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동네앵커, 그리고 동네교회

by 골목길 경제학자

동네, 동네앵커, 그리고 동네교회

크리에이터 교회와 지역 공동체의 미래


1. 2025년 12월 22일, 대전 유성구 어은동 카페 시티파머스에서 나는 '동네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처치 곤란'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이 행사는 고백교회 이슬 목사와 홍은지 사모를 중심으로 한 ‘청년 부부 기획단’이 기획한 것으로, 교회가 지역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긴 실험이었다. 행사명에는 '처치하다'와 '교회(church)'의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다. 교회가 처치하기 곤란한 존재로 느껴질 정도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교회의 진정한 의미를 함께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2. 나는 "동네가 강한 도시가 도시가 강하다"라고 믿는다. 한광야 교수의 『도시마을의 진화』는 이 명제를 역사적으로 증명한다. 격자형 블록과 세장 필지, 스퀘어와 타워로 구성된 도시마을의 원형이 파리, 베를린, 런던 같은 도시들의 성공 DNA다. 21세기 도시는 더 이상 하나의 중심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동네라는 가장 작은 단위가 각자의 정체성과 활력을 가질 때, 도시 전체가 경쟁력을 얻는다.


3. 그렇다면 교회는 동네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교회는 이미 지역에서 복지와 돌봄 영역을 상당 부분 수행해 왔지만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왜일까? 동네가 지속 가능해지려면 단순히 약자를 돌보는 것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가진 세 가지 핵심 자원—공간, 신뢰, 네트워크—을 활용해 주민이 지역 안에 머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교회는 동네의 랜드마크이자 제3의 공간으로서 사람들을 머물게 하고 연결하며, 창업·협업·학습을 실험할 수 있는 커뮤니티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4. 뜨는 동네에는 반드시 앵커가 있다. 앵커의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는 브랜드 파워, 즉 집객력과 신뢰다. 둘째는 상권 공공재로서의 역할이다. 건축 랜드마크가 되고, 주차공간을 제공하고, 인큐베이터나 문화공간으로 기능할 때 앵커는 진정한 앵커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앵커가 비단 상업시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 교회, 공공기관, 문화시설 모두 동네의 앵커가 될 수 있다.



5. 교회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동네 앵커였다. 교회가 지역사회 참여가 활발하지 않은 한국에서도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교회 모델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대전 대흥성당은 역사적 건축물로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성당 신도들을 중심으로 성심당이라는 지역 대표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지역 경제의 앵커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안국동 안동교회는 교회 담장을 허물고 보행객을 위한 벤치를 설치했으며, 동네 지도를 그려 담벼락에 붙이고, 예배당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물리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첫걸음이었다. 연희동 원천교회는 동네 유명 베이커리 브랜드 피터팬 매장을 교회 내에 유치하고, 교회 로비를 호텔 로비처럼 디자인해 주민들에게 공개했다. 교회가 단순히 종교 공간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의 일상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6. 교회는 이제 앵커를 넘어 '링커'가 되어야 한다. 부부 기획단의 일원인 우은지 박사는 지역 내 다양한 자원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주체를 링커로 개념화한다. 크리에이터형 링커는 지역 자원을 제품화하고, 커뮤니티형 링커는 관계망을 형성하며, 로컬큐레이션형 링커는 지역 자원을 선별하고 확산시킨다. 기획자형 링커는 이 모든 것을 엮어 프로젝트와 행사를 만들어낸다. 교회가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앵커를 넘어,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을 연결하는 링커가 될 때 진정한 동네 중심이 될 수 있다.


7. 그렇다면 교회 주도 도시재생은 정말 불가능한가? 많은 이들이 교회를 지역의 '마지막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할 존재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그들만의 리그' 같다고 느낀다. 이 간극이 문제의 핵심이다. 문화적 도시재생에는 복합개발 모델, 뮤지엄 모델, 로컬 모델이 있는데, 교회는 이 모든 모델의 잠재적 주체가 될 수 있다. 교회 건물은 건축 랜드마크가 될 수 있고, 교회 공간은 문화예술 거점이 될 수 있으며, 교회 공동체는 로컬 네트워크의 중심이 될 수 있다.


8. 여기서 '크리에이터 교회'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대기업이 대형교회에, 중소기업이 동네교회에, 스타트업이 개척교회에 대응한다면, 크리에이터 기업은 크리에이터 교회에 대응한다. 크리에이터 플랫폼으로서의 교회는 창조적 개인을 지원하고 연결하는 공동체 모델이다. 이는 단순히 교회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개방하는 것을 넘어, 교회 자체가 크리에이터들의 생태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창업·협업·학습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나 커뮤니티 인프라를 제공할 때, 교회는 지역 창조 생태계의 플랫폼이 된다.


9.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는 개인 창조성이 경제와 사회를 이끄는 시대다. 플랫폼이 창조자들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구조 속에서, 크리에이터 교회는 영적 공동체이자 창조적 네트워크가 된다.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다. 한국의 크리에이터 타운—홍대, 성수동, 연남동—은 이미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들이 모여 만든 자생적 생태계는 정부의 전략적 계획이 아니라 창의적 개인들의 집적과 협업에서 비롯되었다. 교회가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앵커이자 플랫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크리에이터들의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지원하며, 실질적인 삶의 고민을 나누고 함께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10. '처치 곤란'이라는 행사명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이런 고민이다. 교회가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해야 하지만 생각보다 문턱이 높다는 현실, 그래서 먼저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일상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인식. 이 일상적 실천이야말로 제3의 응전이다. 산업혁명에 대한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공예운동, 대중사회에 대한 스튜어트 브랜드의 대항문화, 그리고 이제 AI 시대의 크리에이터 운동. 모리스가 산업혁명 앞에서 장인정신을 들었듯, 우리도 AI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인간의 창조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거대 기술과 자본에 대응하는 것은 규제나 보호가 아니라, 창조적 개인들의 연대와 협업을 가능케 하는 생태계 구축이다. 교회가 그 생태계의 중심에 설 수 있다.


11. 교회가 크리에이터 플랫폼이 된다는 것은 결국 동네의 미래와 연결된다. 교회는 이미 물리적 공간, 브랜드 파워, 공동체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대흥성당처럼 교회 공동체가 지역 브랜드의 토대가 되고, 안동교회처럼 담장을 허물어 물리적 장벽을 제거하며, 원천교회처럼 교회 공간을 일상적 공간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크리에이터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링커가 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스스로 교회에 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한다는 것은, 교회가 동네 앵커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네의 미래는 동네앵커에 달려 있고, 동네교회는 그 앵커가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이미 가지고 있다. '처치 곤란'은 곤란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남은 것은 결단과 실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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