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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사회의 미래를 읽는 법: 집단 기술과 개인 기술

by 골목길 경제학자

기술사회의 미래를 읽는 법: 집단 기술과 개인 기술


AI와 디지털 기술이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면서,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과학과 인문학 연구자들이 직면한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기술사회는 어떤 성격을 가질 것인가?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해 더 자유롭고 창의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 '제3의 응전'은 집단 기술과 개인 기술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 중심의 기술 사회 가능성을 탐색한다.


집단과 개인 기술의 구분이 명확한 분야가 컴퓨터다. 컴퓨터에서 집단 기술이란 소수의 중앙 주체가 기술을 소유·통제하고, 다수의 사용자가 제한된 접근을 통해 이용하는 형태를 말한다. 개인 기술은 개별 사용자가 기술을 직접 소유하고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형태다.


이러한 구분은 기술사학자 루이스 멈포드가 『기계의 신화』에서 제시한 '권위적 기술'과 '민주적 기술'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 멈포드에 따르면 권위적 기술은 중앙집중적이고 위계적이며 소수에 의해 통제되는 반면, 민주적 기술은 분산적이고 참여적이며 사용자의 선택과 창의성을 존중한다. 집단 기술과 개인 기술이라는 구분은 이러한 멈포드의 통찰을 현대 디지털 기술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기술은 집단성과 개인성의 양면을 동시에 가진다. 개인용 컴퓨터도 집단이 만든 표준을 따르고, 클라우드 서비스도 개인의 선택에 의해 사용된다. 하지만 어느 쪽이 주도적 특성인지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기술 역사의 변화 패턴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이러한 순환은 단순한 기술 진화가 아니라 권력 분배와 접근성, 그리고 인간과 기술 관계 자체를 재정의하는 변증법적 과정이었다. 즉, 각 단계는 이전의 성과와 한계를 단순히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에서 '통합'하고 '재구성'하는 특징을 보였다.


1세대: 메인프레임의 집중화 (1940-1970년대)

초기 컴퓨터는 철저히 집중화된 시스템이었다. IBM 시스템/360, UNIVAC 같은 메인프레임은 막대한 비용과 전문 지식을 요구했으며, 개인은 터미널을 통해 제한된 접근만 가능했다. 컴퓨팅 자원은 대기업, 정부, 대학에 집중되었고, 표준화된 절차와 배치 처리가 일반적이었다.


2세대: 퍼스널 컴퓨터 혁명 (1970-1990년대)

197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가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애플 II, IBM PC, 매킨토시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권력의 민주화였다. 빌 게이츠, 잡스, 워즈니악은 기술을 개인의 손에 넘겨주었다. 특히 매킨토시는 복잡한 유닉스를 클릭과 아이콘으로 누구나 다룰 수 있게 만들어,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전문가만의 영역이던 컴퓨터를 일반인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도구로 전환시켰다.


개인용 소프트웨어 시장이 폭발하면서 게임, 문서작성, 그래픽 디자인 등 개인이 창의성을 발휘할 영역이 급속히 확장되었다.


1990년대 인터넷의 등장은 PC 혁명의 자연스러운 확장이었다. 인터넷은 개별 PC들을 연결함으로써 개인 기술의 범위를 극적으로 확장시켰다. 개인이 자신의 컴퓨터를 소유하고 통제한다는 PC의 기본 철학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여기에 전 세계와의 연결성이 더해졌다.


개인 웹사이트, 이메일, FTP, 온라인 커뮤니티는 모두 개인이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는 도구들이었다. 누구나 HTML을 배워 웹사이트를 만들고, 자신만의 온라인 공간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인터넷은 PC가 제공한 개인의 컴퓨팅 자유를 전 지구적 네트워크로 확장한 것이지, PC의 개인 기술적 특성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는 집단의 표준화된 아키텍처 위에서 개인이 직접 콘텐츠를 소유하고 제작하는 '개인화 단계(Web1)'로 볼 수 있다.


