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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an 17. 2020

노마드로 수렴하는 라이프스타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장소나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하기를 원한다.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는 노마드 DNA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본능에도 불구하고 노마드 생활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 확률이 높다. 노숙자나 불법 이민자와 같은 한계 생활을 감수한다면 모를까 노마드 생활은 일정 수준의 경제력을 전제로 한다.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가 2005년 자신의 저서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Homme Nomade)』에서 ‘21세기는 유목민 시대로 간다’고 주장할 때만 해도 노마드는 슈퍼리치와 슈퍼스타, 그리고 IT 개발자에게만 가능한 삶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큰 재산이 없어도 노마드 라이프를 추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2010년 이후 공유 경제가 확산되면서 이제는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자 같은 노마드가 일상적인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 일부는 플랫폼과 연결된 1인 기업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한다.


라이프스타일 관점에서 노마드의 부상이 중요한 이유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수렴 현상 때문이다. 노마드의 본질을 ‘1인 기업×커뮤니티×이동성’으로 정의하면, 보헤미안, 히피, 힙스터 모두 커뮤니티와 플랫폼 기반의 1인 기업, 즉 노마드 기업에서 미래를 찾는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던 반문화 기업이 노마드 기업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규모와 최대한의 기동성을 무기로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일하는 노마드 기업이 1인 경제와 반문화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직업으로서의 노마드

현재 가장 보편적인 노마드 직업은 프리랜서다. 『프리랜서 시대가 온다』, 『긱 이코노미』 등의 책이 출간되는 것만 보아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직업과 일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클라우드 어카운팅 시스템 업체인 프레시북스(FreshBooks)의 2018년 자영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미국에서 독립적인 고객 서비스가 주된 소득원인 프리랜서가 총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3%(총 고용인 1억 2,000만 중 4,200만 명)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2020년까지 2,700만 명의 근로자가 정규직을 벗어나 유연한 근무와 자율성을 추구하는 프리랜서로 일할 것이라 전망한 것이다. 미국의 비정규직은 2005년 총고용의 10%에서 2015년 15.8%로 이미 크게 늘어났다.


실질적인 프리랜서 인구는 더 큰 것으로 추정된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미국 고용 인구의 1/3, 일본 고용 인구의 1/6을 프리랜서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프리랜서가 보편적인 일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레시북스가 정의하는 프리랜서는 한국의 자영업과 다르다. 전자가 고용과 사업의 중간에 있다면, 후자는 사업자에 가깝다. 아직 체계적인 통계는 없지만 한국에서도 프리랜서가 늘어난다고 한다. 특히 영화나 IT 분야에서 프리랜서가 많이 활동한다고 알려졌다.


프리랜서 중 우버 등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제공해 수입을 올리는 노동자를 플랫폼 노동자 또는 긱 워커(Gig Worker)라고 부른다. 플랫폼 경제가 확산됨에 따라 앞으로 긱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일반적인 프리랜서와 긱 워커의 차이는 숙련도와 전문성일 것이다. 프리랜서가 고숙련 노동자라면, 긱 워커는 아직 창의적인 직업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프리랜서로는 디지털 노마드가 대표적일 것이다. 노트북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에 있어도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주로 IT산업의 개발자로 일하는 그들은 프리랜서 또는 기업의 원격 노동자로서 발리, 치앙마이 등 삶의 질이 높은 휴양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창조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디지털 공간과 기술을 통해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자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마드로 분류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특정 주제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구축하든지, 또는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노마드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하다. 사람이 모이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면, 즉 자신만의 플랫폼을 소유하면 광고나 제휴, 컨설팅, 강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반드시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실현하기 위해 투잡이나 멀티 잡을 가진 사람도 자발적 노마드라고 할 수 있다. 투잡과 멀티잡 현상도 플랫폼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튜브, POD 서비스, 아이엠(EyeEm) 등 과거에 취미로 했던 활동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 투잡과 멀티잡의 추구를 물리적으로 쉽게 만든다.


라이프스타일로서의 노마드

노마드를 특정 직업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정착민’ 직업을 가졌어도 노마드식 일과 삶의 방식을 추구할 수 있다. 코워킹 스페이스 중심의 업무방식도 노마드 스타일이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독립적인 사무실보다는 일할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공간을 대여하는 사업체다. 회사가 자체 건물을 보유하지 않고 시내 곳곳의 코워킹 스페이스와 계약해 직원을 배치하는 것도 노마드 방식이다. 회사 안에서도 개인 공간보다 공유 공간 중심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다.


