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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응전의 일상성

by 골목길 경제학자

제3의 응전의 일상성


당신도 모르게 이미 경험한 '제3의 응전'

오늘 우연히 페북에서 QR코드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강연 때 인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3의 응전 사례로...


카페에서 테이블 위의 검은 사각형을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메뉴를 보는 일상적 행위. 소상공인이 플랫폼 수수료 없이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 아티스트가 작품 옆에 붙인 작은 코드를 통해 관람객을 자신의 포트폴리오로 안내하는 장면.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제3의 응전'의 구체적 모습이었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변화가 언젠가 미래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그 변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1994년 한 일본 엔지니어의 선택이 만들어낸 QR코드는 단순한 기술적 도구를 넘어, 개인이 대기업의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도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 이는 제3의 응전이 추구하는 '개인을 해방하고 연결하는 기술'의 전형이다.


기술사적 맥락에서 본 하라 마사히로의 선택

마사히로 하라(原雅弘, 1957~)가 1994년 QR코드를 개발할 당시, 그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해 보였다. 기존 바코드는 20자 내외의 정보만 저장할 수 있어 도요타 자동차 부품 관리에 한계가 있었다. 점심시간 바둑을 두다가 문득 격자 패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완전히 새로운 2차원 코드를 만들어냈다. 7,000자까지 저장 가능하고 기존보다 20배 빠른 인식 속도를 구현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선택을 했다. 하라와 그의 회사 덴소 웨이브는 QR코드 특허를 보유하면서도 라이선스 비용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술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 개인적 이익보다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였다. 완전한 오픈소스로 공유한 것이다.


이 선택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려면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 이론의 세 번째 순환을 살펴봐야 한다. 제1의 응전(19세기)에서 윌리엄 모리스가 산업혁명의 기계화에 맞서 개인 창작 스튜디오를 제시했고, 제2의 응전(1960년대)에서 히피와 해커들이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중앙집중에 맞서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을 민주화했다면, 제3의 응전은 2020년대에 본격화되었지만 그 정신은 이미 199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빅테크와 AI의 독점에 맞서 크리에이터 유토피아를 구현하려는 이 응전의 선구적 사례가 바로 하라의 선택이었다.


즉시 연결 기술의 개인화

하라 마사히로가 새롭게 개발해 개인 도구화한 것은 '즉시 연결 기술'이다.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정보와 서비스의 즉시 연결을 누구나 몇 번의 클릭으로 구현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온라인에서 다른 온라인으로의 매끄러운 연결이 가능해졌다.


QR코드는 이처럼 제3의 응전이 추구하는 '3대 축 모델'(온라인-오프라인-도시)의 핵심 인프라를 제공한 것이다. 개인 크리에이터가 물리적 공간에서 시작해 디지털 관계를 형성하고, 다시 지역 커뮤니티로 연결되는 순환 구조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무신사의 성수동 홈마켓이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공간을 연결해 독립 디자인 브랜드와 고객의 직접적 만남을 구현하는 것처럼, QR코드는 이런 '브랜드-팬덤-직접유통' 모델의 기술적 토대가 되었다.


플랫폼 독립성과 직접 유통의 실현

QR코드의 진정한 혁신은 '플랫폼 수수료 없는 직접 창작자-소비자 연결'을 가능하게 한 점이다. 네이버나 구글 같은 거대 플랫폼의 승인이나 수수료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관리하고 유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제3의 응전이 지향하는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자체적 유통 채널을 구축하는 모델'의 실질적 구현체다.


지금 중국에서만 하루 20억 건의 QR코드 기반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며 비접촉 소통의 핵심 도구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소상공인이 큰 비용 부담 없이 디지털 전환을 이룰 수 있게 하고, 개인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디지털 접점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오픈소스적 효과

흥미롭게도 하라 마사히로는 전통적 의미의 '오픈소스 운동' 지도자로 기념받지는 않는다. 리차드 스톨만이나 리누스 토르발스처럼 소프트웨어 자유에 대한 이념적 신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기술이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실용적 관점에서 개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이 만들어낸 효과는 전형적인 오픈소스 생태계의 특징을 보인다. 기술 자체가 공공재가 되어 수많은 개발자들이 QR코드 생성 도구를 자유롭게 만들고 배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진입장벽을 낮춰 혁신의 가능성을 확산시켰다. Adobe나 Canva 같은 대기업과 개인 개발자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든 것이다.


제3의 응전의 현재진행형

하라 마사히로의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제3의 응전이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부터 시작된 현실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QR코드 하나하나가 한 엔지니어의 "기술은 개인을 해방하고 연결할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는 철학의 구현체이며, 제3의 응전의 선구적 모습이었던 것이다.


스테이블 디퓨전과 같은 오픈소스 AI 모델들이 등장하는 현재, 하라 마사히로의 선택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기술의 소유 구조가 사회 구조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처럼, AI 시대에도 기술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하느냐가 핵심이다.


개인이 자신만의 창작 도구를 소유하고,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으며, 직접적 관계를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미래. 그 미래는 이미 QR코드를 통해 30년 전부터 우리 곁에 와 있었다. 하라 마사히로의 선구적 선택이 보여준 것처럼, 제3의 응전은 이미 시작되었고 확산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를 더욱 인식하고 확장해 나가는 일이다.


출처: Japan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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