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 정당에서 위기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진영 논리에 기댄 단기 처방으로는 더 이상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지금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때다. 많은 사람이 개인의 실패를 말하겠지만, 보수의 위기는 구조적이다. 전 세계 보수 정당이 공통으로 겪는 변화의 징후다.
그 구조적 위기의 핵심은 신자유주의의 종언이다.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가 만든 신자유주의 질서는 40년 만에 막을 내리고 있다. 2024년 세계 각국에서 집권당이 연이어 패배한 이유는 명확했다. 불평등의 심화와 인간 존엄의 훼손, 그리고 집값·물가·의료비 등 생활비용의 급등. 시장은 더 이상 공정과 안정의 보루가 아니다. 효율과 자유의 논리가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고, 생계비 압박이 시민의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
새벽배송 논쟁은 보수가 무엇을 위해 시장의 자유를 옹호하는가를 되묻게 한다. 민주노총은 야간 노동으로 인한 택배기사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 0~5시 초심야 배송을 제한하자고 주장했다. 실제로 새벽배송 중 과로로 숨진 노동자가 발생하면서 노동권 보호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 상황에서 보수가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무조건 허용을 주장해야 하는가? 보다 공동체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심야 노동은 가능한 피해야 할 경제활동이며, 사회 전체가 노동의 인간적 한계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시장의 자유를 보수한다는 것은 방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보수는 시장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두고, 효율보다 존엄을 우선하는 질서를 지키는 일이다.
진정한 보수라면, 심야 노동과 열악한 노동 조건을 초래하는 시장 실패 요인을 찾아 이에 대한 시정을 통해 공정한 노동을 복원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과도한 심야 배송이 발생한다면, 즉 소비자가 심야 배송을 과도하게 소비한다면, 그 이유는 심야 배송의 가격이 과도하게 낮기 때문이다.
이 저렴한 가격 뒤에는 여러 시장 왜곡이 숨어 있다. 배송 트럭의 불법 주차 묵인, 택배 기사의 협상력 부족, 배송에 따른 환경 비용 미지불, 그리고 이커머스 기업 성장에 기대한 지속적인 투자 유입으로 인한 인위적 가격 저하. 결국 소비자는 심야 배송의 진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진정한 시장 원리란 이런 왜곡을 바로잡아 공정한 가격 체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보수 정당은 시장 원칙에 따른 "공급 확대"를 해법으로 내세우지만, 투기 심리가 살아 있고 건축비 상승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신축 공급은 가격을 낮추지 못한다. 높은 분양가는 기존 주택 가격을 밀어 올리고, 투기 수요는 시장 전체를 왜곡한다. 청년과 서민의 생활비용이 급등하는 현실에서 시장 원리만을 앞세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것이 정말 보수주의일까? 에드먼드 버크가 경계한 것은 "급진적 변화"였다. 그런데 시장의 창조적 파괴만큼 급진적인 힘이 또 있을까. 시장은 단기 효율을 만들지만, 사회는 장기 신뢰로 유지된다.
이런 맥락에서 2025년 뉴욕의 사회주의자 맘다니 시장 당선은 세계 정치의 전환을 상징한다. 그는 '어포더빌리티 정치(affordability politics)'―민생을 중심에 둔 생활정치―를 내세웠다. 좌파의 정책이었지만, 그 지지 기반은 중산층과 청년이었다. 보수든 진보든, 시장이 아닌 삶의 조건을 중심에 둔 정치가 부상하고 있다. 한국 보수는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보수주의의 본래 균형을 복원하는 데 있다. 보수주의는 원래 세 축으로 서 있다. 경제 보수, 사회 보수, 안보 보수. 미국 보수주의의 설계자 윌리엄 F. 버클리는 "보수는 역사를 거슬러 서서 외치는 일"이라고 했다. 이는 단순한 반개혁이 아니라, 변화의 속도를 인간이 감당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정신이었다. 그에게 보수의 과제는 세 가지였다. 자유시장과 기독교 윤리의 조화, 국가 안보의 수호, 공동체의 품격 유지.
그러나 한국의 보수는 지난 수십 년간 시장주의 경제보수에 과도하게 기울어 있었다. 시장 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사회적 연대와 안보적 신뢰를 약화시켰고, 경제적 합리성이 인간의 존엄보다 앞서는 구조가 고착되었다. 이제 보수가 다시 설 길은, 경제보수를 재정립하고 그 토대 위에 사회보수와 안보보수를 복원하는 일이다.
시장주의의 위기는 단순히 경기 침체가 아니다. 디지털 기술과 세계화가 자본을 집중시키고, 플랫폼 기업이 새로운 독점을 형성했다. 자유무역은 더 이상 공정 경쟁이 아니며, 규제 완화는 혁신이 아니라 불평등을 키운다. '작은 정부'는 시대적 덕목이었지만, 지금은 불평등과 존엄의 위기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보수의 새로운 과제는 시장을 넘어서는 경제철학의 정립이다. 국가의 개입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조정, 복지의 확장이 아니라 공동체 유지의 시스템화, 효율이 아니라 존엄의 경제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경제 보수의 재정립이다. 동시에 사회 보수와 안보 보수를 강화해야 한다. 공동체의 결속, 가족의 회복, 시민 간 신뢰의 복원은 안보의 기반이자 사회의 토대다. 경제 보수가 중심을 잡고, 사회와 안보 보수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보수는 다시 설 수 있다.
영국 보수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은 보수를 "장소를 지키는 것"이라 했다. 시장은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자본은 뿌리가 없다고. 독일 기독교사회연합(CSU)을 보자. 분명 우파지만 노동자를 보호하고 지역 중소기업을 키운다. 이들은 시장을 도구로 쓸 뿐,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한국 보수가 찾아야 할 길은 좌파의 사회주의도 아니고, 낡은 신자유주의도 아닌, 시장을 활용하면서도 공동체를 지키는 "보수적 공공성"이다.
보수주의의 본질은 "보수할 가치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을 시간, 청년이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집, 천천히 쌓인 공동체. 이것들을 시장 효율 앞에 내어주면서 무엇을 보수한다 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전환기를 맞은 지금, 한국 보수도 변화해야 한다. 시장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효율에서 존엄으로. 한국 보수가 다시 설 길은 명확하다. 경제보수를 재정립하고, 사회·안보 보수를 강화하는 것. 시장만이 아닌 사람을, 성장만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삶을 보수하는 일이다.
Samuel Huntington, Who Are We?, Simon & Schuster (2004)
Roger Scruton, How to Be a Conservative, Bloomsbury (2014)
Derek Thompson, "The Affordability Curse", The Atlantic (November 7, 2025)
Mara Gay, "What Started as Affordability Politics Has Become Something Deeper", The New York Times (November 7, 2025)
박재욱, 「#맘다니 효과: 민생의 정치, 양극화의 균열을 열다」, 페이스북, 2025년 11월, https://www.facebook.com/share/p/1A7m8k4y6S/
남윤호, 「보수의 지적 우위·품위 추구, 청년 전면에 내세운 운동가 – 보수주의 설계자 윌리엄 버클리 100주년」, 『중앙SUNDAY』, 2025년 1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