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가 시작되면서 여야 후보 모두 '중도 노선'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도 유권자인 나는 혼란스럽다. 여당 후보들은 대규모 개발과 주택 공급을 내세우며 중도를 자처하고, 야당 후보는 주거 복지를 강조하며 중도를 표방한다. 각자 상대편의 정책 언어를 빌려 쓰면서 나를 설득하려 한다.
문제는 이런 접근이 중도 유권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중도를 이념 스펙트럼의 한가운데로 본다. 좌파와 우파 사이 어딘가, 그 중간 지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여당 후보는 진보 유권자를 잃지 않으면서도 개발 공약으로 중도에 손짓하고, 야당 후보는 보수 지지층을 지키면서도 주거복지로 중도를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내가 중도인 이유는 이념 스펙트럼의 중간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정책은 분명히 있다. 그것이 양쪽 진영의 정책과 다를 뿐이다. 정치권이 나의 선호를 정확히 반영해 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양쪽 진영이 원칙 없이 표를 얻으려고만 하는 포퓰리즘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내가 서울시장 후보에게 바라는 것은 간단하다. 정체성이 명확했으면 좋겠다. 진보 정당 후보라면 도시재생, 공동체 보호, 주거복지를 일관되게 말해주길 바란다. 보수 정당 후보라면 시장 원칙에 입각한 도시경쟁력 강화를 끝까지 밀고 나가길 원한다. 각자의 철학대로 서울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솔직하게 보여주면 된다.
선명한 공약으로 당선되어도 실제 정책 집행 과정에서는 많은 타협을 거친다. 예산 제약, 의회 협상, 이해관계자 조정을 거치면서 애초의 공약은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균형을 이룰 테니 공약 선명성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책은 원래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정책 기조와 중심축 유지는 중요하다. 도시재생을 공약한 시장은 타협 끝에도 재생 중심 정책을 펼쳐야 하고, 개발을 내건 시장은 조정 과정을 거쳐도 개발 중심으로 가야 한다. 정책 기조의 일관성이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유권자 선택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서울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 공동체 회복이라면 도시재생 중심 정책이 필요하고, 경제활력이 시급하다면 개발 중심 정책이 필요하다.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시대적 과제에 맞는 방향을 선택한다.
둘째, 전 정부의 과도함을 조정할 수 있다. 개발에 치우쳤다면 재생으로, 규제가 과했다면 시장 원칙으로 균형을 되찾는 것이 정권 교체의 의미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셋째, 정책 예측성을 높여 시민과 기업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한다. 재생 중심 시장이 들어서면 문화와 공동체 투자 방향으로, 개발 중심 시장이 들어서면 부동산과 SOC 투자 확대 방향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정책 방향을 예측할 수 있어야 도시가 안정적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중도 유권자인 나는 캐스팅 보터다. 양쪽 진영 중 누가 더 진정성 있고 일관된 지를 저울질한다. 정당 색깔도 참고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 사람이 약속을 지킬 사람인지, 원칙을 가진 사람인 지다.
여야 후보 모두 가상의 중도를 잡으려고 정체성을 흐리지 말고 오히려 각자의 소신대로 정책을 개발하고 공약해 달라.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는 중도 유권자의 신뢰를 얻는 유일한 길이다. 중도는 중간이 아니다. 원칙을 보는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