3세대: 플랫폼과 클라우드의 재집중화 (2000년대-2010년대)

2000년대 후반부터 플랫폼과 클라우드 컴퓨팅이 새로운 집중화를 이끌었다.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는 거대한 데이터센터와 서버 인프라를 구축하며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규모의 컴퓨팅 자원을 독점했다. 개인의 데이터, 사진, 문서, 심지어 소프트웨어까지 클라우드로 이동하면서 개인은 다시 중앙의 서비스에 의존하게 되었다.


하지만 플랫폼은 단순한 중앙집중화가 아니었다. 앱스토어는 개인 개발자를 글로벌 사업자로 만들었고, 유튜브는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게 했으며, 아마존 웹서비스는 개인이 기업 수준의 IT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플랫폼은 집중화된 인프라 위에서 개인의 창작, 유통, 수익화 능력을 극적으로 확장시켰다. 개인은 플랫폼의 규칙에 따라야 했지만, 동시에 전례 없는 규모의 시장과 도구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는 집중화된 플랫폼이 개인의 참여와 창작을 매개하는 '참여 경제 단계(Web2)'였다.


4세대: AI의 중앙집중화 (2020년대-현재)

현재 AI는 메인프레임보다 더 극단적인 중앙집중화를 보여준다. ChatGPT, Claude, Gemini 같은 대형 언어 모델은 개인이 소유 불가능한 GPU 클러스터와 엄청난 전력을 요구한다. OpenAI, Google, Anthropic 같은 소수 기업이 핵심 기술을 독점하며, 개인은 API나 웹 인터페이스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AI는 개인 능력을 극적으로 확장시키지만, 그 지능은 중앙에서 제공되며 개인은 작동 원리나 편향성에 대한 통제권이 거의 없다. 하지만 AI 기술이 역사의 패턴을 따르면 현재의 극단적 중앙집중화는 다시 개인화로 전환될 것이다.


실제로 그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온디바이스 AI는 스마트폰과 PC에서 직접 실행되기 시작했고, 오픈소스 AI 모델인 LLaMA나 Mistral을 통해 개인이 강력한 모델을 직접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엣지 컴퓨팅은 지연시간, 프라이버시,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처리를 개인 기기에서 수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개인 소유 AI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여러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오픈소스와 온디바이스 모델은 여전히 대형 상업 모델과 성능 격차가 있으며, 설치와 운영 과정의 기술적 문턱이 높아 일반 사용자가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또한 중앙 통제가 약화될 경우 편향, 악용, 보안 문제는 더 직접적으로 개인에게 전가될 수 있으며, 데이터와 연산 자원을 어떻게 분산적으로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지속 가능성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개인이 AI 모델과 데이터를 직접 소유하면서도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협력하는 '탈중앙화 단계(Web 3)'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구조 속에서 개인은 기술적 자율성과 창의성을 회복하고, 블록체인과 분산 컴퓨팅을 통해 중개자 없는 직접적 협력이 가능해진다.


순환의 동력과 패턴

각 전환은 기술적 한계와 사회적 요구 사이의 긴장에서 발생했다. 메인프레임의 접근성 문제가 PC 혁명을, PC의 고립성이 인터넷을, 개별 PC의 성능 한계가 클라우드를, 인간 지능의 한계가 AI를 촉발했다.


흥미롭게도 집단화는 통합성과 효율성을, 개인화는 자유와 창의성을 제공했다. 그리고 집단 기술과 개인 기술의 순환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매번 더 높은 차원에서의 '종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PC의 개인성과 메인프레임의 중앙성을 동시에 구현했고, AI는 개인 능력을 전례 없이 확장시키면서도 집단적 자원에 의존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의 역사가 인간이 도구를 만들고 도구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상호작용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집단 기술과 개인 기술의 순환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균형을 찾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순환에서도 우리가 만들어갈 기술은 인간의 존엄성과 창의성을 보존하면서도 집단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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