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오스틴과 더불어 포틀랜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힙스터 도시다. “포틀랜드를 계속 엉뚱하게 (Keep Portland Weird!)”라는 공식 슬로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무브허브(MoveHub, 물류 컨설팅 전문 업체)가 매년 발표하는 힙스터 도시 랭킹에서 포틀랜드는 늘 최상위권을 지켰다. 무브허브는 수제 맥주 기업, 비건 식당, 커피 전문점, 독립 서점, 자전거 통근자, 타투 스튜디오, 바이닐 레코드 가게 등의 통계로 힙스터 도시 순위를 매긴다.
힙스터는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대항문화 또는 이 문화를 따르는 사람이다. 힙스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포틀랜드가 새로움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도시라는 뜻이다. 포틀랜드는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위치한 인구 60만의 도시다. 이곳은 캘리포니아 등 서부의 경제 중심지와도 떨어져 있으며, 북서부의 중심지인 시애틀과도 자동차로 4시간이나 떨어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오랫동안 임업, 농업 등 자체 자원으로 지역 경제를 일구었다. 이런 고립된 환경에서 포틀랜드가 세계 도시 트렌드를 선도하는 힙한 도시가 된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포틀랜드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인구다. 포틀랜드의 인구는 60만 명, 오리건 전체의 인구는 400만 명이다. 한국 기준으로는 포틀랜드는 소도시, 오리건주는 경남 규모의 광역 단체다. 작은 규모의 광역 단체의 소도시가 세계가 부러워하는 도시 문화를 창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조 인재와 창조 산업을 유치한 것이다.
또 다른 교훈은 문화와 도시 정책의 중요성이다. 포틀랜드는 1980년대까지 다른 산업 도시와 마찬가지로 탈산업화, 도심 공동화, 환경 오염으로 쇠락한 도시였다. 1980년대부터 지속 가능성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친환경, 친공동체, 친소상공인 도시 정책을 추진해 창조 도시의 반열에 올랐다.
과연 한국 도시가 포틀랜드의 정책을 도입하면 소상공인 중심의 창조 도시로 성공할 수 있을까? 포틀랜드의 교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국 도시 중 어느 도시가 지속 가능성 가치를 전면 수용하고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 그런 도시를 쉽게 떠올릴 수 없다. 더욱 복사하기 어려운 문화가 힙스터다. 포틀랜드 모델은 거의 전투적인 수준에서 환경, 공동체, 독립 기업을 옹호하는 힙스터를 한 도시에 모아야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이다.
포틀랜드는 다른 도시에 비해 독립적인 소상공인 산업의 비중이 높은 도시다. 2015년 포틀랜드가 속한 오리건주의 고용에서 소상공인 산업이 차지한 비중은 미국 평균 49%를 상회하는 55%로 50개 주 중 8위에 올랐다. 독립 기업의 규모를 측정하는 ‘인디 시티 인덱스(Indie City Index)’에 따르면 포틀랜드는 인구 백만에서 3백만 사이의 메트로폴리탄 지역 중 6번째로 독립 산업의 규모가 크다. 포틀랜드를 앞선 도시는 산호제이, 오스틴, 투산, 뉴올리언스, 내쉬빌 정도다.
규모도 규모지만 포틀랜드 독립 산업이 특별한 진짜 이유는 창의성에 있다. 포틀랜드의 독립 가게, 로컬 크리에이터, 공예 공방, 메이커스, 스타트업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로컬 브랜드를 많이 배출한다. 포틀랜드에서 출발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로컬 브랜드를 기반으로 포틀랜드는 커피, 수제 맥주, 자전거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2018년 인포그룹(Infogroup)이 선정한 수제 맥주 도시 1위, 2018년 『바이시클링 매거진(Bicycling Magazine)』이 선정한 자전거 도시 5위, 2018년 미국 금융 서비스 업체 월렛 허브(Wallet Hub)가 선정한 커피 도시 4위의 성적은 우연이 아니다.
도시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로컬 브랜드와 힙스터 산업은 창조 산업과 창조 인재를 유치하는 도시 어메니티라고 주장한다. 플로리다가 예측한 대로 매력적인 자연환경과 도시 문화를 자랑하는 포틀랜드는 1970년대 이후 글로벌 아웃도어 기업 나이키 본사와 하이테크 기업 인텔의 사업장을 유치했다.
포틀랜드 소상공인 산업이 강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소상공인 생태계,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소상공인에 우호적인 도시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하버드 경영대 마이클 포터(Michael Eugene Porter) 교수가 운영하는 ICIC 연구소에 의하면 소상공인 생태계에는 주민 단체, 정부, 경제 개발청, 금융 기관, 직업 훈련 기관, 소상공인 단체가 중요하다. 포터 교수가 지적한 6개 분야에서 포틀랜드에서 이 분야를 대표하는 기관을 정리했다. 모든 분야에서 활발한 지역 단체를 찾을 수 있는 것이 흥미롭다.
