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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Nov 23. 2019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상생

자영업 위기의 중심에는 전통시장이 놓여있다. 전국적으로 1,450개 시장의 36만 명 상인이 종사하는 전통시장 산업은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양산업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전통시장 지원 방식으로 전통시장이 경쟁력을 회복할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전통시장은 경쟁력 있는 상인 유치보다는 주차장, 간판과 도로 경관 개선, 문화행사 등 기존 상인을 위해 유동인구를 늘리는 사업을 요구하고 지원받는다. 일부 전통시장에서 청년창업몰을 조성하는 등 청년 창업자를 유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창업자의 준비 부족, 기존 상인의 비협조적 태도, 전통시장의 폐쇄적 공간 등의 이유로 성과가 미미하다.



골목상권과의 상생이 대안

 

하지만 레트로 붐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야로 확산되듯이 전통시장도 새로운 레트로 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서울 광장시장, 서울 망원시장, 부산 부전시장 등 일부 시장은 이미 회복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다른 전통시장도 불황 극복을 위한 자구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 자구책의 하나로 고려해야 할 대안이 골목상권과의 상생이다.


2-30대가 여행을 가듯이 방문하는 골목상권은 상권의 전반적인 부진에도 불과하고 200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한다. 2000년대 중반 홍대, 삼청동, 가로수길, 이태원 등 4개 상권으로 시작된 골목상권은 이제 전국으로 확산, 현재 120여 개로 늘어났다.

 

골목상권의 경쟁력은 공간 차별성과 업종이다. 한옥마을, 1970년대 단독주택, 서민주택, 근대건물, 공장과 창고 등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건축을 배경으로 형성된 골목상권은 기존 상권과 다른 감성과 분위기를 자아낸다. 업종 구성도 다르다. 골목상권의 주력은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편집숍, 독립서점, 외국 음식 전문점 등 2-30대가 좋아하는 업종이다.


전통시장이 골목상권과 상생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가 주변 골목상권과 연결성을 높여 골목상권과 하나의 상권을 이루는 방법이고, 둘째가 전통상권에 골목상권을 조성하는 방법이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연결하는 사업의 성공은 지리적 구조에 달렸다. 서울의 망원시장 같이 전통시장 주변에 골목상권이 들어선 경우에는 두 시장을 쉽게 연결할 수 있다. 가로 정비를 통해 물리적으로 상권 간 접근을 개선할 수 있으며, 공동 행사와 축제를 통해 상권의 통합적 정체성을 제고할 수 있다.


전통시장이 떠난 자리에 골목상권이 자리 잡은 사례도 있다. 춘천 육림고개는 청년창업가들이 전통시장이 상가건물로 이전한 후 비어진 공간을 채우면서 형성된 골목상권이다.  


물리적인 배려의 좋은 사례가 일본 도쿄의 기치조지 상권이다. 기치조지 역에서 나와 북쪽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 지역으로 가려면 반드시 전통 상점가를 지나야 한다. 전통시장을 배려해 동선을 설계한 것이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도 상생의 차원에서 주차장, 담 등 자신의 건물과 골목상권을 연결하는 장벽을 철거했다.



골목상권으로 탈바꿈한 전통시장


전통시장이 실질적으로 골목상권으로 전환된 사례도 나오고 있다. 2009년 문체부 문전성시 사업으로 '김광석길'로 조성된 대구의 방천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빈 공간에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카페, 식당이 들어가면서 연 80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방문하는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2014년 시작된 현대카드의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도 전통시장 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사업은 광주 송정역시장 재생이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광주 컬처네트워크와 협력해 송정역시장을 '1913 송정역시장'으로 리브랜딩 했다.


핵심 디자인 콘셉트는 시간과 청년이다. 송정역시장의 오랜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 역의 설립 연도 1913을 추가했으며, 시장에서 영업하는 가게의 역사도 가게 스토리텔링으로 부각했다. 송정역 탑승자를 배려해 기차 시간표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들어간 '제2의 대합실'을 건축한 것도 시간 콘셉트의 일환이었다.


송정역시장이 골목상권으로 전환하는데 가장 기여한 사업은 청년 창업 지원이다. 공모를 통해 선발된 청년 창업자들이 수제 맥주, 베이커리, 로컬 브랜드 편집숍, 디자인 숍 등 골목상권에서 인기 있는 업종을 연달아 창업했다. 다른 청년몰과 달리 송정역시장의 청년 창업자들이 성공한 이유로는 청년 창업자와 기존 상인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멘토링과 디자인 지원, 상호 보완하는 업종이 입점한 상권 구성, 그리고 송정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위치한 입지를 들 수 있다.


부산 자갈치 건어물 시장의 대형 창고를 건어물과 부산 지역 문화 테마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발한 B4291 프로젝트도 전통시장을 골목상권으로 전환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건어물을 디자인 상품으로 브랜딩하고 골목상권의 보편적인 업종인 편집숍, 갤러리와 카페를  운영한다.



기획자 모델에서 운영자 모델로


2019년 오픈한 군산의 영화타운도 골목상권으로 변신한 전통시장이다. 영화타운 사업의 차별성은 추진 방식이다. 청년몰 사업이 기획자를 먼저 선정한  기획자가 기초 공사를 하고 개별 운영자를 모집하는 기획자 모델이라면, 영화타운은 운영자를 먼저 선정한  그가 전체 사업을 총괄하고 장기 운영하는 운영자 모델이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운영자 모델을 군산시에 제안하고 지원했으며, 군산의 민간 사업자인 ㈜지방이 사업의 시행을 맡았다.  

 

2019년 6월 영화타운은 1단계로 스페인 음식점, 군산 사케바, 로컬 펍, 디저트 카페 등 5개 사업장을 오픈했다. 오픈하자마자 군산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라 많은 관광객을 유치했다. 영화타운에서 주목을 받는 매장이 사케바 수복이다. 백화수복, 청하, 국향, 설화 등 국산 사케 브랜드를 생산하는 군산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브랜드로 개발됐다.


군산 사케산업의 기원은 강점기다. 1945년 전에는 군산에 10개 가까운 사케 양조장이 성업했다고 한다. 해방 후 일본인이 운영하던 사케 양조장을 인수한 백화수복이 사케를 계속 생산했고, 군산을 한국의 사케 중심지로 만들었다.


군산의 사케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근대 문화 지역에 새로운 사케 양조장 단지를 조성해서 그곳에 새로운 사케 기업의 창업을 유인해야 한다. 사케가 군산의 지역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케를 생산하는 다수의 양조장이 필요하다. 초기 단계에는 양조장 내에서만 술을 판매해도 관광객을 중심으로 충분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원도심에서 사케 양조장 단지를 조성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전통시장이다. 이미 비어 있는 공간이 많은 전통시장에 소규모 양조장을 유치해, 전통시장을 군산 전통주 산업의 플랫폼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처럼 전통시장의 미래는 골목상권과 지역산업과의 상생에 있다. 상권과 상권이 경쟁하는 시대에 전통시장이 골목상권과 상생하지 않고 생존하는 방도가 마땅치 않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상생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상권 정책의 대상을 전통시장에서 골목상권을 포함한 전체 지역 상권으로 확대해 상권 간 상생과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제조업을 산업단지로 관리한다면, 상권 경쟁력과 구성이 중요한 자영업 산업은 지역상권으로 관리해야 한다.   



출처: 전통시장의 미래는 바로 옆 골목상권, 조선일보, 201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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