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스)는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의 합성어로,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가나 고소득 전문직을 뜻한다. 단어 자체는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자신의 저서 『천국의 보보스((Bobos in Paradise)』에서 처음 사용했다.
앞서 설명했듯 부르주아는 산업 사회의 엘리트로 전형적인 물질주의 가치를 추구하고, 보헤미안은 그 부르주아 문화의 대척점에 있다. 보보는 그 이름의 유래처럼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를, 정치나 생활면에서는 보헤미안의 가치를 지향한다.
브룩스가 말하는 보헤미안 가치는 예술가적 가치뿐 아니라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는 탈물질주의다. 미술 작품을 모으고 미술관을 후원해도 물질주의자는 보보가 될 수 없다. 보보가 1990년대 미국의 엘리트 사회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탈물질주의가 미국 엘리트의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보보는 보헤미안과 부르주아 사이에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개념적으로 ‘편리한’ 라이프스타일이다. 둘을 동시에 만족하는 라이프스타일이 가능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반문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부르주아 외에 한국 엘리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라이프스타일일지 모른다. 이런 이유에서 보보가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중심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보보가 되는 것이, 그리고 보보가 라이프스타일 혁신에 기여하는 일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보보는 두 개의 충돌하는 가치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라이프스타일이다. 일관성 유지를 위해 필요한 상상력과 노력이 다른 라이프스타일보다 두 배 이상 클 수 있다.
브룩스는 보보를 기본적으로 문화적 인간으로 정의한다. 보보를 전통적인 귀족 엘리트가 아닌 ‘교육받은 엘리트(The Educated Elite)’로 규정하고, 보보의 차별성을 7개의 규칙으로 설명한다.
1) 사치품에 돈을 낭비하는 천박한 부자와 달리 교육받은 보보는 주택, 음식, 의류 등 정말로 필요한 상품 중심으로 소비를 제한한다.
2) 등산용품, 가전제품, 가드닝 도구 등 진정한 가치를 가진 장인 수준의 품질(Professional Quality)을 가진 상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3) 규모와 크기로 과시하는 것은 금기시하지만 작고 귀한 물건으로 집을 채우는 것은 허용한다.
4) 카펫, 가구, 그릇, 섬유 등 무조건 질감이 좋은 제품을 구매한다.
5) 항상 이웃이나 동료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에서 구매하고 장식한다.
6) 유기농 농산품, 프리 레인지(Free Range) 치킨, 공정 무역 커피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물건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
7)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상품을 제공하고, 각 상품이 사회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설명하는 기업을 좋아한다.
소비 윤리만이 보보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아니다. 보보는 일, 직업, 여가, 신앙, 정치 분야에서도 부르주아와 다른 생활 방식을 추구한다. 이들은 모든 영역에서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에서도 보보의 부상을 감지할 수 있다. 50대 이상 기성세대가 근면, 성실, 규율, 조직력을 강조하는 산업 사회 가치에 머물러 있는 반면, 20~30대 젊은 층은 미적 감각과 더불어 삶의 질, 개성, 다양성 등 탈물질주의 가치를 지향하며 기성세대와 다른 삶의 방식과 일의 철학을 좇는다. 사회적인 성공과 함께 탈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청년 엘리트가 한국의 보보라고 말할 수 있다.
보보에게 직업은 좋아하는 일이다. 이들은 취미의 연장이라 할 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 그렇다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나이키의 필 나이트와 같이 세상을 바꾸려는 목적으로 창업을 해야만 보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직이나 대기업의 직원이라도 도전적이고 실험적으로 일하고, 진보적 가치와 변화를 지향한다면 보보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문화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는 경영인이라면 보보 성향의 직원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기업 문화를 보보가 선호하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 브룩스가 지적한 대로 직원 스스로가 활동가와 예술가로 생각할 때 회사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의 대표적인 보보 직업은 지식인이다. 과거의 달리 현대 지식인은 학문의 세계에서 안주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식으로 학계뿐 아니라 대중에게 영향을 미쳐야 사회에서 인정받은 지식이 될 수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 지식과 정보가 자본과 물질적 자원만큼 중요해지자 기업들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수석 지식 오피서(Chief Knowledge Officer) 등 산업 사회 기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책을 만들어 지식인을 임원으로 유치하고 이들을 통해 지식 문화, 혁신 문화를 조직 문화로 내재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산업계의 보보는 보보 기업이다. 보보가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창업한 기업을 말한다.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보보 기업은 보헤미안 문화를 수용하지 않고 생존하기 어렵다. 사회적 가치의 실현이 일차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보헤미안 가치에 대한 의지도 확실하다.