포틀랜드 소상공인 생태계는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생태계가 아닌 각 분야를 지원하는 생태계로 구성되어 있다. 메이커, 신발 디자인, 로컬 푸드 등 적어도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3개 소상공인 산업에서는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창업 훈련과 지원 기관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메이커 산업 생태계다. 메이커 협동조합 ‘포틀랜드 메이드 컬렉티브(Portland Made Collective)’가 메이커 스페이스 ADX, 메이커 편집숍 ‘메이드 히어 PDX(Made Here PDX)’와 협력해 지역 메이커를 지원한다. 메이드 히어 PDX는 포틀랜드에 매장을 두 개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포틀랜드 브랜드를 판매한다. 자기 물건을 팔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는 사업자가 매일 있을 정도로 포틀랜드 메이커 기반은 탄탄하다.
두 번째는 운동화 창업 생태계다. 포틀랜드는 나이키 본사, 아디다스 미주 본사, 언더아머 연구소 등 수많은 운동화 기업이 모여 있는 클러스터다. 디자이너 교육 기관으로 주목해야 할 곳이 ‘펜솔 풋웨어 아카데미(Pensole Footware Academy)’다. 나이키 디자이너가 창업한 이 기관은 포틀랜드 기업과 협업해 미래 디자이너를 기업이 발주한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훈련한다.
세 번째는 로컬 푸드 생태계다. 환경 단체 에코트러스트(Ecotrust)가 로컬 푸드를 장려하기 위해 운영하는 로컬 푸드 인큐베이터 ‘레드 온 새먼 스트리트(Redd on Salmon Street)’가 대표적인 기관이다. 비영리 환경 단체이기 때문에 투자금 회수라는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창업자를 지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포틀랜드도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몇 개 산업 중심으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운동화 디자인, 메이커, 로컬 푸드 등 포틀랜드에 생태계가 존재하는 산업 중 로컬 푸드는 한국 도시도 벤치마크해야 하는 산업이다. 농산물을 전국 단위로 유통하고 있는 한국에서 로컬 푸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환경과 건강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사업이다.
포틀랜드 독립 산업이 활발한 더 근본적인 원인은 로컬 문화, 동네 문화, 환경주의, 힙스터 문화가 대표하는 도시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로컬 중심 문화의 영향력은 거리를 걸으면 금방 느낄 수 있다. 편의점, 패스트푸드 등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6년 월마트 매장의 진입을 저지한 것처럼 포틀랜드는 전통적으로 스몰 비즈니스와 독립 상점을 보호하는 도시로 유명하며 지역 상품 구매를 독려하는 ‘바이 로컬(Buy Local)’ 소비자 운동도 활발하다.
시정부의 동네 상권 정책 또한 로컬 브랜드 발전에 기여한다. 포틀랜드는 하나의 통합된 도시라기보다는 여러 동네가 네트워크를 형성한 도시다. 그만큼 동네와 동네 상권이 정체성이 뚜렷하고 독립적인 경제 단위로 중요하다. 포틀랜드는 지역을 중심부, 산업 지역, 대학 지역, 동네 상권(Neighborhood Business District)으로 구분해 관리하고 지원한다. 현재 50개 지역이 동네 상권으로 지정되어 있다.
동네 상권은 포틀랜드 총 고용의 1/4을 담당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동네 상권에서 활동하는 소상공인은 2만 명에 이른다. 시정부는 지역 주민과 소상공인이 협동조합 등의 주민 협의체를 조직해 상권에 필요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고 지원한다.
로컬 소비와 동네 상권 문화는 지역 환경 운동을 통해 축적되어 왔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에 로컬에서 생산하는 독립 기업과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이다. 포틀랜드 환경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도시 계획과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이다. 포틀랜드는 환경과 삶의 질을 보호하는 성장, 즉 스마트 성장 (Smart Growth)을 추진하는 대표적인 도시다. 포틀랜드의 환경 철학은 도시 계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1979년 처음으로 서울의 그린벨트와 유사한 ‘도시 성장 경계(Urban Growth Boundary)’를 설정해 지속적으로 무분별한 도시 성장과 개발을 제한했다. 구체적인 스마트 성장 전략으로 밀집 지역(Compact Neighborhoods) 건설, 대중교통망 구축, 보행자와 자전거에 편리한 도시 디자인을 들 수 있다. 밀집 지역은 상업과 주거 건물의 밀도를 높여 도심 중심으로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도시를 뜻한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도 적극적이다. 2016년에 이미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17% 감축했다. 그 기간 미국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이 7%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포틀랜드 시민이 감수한 불편과 희생은 상상하기 어렵다. 자연과 도시의 공존을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09년 코펜하겐 협정 준비 당시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온실가스 의무 감축국에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40% 감축을 권고했다. 온실가스 배출 강경파인 EU는 최종안으로 1990년 대비 20% 감축안을 제출했다. 2016년 포틀랜드는 EU와 IPCC 목표치에 근접한 수준으로 감축한 셈이다.