공유 차, 공유 주택, 공유 여행과 같이 생활과 여가 등 업무 외적인 분야에서 노마드 방식을 따를 수도 있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할 수 있고, 여행도 에어비앤비(Airbnb) 등의 서비스를 통해 공유하며 즐길 수 있다. 공유 경제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가 공유 주거다. 도심에서 주거, 일, 놀이를 해결하려는 밀레니얼에게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작은 공간이라도 도심에 위치한 공유 공간이 새로운 대안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부동산 개발 산업의 이해와 맞물려 최근 코리빙 분야의 투자가 급속하게 성장한다.


부족의 시대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의 본질은 1인 기업에 커뮤니티와 이동성을 더한 것이다. 플랫폼과 결합된 노마드는 이미 플랫폼이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 하나가 아닌 다수의 플랫폼에 동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동성 또한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플랫폼에 참여하면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커뮤니티뿐만이 아니다. 많은 프리랜서가 플랫폼 안팎에서 서로 협업하고 플랫폼과 독립된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플랫폼 경제와 결합되지 않은 노마드 사이에서도 커뮤니티 구축이 활발하다. 노마드 문화를 집단 문화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는 스케이트보드, 힙합, 바스켓볼, 그라피티 등으로 대변되는 ‘스트리트 컬처’다. 거리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한 곳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 거리 저 거리를 옮겨 다니는 노마드다. 이들은 또한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속한 그룹과 연대하고 창작하는 것을 중시하는 크루(Crew) 문화를 추종한다. 크루 문화는 음악 산업의 아티스트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창작 문화다. 노마드의 크루 문화는 패션계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스케이트보드를 같이 타던 친구들을 위해 창업한 반스(Vans), 뉴욕 빈민 지역의 청년들의 거리 문화를 모티브해 창업한 슈프림(Supreme)이 크루 문화에서 파생된 브랜드다.


포틀랜드와 브루클린의 힙스터 문화도 크루 문화에 기반해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 도시의 힙스터 산업은 정부가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육성한 산업이 아니고, ‘끼’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재능을 나누고 즐기며 만들어낸 크루 문화의 결과다. 크루 문화는 집단주의 문화가 아니다. 사람이 모여 만든 문화이지만, 근본적으로 노마드 성향의 사람들이 만든 문화로, 위계와 통제로 유지할 수 없는 느슨한 형태의 새로운 연대다.


돌이켜보면 전통적인 유목민도 혼자 이동한 것이 아니다. 일정 규모의 부족과 함께 이동하면서 살았다. 현대 노마드도 부족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현대 노마드는 유목민 본능을 자극하고, 공동체적 이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셸 마페졸리(Michel Maffesoli)의 신부족주의 개념과 부합한다. 마페졸리는 노마드 현상뿐 아니라 현대 사회 전반에서 원초적 시원(始原)주의와 공동체적 이상을 결합한 부족주의가 새로운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한다.


노마드에서 노마드 생태계로

노마드와 크루 문화의 핵심 동력은 플랫폼 경제다. 플랫폼 경제의 도래가 노마드와 크루 문화의 확산을 가능하게 한다. 한발 더 나가면 플랫폼 경제의 배경에는 기술 발전이 있다. SNS,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쉽게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노마드가 느슨한 연대를 구축해 새로운 가치와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다.


노마드 문화의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아탈리가 지적한 대로 현실 세계 노마드의 대부분은 고독과 불안정이라는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이상과 달리 현실적으로는 대부분의 플랫폼 노마드가 199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프리터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긱 산업도 최근 임금과 노동자 권리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긱 산업에 참여하는 운전사와 배달 노동자의 처우와 권리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우버 등 공유 기업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공유 기업이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지 않고 이를 사회에 떠맡기는 기본적으로 비윤리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아직까지는 노마드 경제가 IT 서비스 개발자, 예술가 등 고숙련 노동자에게 안전한 영역일지 모른다. 다가올 노마드 경제 시대를 맞아 정부가 할 일은 명확해진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보다 많은 고숙련 노마드를 양성하고, 규제와 보호를 통해 노마드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


서울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18년 작가, 뮤지션, 프로그래머 등 프리랜서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프리랜서 시장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조례안을 제안했다. 표준계약 지침, 프리랜서 지원, 프리랜서 협동조합 설립 지원이 주요 내용이다. 규제 및 보호와 더불어 노마드 생태계에 투자하는 일도 중요하다. 1인 기업 플랫폼 등 노마드 비즈니스의 비용을 낮추는 온라인 인프라에 투자하고, 노마드의 경쟁력을 높이는 노마드 커뮤니티를 지원해야 한다. 노마드 개인보다는 노마드가 구축하는 커뮤니티와 생태계에 대한 지원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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