보보 기업은 다양한 유형의 기업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마을 기업, 마을 공동체, 디지털 공동체 빌리지를 운영하는 공동체 사업가, 하이테크와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혁신하는 히피 기업가, 사회 혁신 운동을 배경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 협동조합, 소셜 벤처를 창업한 사회 혁신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공유가치 창출(CSV)을 선도하는 일반 기업도 모두 보보 기업에 포함된다.
한국 기업에서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보보 성향을 보이는 기업이 활동한다. 386세대가 주도한 IT 산업이 대표적인 보보 산업이다. 네이버, 다음, 카카오, 넥슨 등 한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은 일반적으로 진보 정당을 지지한다. 기업 문화 측면에서도 기존 대기업과 달리 환경, 인권, 탈권위주의 등 진보 가치에 우호적이다. 미국에서 보보 산업으로 분류되는 소셜 벤처, 사회적 기업, 임팩트 투자사도 한국에서 급속히 성장한다.
정치적 보보는 보보 철학과 일치하는 정책과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인과 유권자다. 정치적 보보는 성격상 특정 정파에 우호적이며, 언론과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보보 정파는 진보 정당의 문화 엘리트다. 브룩스는 1960년대 이후 교육을 통해 엘리트 계급으로 진입한 사람이면 특정 정파와 관계없이 보보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말 집필 당시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보보가 진보 정당을 지지하고 브룩스와 같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보보는 소수다.
한국의 보보도 미국의 보보와 마찬가지로 진보 정당의 문화 엘리트를 지지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고소득층이면서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강남 좌파’를 보보 정파로 볼 수 있다. 진보 가치관과 물질적인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강남 좌파가 이상적인 엘리트의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이런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강남 좌파는 진보 정당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한국이 서구 민주주의 경험을 따른다면 강남 좌파가 진보 정당의 주류로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문재인 정부를 강남 좌파로 분류할 수 있다면, 이미 주류로 진입했다고 말할 수 있다. 브룩스가 강조했듯이 미국 진보 진영의 신주류는 1990년대에 미국의 강남 좌파 격인 보보로 교체되었다.
미국의 보보 정파와 한국의 강남 좌파의 공통점은 또 있다. 둘은 위기도 비슷하게 겪는다. 미국의 보보 정파가 위기에 처한 이유는 노동자, 서민 등 전통적인 진보 정당 유권자의 지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보보 정치인은 일자리, 민생 문제보다는 인권, 다문화, 환경 등 엘리트 내부 문제나 관념적 이슈에 몰두한다. 중산층과 서민의 이익은 뒷전이고 엘리트 내부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확대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트럼프 같은 미국 보수 포퓰리스트가 보보 정파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인 중서부 중산층과 노동자의 지지자를 얻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보보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보보도 서민 생활과 거리가 먼 이슈에 열중한다. 소수 노동 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6백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의 이익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강남 좌파의 엘리트 편향성을 반영한다. 한국의 강남 좌파가 엘리트 중심적 정치를 계속한다면 미국 보보 정파와 같이 보수 대중주의의 공세에 무너질 수 있다.
강남 좌파 관점에서 다행인 것은 한국 보수가 아직 포퓰리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 보수의 중심 세력은 대기업과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부르주아 세력인 ‘강남 우파’다. 한국 보수가 서민과 노동자 이익을 위해 보호 무역 주의와 같은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선택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보호 무역 주의는 수출에 의존하는 대기업과 제조업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이다. 물질적인 성공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산업 사회 엘리트인 강남 우파가 젊은 층이 지지하는 탈물질주의를 수용할 가능성도 낮다. 보수 정당의 이런 한계로 인해 강남 좌파가 권력을 유지하는지도 모른다.
한국 보보가 지속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일관성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 보보는 개인 생활에서 보보의 가치를 실천하지만, 한국 보보를 대표하는 강남 좌파는 부르주아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정치 스캔들은 강남 좌파가 강남에 거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남이 대표하는 부르주아 라이프스타일을 추종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 생활과 정치를 통합하지 못한 강남 좌파는 진정한 의미의 보보가 아니다.
보보 기업의 활성화도 한국 보보의 과제다. 현재와 같은 작은 규모로는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어렵다. 한국은 히피 운동과 같은 대규모 반문화 운동을 경험하지 않아 탈물질주의 기반 자체가 미약하지만, 다행히 밀레니얼 세대가 탈물질주의에 우호적이다. 덕분에 보보 산업도 보보 세력의 경제적 기반이 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보보가 대안적인 삶을 갈망하지만 물질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한국 보보의 지속 가능성은 궁극적으로 보보 계급의 노력에 달렸다. 보보가 새로운 생활 운동을 전개해 정치뿐 아니라 실생활에서 탈물질주의 가치를 실천하고, 보보 기업의 창업을 유도해 경제 분야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다면, 다가오는 라이프스타일 시대의 주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