포틀랜드의 환경주의, 로컬 문화는 1960년대 반문화와 관련이 있다.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던 히피들은 캘리포니아가 지나치게 상업화되었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생활 문화를 개척하기 위해 오리건으로 이주한다. 자연주의, 평화, 공동체를 표방한 히피 반문화 전통이 오리건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히피 반문화를 승계한 것이 힙스터 문화다. 힙스터 정의에 대한 합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주류 사회와 상업 문화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을 힙스터라 정의할 수 있다.
포틀랜드 역사를 알면 이 도시가 힙스터 중심지가 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포틀랜드에는 젊은이가 많이 살고 대중교통과 친환경 문화가 잘 발달해 있으며, 힙스터가 좋아하는 문화적 인프라가 풍부하다. 독립적이면서도 개방적인 도시 분위기의 포틀랜드는 획일적인 삶을 거부하는 힙스터에게 안성맞춤이다.
2010년 포틀랜드를 배경으로 시작된 TV 드라마 「포틀랜디아」가 포틀랜드 문화의 특이성을 세계 전역으로 전파했다. 포틀랜드 문화를 대표하는 지역은 오랫동안 히피 중심지로 알려진 호손 디스트릭트(Hawthorne District)이다. 「포틀랜디아」의 주인공이 사는 지역도 여기다. 북부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거리를 걸어본 사람은 호손의 분위기를 금방 파악할 수 있다. 호손의 중심부는 87년 전통의 바그다드 극장(Baghdad Theater)이다. 미국 서부 도시의 한가운데에 아랍 이름의 극장이라니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바그다드 극장 앞은 항상 관광객으로 붐빈다. 거리 음악가가 관광객을 위해 연주하는 모습도 바그다드 극장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호손을 걷다 보면 히피, 동성애자, 거리 음악가 등 비범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듯 특이한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며 다닌다.
호손에서는 사람만 비범한 게 아니다. 가게와 음식점도 평범하지 않다. 호손에는 히피 음악을 파는 가게, 빈티지 의류나 독특한 소품 등을 파는 가게가 많다. 거리에서 직접 옷을 파는 가게도 많은데, 그런 곳은 대부분 중고상품을 취급한다. 그 외에도 호손에는 인도, 네팔, 멕시코, 에티오피아 등 다양하고 이국적인 음식점이 즐비해 있다.
최근 호손에는 브런치 카페, 버블티 숍, 제과점, 케이크 전문점 등 고소득 전문직이 좋아하는 가게 또한 많이 들어서고 있다. 도시학에서는 고소득 전문직 직장인이 예술가, 히피, 저소득 노동자가 사는 지역으로 이사해 그 지역을 고급문화와 주거 지역으로 바꾸는 과정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보면 전통적 히피 지구였던 호손을 포함한 포틀랜드 전체가 이 과정을 거치는 중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호손이 계속해서 힙스터 문화를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다른 포틀랜드 지역처럼 힙스터 문화가 변질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고급 주택가가 포틀랜드 전역으로 확산해 호손과 같은 힙스터 지역이 없어지면 도시의 다양성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 포틀랜드 고유의 새롭고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 포틀랜드를 위해서라도 적어도 호손만은 규격화되지 않은 도시 문화를 계속 유지해 나가길 소망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듯이, 전성시대를 누리는 포틀랜드의 성공이 영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일부에선 이미 2014년경에 정점을 찍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도시가 미래 혁신을 이끌 창조 계급을 계속 유치하기에는 주택을 포함한 생활 비용이 지나치게 상승했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해에 일본에서 포틀랜드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다. 너무 많이 알려지면 더 이상 힙하지 않다는 통념이 포틀랜드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 골목 상권에서도 관찰할 수 있듯이 뜨는 지역에는 유행과 라이프스타일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유행은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지만, 그렇다고 유행이 떠난 지역이 쇠락하는 것은 아니다. 라이프스타일은 지역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지역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역 산업의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포틀랜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포틀랜드 경쟁력의 원천은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아웃도어, 친환경주의, 독립 문화, 로컬리티 등 포틀랜드가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앞으로의 글로벌 생활 문화를 선도할 탈물질주의 라이프스타일이다. 포틀랜드 라이프스타일 위에 쌓인 거품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원천 경쟁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포틀랜드 모델의 관건은 라이프스타일과 창의성의 결합이다.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을 지속 가능한 생산 문화로, 즉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 창출의 동력으로 활용한다면, 힙스터 도시로서의 명성은 이어질 것이다.
강릉, 목포, 춘천, 영도 등 ‘넥스트 포틀랜드’를 꿈꾸는 한국 도시가 집중해야 하는 분야도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지역을 떠나는 인재를 붙들기 위해서는 서울과 같아져야 한다는 단기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 잔류하거나 서울에서 지역으로 돌아온 인재를 도와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지역을 기회로 보는 인재는 지역에 이미 존재하는, 아니면 지역에서 새롭게 조성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다. 다행히 로컬을 시골, 지방, 변두리가 아닌 자유롭고 독립적인 공간으로 인식하는 밀레니얼이 늘고 있다. 모방보다는 차별화가 지역의 미래라는 사실이 포틀랜드가 한국 도시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