황남동을, 한옥마을로 다시 살려낸 20여 년의 과정을 그는 강조한다. 황리단길은 규제 완화와 보행환경 개선이라는 단순한 기술적 접근을 넘어, 오랜 설계적 실험과 철학이 만든 결과였다.

https://www.munhwa.com/article/11520237?ref=naver


연구자(저의) 관점에서는 미래 방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의 황리단길은 1단계 F&B 중심 상권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불교문화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2단계 로컬 브랜드 상권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불교미술과 불교디자인, 사찰음식과 인센스샵, 명상과 불교소품 등은 경주가 가진 고유한 문화자산이다. 이를 토대로 황리단길은 관광 소비거리를 넘어, 진정성 있는 지역 정체성을 담은 문화 지구로 거듭날 수 있다.

https://brunch.co.kr/@riglobalization/435


물론 이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뚜렷하다. 지금 황리단길은 음식점과 카페 중심으로 지나치게 편중돼 있고, 관광객 유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거주 인구의 부재다. 관광객이 빠져나가면 거리는 텅 비고, 원도심의 생활권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다.


그동안 제가 적은 현장 기록을 바탕으로 황리단길의 과제를 4개로 정리해 본다. 첫째, 불교문화와 결합한 콘텐츠 고도화를 통해 경주만의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주민과 상인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상권을 관리해야 한다. 셋째, 관광객과 지역민의 균형을 고려한 생활 친화적 공간 설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주택 공급과 거주 인구 유치다. 젊은 창업자와 로컬 크리에이터가 실제로 황남동에 정착할 수 있어야 황리단길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황리단길은 민간이 먼저 움직이고, 행정은 뒤에서 뒷받침한 드문 사례다. 그렇기에 더 상징적이다. 인구감소지역 대응의 해법은 전면적 정부 개입도, 완전한 방임도 아니다. 황리단길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관광객의 거리”에서 “사람이 사는 동네”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황리단길이 써야 할 두 번째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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