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서울의 미래를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크게 세 가지 비전이 경쟁하고 있다.
첫째는 중심부 강화 전략이다. '글로벌 톱 5', '뉴욕과 경쟁하는 G2 도시'를 목표로 강남과 광화문과 더불어 용산과 여의도를 세계적 금융·문화 중심지로 만들고, 광화문-세운-을지로를 연결하는 강북 혁신축을 조성하자는 구상이다. 압도적 중심부를 통해 글로벌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둘째는 광역 확장 전략이다. 크게 세 가지 방향이 논의된다. 하나는 GTX를 활용해 수원-서울-의정부를 30분대로 연결하는 인구 2,500만 광역 생활권 구축이다. 또 하나는 김포·고양·구리 등 인접 도시를 서울에 편입하는 '메가시티 서울'이다. 세 번째는 서울-경기-인천의 동등한 연합을 통한 '수도권 재편', 또는 충청권까지 포함하는 '대서울권'이다. 모두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하자는 비전이다.
셋째는 동네 중심 전략이다. 두 가지 접근이 제시된다. 하나는 성수동 모델이다. 산업유산 위에 소셜벤처와 글로벌 브랜드가 공존하는 생태계를 확산시키고, 이를 강남 같은 중추적 중심부와 연결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희동 모델이다. 로컬 브랜드와 앵커스토어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경제를 각 동네에 구축하자는 것이다. 공통점은 15분 도시 개념으로 각 동네가 직주락(職住樂) 가능한 자립적 생태계를 갖추자는 비전이다.
이 세 비전은 각각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서울은 지난 25년간 실제로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 왔는가? 도시는 백지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를 만들고, 현재가 미래를 제약한다. 이것이 바로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다.
세 가지 비전은 사실 전 세계 도시들이 이미 실험해 온 모델들이다.
동네 강한 도시의 대표는 파리, 베를린, 포틀랜드다. 파리는 20개 구의 자치 전통 위에 '15분 도시'를 구축하고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을 도보 15분 안에서 해결하는 도시. 베를린은 키츠(Kiez) 구조로 각 동네가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창의적 해방구가 되었다. 포틀랜드는 50여 개 자립적 동네 상권을 육성하며 하이테크(인텔)와 하이터치(메이커)의 공존을 실현했다. 이 모델의 핵심은 시민의 일상이 동네 안에서 완결되는 자립적 생태계다.
중심부 강한 도시는 뉴욕과 싱가포르로 대표된다. 뉴욕 맨해튼은 압도적 마천루와 집적 경제로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되었다. 싱가포르는 국가 차원의 정교한 도시 설계로 마리나 베이를 세계 최고 비즈니스 허브로 만들었다. 강점은 규모의 경제와 글로벌 브랜드 가치다. 하지만 높은 임대료가 창의적 개인들을 밀어내는 위험이 있다. 뉴욕의 브루클린이 '거대 중심부 곁에서 동네성을 지키는 응전'의 사례로 주목받는 이유다.
광역 강한 도시는 도쿄와 LA가 대표적이다. 도쿄는 야마노테선 중심 다중심 구조(TNM 모델)로 광역 메트로폴리스이면서도 각 역세권마다 보행 중심 동네를 유지하는 독특한 균형을 이루었다. LA는 프리웨이 중심 광역 확산형이었으나, 2010년대 이후 '어번 빌리지' 운동으로 스프롤 속에서도 걷고 싶은 동네를 재발견하려 애쓰고 있다. 광역 교통망으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만, 자동차 의존도와 동네 정체성 유지가 과제다.
서울 역시 지난 25년간 세 가지 경로를 동시에 걸어왔다.
동네의 발견은 홍대-연남-성수로 이어졌다. 홍대는 1990년대 후반 예술가 아지트에서 시작해 2010년대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진화했다. 로컬산업(앤트러사이트, 어반플레이, 로컬스티치), 문화산업(YG엔터테인먼트), 디자인산업(젠틀몬스터, 29CM)이 동시에 성장했다. 연남동은 2010년대 초중반 순수 주거지의 상업화로 직주락 모델을 보여주었다. 성수동은 2010년대 중반 산업유산 위에 소셜벤처 생태계를 구축했다. 2015년 이후 루트임팩트, 헤이그라운드가 들어서고, 2019년 무신사가 대림창고에 플래그십을 열며 로컬과 글로벌이 공존하는 생태계가 되었다.
