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쿄에서 가장 성공한 신도시로 꼽히는 후타코타마가와를 다시 찾았다. 이곳이 주목할 만한 이유는 단순히 잘 계획된 신도시가 아니라, 문화를 창출하는 신도시이기 때문이다. 30대 여성들이 주도하는 상업 문화가 형성되어 있고, 경력 있는 중상층 거주자들을 겨냥한 명품 브랜드와 특색 있는 매장들이 들어서 있다. 츠타야는 이곳에서 이례적으로 가전을 테마로 한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한다. 안내한 이찬우 교수에 따르면, 후타코타마가와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확장된 브랜드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신도시가 달성하기 어려운 성과다.
나는 그 성공의 비결을 건축환경에서 찾는다. 보행 중심 도시의 3대 조건이라 할 수 있는 격자형 가로망, 복합 용도, 그리고 공공공간 설계다.
경제력만으로는 활기찬 거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업 가로의 성공은 도시 디자인에 달려 있다. 후타코타마가와의 핵심은 역세권 복합개발 방식에 있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대형 복합단지와 마주치는데, 결정적 차이는 역 출구가 단지의 중앙 가로인 라이즈 스트리트(Rise Street)로 직접 연결된다는 점이다. 단지 내부의 보행로이지만, 높은 층고와 세련된 디자인으로 도시의 메인 스트리트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후타코타마가와의 또 다른 강점은 용도의 복합성이다. 라이즈 단지 안에는 쇼핑센터뿐 아니라 오피스, 호텔, 고층 주거동이 함께 있다. 낮에는 직장인들이, 저녁에는 거주민들이, 주말에는 외부 방문객들이 거리를 채운다. 단일 용도로 개발된 한국 신도시는 시간대별로 사람이 몰렸다 빠졌다를 반복한다. 후타코타마가와는 주거, 업무, 상업, 문화가 섞여 있어 24시간 활기를 유지한다. 복합용도 개발이야말로 살아있는 도시를 만드는 핵심이다.
후타코타마가와는 상업만으로 사람을 끌어모으지 않는다. 라이즈 스트리트는 타마강변의 후타코타마가와 공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역에서 공원까지 단절 없이 걸을 수 있다. 공원에는 일본 정원, 잔디광장, 채소밭까지 있어 도심 속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쇼핑을 마친 사람들이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고, 아이들이 뛰어논다. 상업과 자연이 보행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다.
후타코타마가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구도심과의 관계다. 역 동쪽은 2011년에 완성된 신도시지만, 서쪽은 오래된 구도심이다. 역사를 모르고 보면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함께 조성된 상가주택 단지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구도심 타마가와는 에도시대부터 이어진 상업 지역이다. 오야마 산 순례길(大山街道)의 중요 거점이었고, 무엇보다 타마강을 건너는 유일한 나루터 '후타코노와타시(二子の渡し)' 주변에 형성된 상업지였다. 나루를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찻집, 여관, 식당이 모여들었고, 명치시대 이후에는 고급 료테이(料亭) 거리로 변모해 도쿄 상류층의 유흥지가 되었다. 1927년에는 공식 상업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번성했던 곳이다.
1969년 일본 최초의 교외형 쇼핑센터인 타카시마야가 들어서며 현대적 상업지로 진화했고, 2011년 역 북쪽에 대규모 재개발 단지가 완성되었다. 놀라운 점은 400년 역사의 구도심 상가와 최신 복합단지가 역을 중심으로 위화감 없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신도시 개발이 구도심을 밀어내지 않고 함께 살렸다. 흥미롭게도 후타코타마가와라는 이름 자체가 "쌍둥이(二子)"(타마강을 사이에 둔 후타코와 타마가와 마을)를 의미하는데, 마치 구도심과 신도시가 공존하는 오늘의 모습을 예언한 것처럼 보인다.
타마가와 서쪽에는 '야나기코지(柳小路)'라는 이름의 골목이 있다. 이찬우 교수는 이 이름이 과거 요정 거리였던 역사를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버드나무(柳)는 전통적으로 유흥가를 상징하는 나무였다. 지금은 세련된 음식점들이 들어선 먹자골목으로 변모했지만, 거리 이름에 과거의 기억이 남아있다. 역사를 지우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일본식 도시 재생의 한 단면이다.
타마가와 지역을 걸으면 오야마-미치 상점가라는 전혀 다른 후타코타마가와를 만난다. 신도시의 화려함도, 구도심의 역사성도 없는 평범한 도쿄 중산층 주거지다. 초중학교를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모여 있다. 동네 빵집, 작은 슈퍼, 세탁소, 약국이 학교 통학로를 따라 자리 잡았다. SNS에 올릴 만한 핫플레이스는 없다. 그저 주민들의 일상을 지원하는 전형적인 근린 상권이다.
그런데 이 평범함이 중요하다. 후타코타마가와가 단순한 쇼핑 관광지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일상의 레이어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역 주변 화려한 상업지구, 역사 있는 구도심 상가, 그리고 평범한 주거지 근린상권이 공존한다. 다층적인 도시 조직이 후타코타마가와를 진짜 '사람이 사는 도시'로 만든다.
그동안 나는 지역 소도시 원도심 재생에 집중해 왔다. 역사가 쌓인 구도심에 어떻게 상업적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한국의 성공 사례를 찾고 싶었다. 이제는 시선을 신도시로 돌려야 할 것 같다. 한국인 대다수가 살고 있다 대형 단지나 신도시에서 거리 문화와 도시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한국 도시의 미래에 더 중요한 과제일지 모른다. 1기 신도시 재생을 앞둔 현재, 더 많은 한국 정치인과 도시계획가들이 후타코타마가와에서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