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둘러싼 논쟁을 보며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하지만 내가 AI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흔히 말하는 특이점이나 유토피아론 때문이 아니다. AI가 정말 의미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이 애초에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이란 무엇인가? 과거 노예제도 하에서 노예들이 해야 했던 일들이 그랬다.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우리는 인간을 비인격적으로 취급하는 일들을 다양한 말로 표현해왔다. '기계의 부품', '톱니바퀴'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바로 '영혼 없는 일'이었다.
영혼 없는 일이란 무엇인가? 생계를 위해 시키는 대로 반복 수행하는 일, 오직 물질적 목표만을 좇는 일을 뜻한다. 창의성도, 자율성도, 성취감도 없이 기계처럼 반복하는 작업들 말이다.
AI 시대에는 이런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첫째, 단순 반복 업무는 기계가 대신하므로 인간이 할 필요가 없다. 둘째, 기계가 기본적인 물질적 문제를 해결하면 인간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막연한 낙관론이 아니다. 영국의 기술사학자 아놀드 페이시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기술의 역사를 '부족의 역사'라고 불렀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진정한 유토피아는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대 기술의 올바른 평가는 '기술의 과잉'이 아니라 '기술의 부족'이다. 우리가 여전히 영혼 없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기술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역설적 진단이다.
이런 관점에서 AI는 새로운 전환점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진정으로 대신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영혼 없는 일의 종말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기술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바탕으로 인간이 인문학적 기준에 따라 기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기술을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응전을 통해 기술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이런 도전에 맞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거대 기술에 응전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제1의 응전은 미술공예운동, 제2의 응전은 대항문화와 해커문화였다. 그리고 이제 AI 시대의 제3의 응전을 통해, 우리는 영혼이 있는 삶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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