중심의 강화는 강남-여의도-용산으로 이어졌다. 강남은 1990년대 이후 초고밀 개발과 집적 경제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여의도는 2000년대 금융·미디어 복합 중심지로, 2010년대 IFC몰, 파크원, 더현대서울로 업무-상업-문화 결합을 실현했다. 용산은 2010년대 중반부터 글로벌 도시 경쟁을 위한 랜드마크 개발로 진행 중이다.
권역의 확장은 분당-판교-GTX로 이어졌다. 1990년대 분당·일산은 계획적 근교도시화의 시작이었다. 2000년대 판교는 IT 스타트업과 R&D 중심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부상했다. 2024년 GTX-A 개통으로 수원-서울-의정부 30분대 연결, 인구 2,500만 메가시티 개념이 현실화되었다.
중요한 발견은 이것이다. 지난 25년간 서울이 얻은 글로벌 명성은 대형 아파트 단지나 고속도로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테헤란로가 아니라 익선동 한옥 카페골목이다. K-드라마에 등장해 전 세계를 사로잡은 장소는 분당 아파트가 아니라 성수동 카페 거리다. 서울의 매력은 사람들이 걸으며 마주치고, 작은 가게에서 독특한 경험을 하고, 동네마다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는 바로 그 순간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답은 동네만 키우는 것일까? 아니다. 완전체 도시 서울은 세 축이 모두 강해야 한다. 역사문화도심과 강남 같은 중추적 중심부는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이고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는 엔진이다. GTX 같은 광역 네트워크는 2,500만 수도권 인구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혈관이다. 그리고 홍대-연남-성수로 증명된 동네의 생명력은 시민 삶의 질을 직접 높이는 토대다.
문제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세 축의 균형이다. 그리고 이 균형에도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다. 세 축이 모두 강한 완전체 도시가 서울의 미래지만, 도시 전략의 기본 단위는 동네여야 한다. 중심부와 광역은 동네 위에 세워질 때 비로소 지속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동네란 단순한 주거 공간이나 상업 지구가 아니다. 동네의 성격은 크리에이터 타운이어야 한다. 창작자와 로컬 브랜드가 자생적으로 모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일하고 놀고 창조하는 삶이 가능한 공간이다. 이러한 동네 경쟁력을 기본 단위로 삼아 중심부를 강화하고, 광역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왜 동네가 기본인가?
첫째, 포스트 코로나 시대 15분 도시, 생활권 도시, 직주락 근접은 전 세계적 트렌드다. 도쿄도 LA도 광역 메트로폴리스이면서 동시에 동네 단위 보행 경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둘째, 서울은 이미 지난 25년간 이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2000년 홍대에서 시작된 실험은 2025년 현재 서울 전역 수십 개 동네로 확산되었다. 시민들의 취향과 삶의 방식은 이미 ‘동네 중심 라이프스타일’, ‘동네 중심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이동했다. 이는 서울이 이미 선택해 온, 가장 강력한 경로다.
셋째, 동네가 강해야 중심부도 지속가능하다. 강남역 일대에서 독립 상점이 사라지고 프랜차이즈만 남은 것은 분명한 반면교사다. 중심부의 화려함이 동네의 다양성을 삼키면, 결국 중심부 자체도 매력을 잃는다.
넷째, 동네가 살아있어야 광역화도 의미를 갖는다. 판교 테크노밸리는 첨단 기업 집적지이지만 ‘걷고 싶은 동네’는 아니다. GTX로 30분대 연결이 되어도, 도착한 곳이 자동차 없이는 생활 불가능한 공간이라면 출퇴근 2시간의 삶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완전체 도시란 중심부의 화려함이 동네의 다양성을 삼키지 않고, 광역 네트워크가 지역 커뮤니티를 해체하지 않으며, 시민들이 매일 발을 딛고 사는 그 ‘동네’가 단순한 잠자리가 아니라 일하고 놀고 창조하는 삶의 무대가 되는 도시다. 동네가 강해야 중심부가 지속가능하고, 동네가 살아있어야 광역화가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세 축이 선순환하는 도시의 조건이다.
동네가 강한 서울이, 결국 세계에서도 강한 도시가 된다. 이는 지난 25년이 이미 증명한 가장 확실한 진실이다. 202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필요한 비전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서울이 실제로 걸어온 이 경로 의존성을 존중하면서 동네를 기본 단위로 세 축의 균형을 재설계하는 전략일 것이다. 서울의 완성, 완전체 도시로 가는 길은 특정 랜드마크나 무한한 확장이 아니라, 우리 집 앞 15분 거리, 그 골목에서 만나는 동네의 재발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