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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Dec 16. 2019

反문화가 경제를 살린다

이 책은 19세기 이후 자본주의 역사를 부르주아와 반문화의 경쟁으로 설명한다.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성장주의 대 탈성장주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등의 경제와 정치 제도가 아닌 생활문화의 관점에서 서구의 근현대사를 분석한 것이다. 현재 인류는 라이프스타일 역사의 대 전환점에 서 있다. 19세기 이후 자본주의를 견인한 부르주아 문화가 위기에 빠진 것이다. 부르주아의 미래가 불안하다면 반문화의 미래는 희망적일까? 반문화는 우리에게 어떤 일과 비즈니스, 그리고 도시를 제안하는가?


부르주아 이후의 5개의 반문화는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출현한 반문화가 다음 반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19세기 이후 부르주아와 이를 저항하는 반문화는 상호 작용하면서 라이프스타일의 발전과 다양화를 견인했다. 이 과정에서 둘은 항상 충돌한 것은 아니다. 서로 경쟁하고 보완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힘의 균형은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큰 흐름으로 보면, 라이프스타일의 역사는 절대 열세로 시작한 반문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부르주아와 동등한 지위에 오르는 역사다.


1차 보헤미안의 도전(1830~1920년대)


1830년대 파리를 중심으로 예술가와 지식인 중심의 보헤미안이 신흥 지배 계급인 부르주아에 도전했다. 당시 부르주아 계급은 원거리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이 주축이었고, 암스테르담, 런던 등 원거리 무역의 중심지가 상인 자본주의를 주도했다. 보헤미안에게 비친 부르주아의 이미지는 영혼 없는 가게 주인(Shopkeeper)이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부르주아의 중심은 상인에서 제조업자로 이동한다. 기계와 자원 개발을 통해 미국 경제를 지배하는 독점 기업이 출현한 시기가 이때다. 미국 정부는 반문화가 촉발한 대중주의 운동 및 진보주의 운동(Populist and Progressive Movements)에 무릎을 꿇고 노동법 강화, 반독점 규제, 기업의 정치 자금 기부 금지, 복지 확대 등의 개혁안을 수용한다.


대안 운동으로서의 19세기 실험은 실패한다. 수공업 중심의 대안적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가 미술 공예 운동을 펼쳤으나 소량 생산의 명품 시장이나 대안적 예술 운동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었다.


보헤미안의 도전은 20세기와 21세기에서도 계속된다. 보헤미안이 부르주아에 도전하는 방식은 아방가르드, 대안 예술, 독립 문화다. 20세기 유산 중 하나인 실용주의 디자인은 독일의 바우하우스와 산업디자인을 거쳐 현대 생활 산업과 하이테크 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한다.


2차 히피의 도전(1960년대)


제조업 중심의 부르주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창출하는 체제로 자리를 잡는다. 당시 부르주아의 아이콘은 조직 인간(Organization Man), 관료주의, 그리고 포디즘(Fordism) 생산 체계다. 1950년대가 시작되면서 또 하나의 반문화가 부르주아 경제를 공격한다. 부르주아 기업인뿐 아니라 개인의 자율성을 포기하고 거대 조직의 ‘부품’으로 일하는 부르주아 중산층을 비판한 비트와 히피다.


사랑, 평화, 환락을 추구하던 히피 운동은 1960년대 보수적인 미국 사회를 뿌리째 흔든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대부분의 히피는 다시 중산층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농촌에서 자연 공동체를 결성해 정착한다. 유기농, 로컬 푸드, 비건, 천연 섬유 등이 히피가 자연에서 개척한 새로운 생활 산업이다. 일부 히피는 창업에 뛰어들어 애플, 홀푸드마켓, 벤앤제리스 등 하이테크와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대기업을 창업한다.


그러나 히피는 독립적인 산업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히피 정신으로 출발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히피 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결과로만 보면, 히피 산업과 기업이 부르주아 자본에 포섭된 것이다. 그래도 유산은 남는다. 히피의 유산은 정치 운동과 생활 운동으로 나눠 평가해야 한다. 히피의 정치 운동은 좌절하지만 생활 운동은 청년 세대의 지지를 기반으로 미국의 생활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제3차 보보의 도전(1990년대)


1990년대에는 부르주아와 히피가 혼합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부상하면서 여피와 프레피 등 사회 문화 전반에서 부르주아 문화가 부활한다. 부르주아의 반격은 궁극적으로 보헤미안 부르주아를 의미하는 보보로 수렴한다.


보보는 말 그대로 반문화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한 엘리트를 의미한다. 부르주아 엘리트와의 차이는 가치와 이념뿐만이 아니다. 부르주아 엘리트가 가문에 의존해 엘리트 신분을 세습한다면, 보보는 교육을 통해 신분을 쟁취하고 세습한다. 미국의 새로운 엘리트 계층으로 부상한 보보는 1990년대 변호사, 언론인, 지식인을 중심으로 미국의 주류사회를 장악한다.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하는 보보가 새롭게 개척한 산업은 많지 않다. 기존 기업 중에서는 임팩트 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기업이 보보 기업에 가깝다. 1960년대 반문화 주의자가 선호한 유기농, 즐겨 마시던 티와 커피,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아웃도어를 각각 보유하지만 진보적인 보보 소비자의 기호 식품으로 산업화한 홀푸드마켓, 스타벅스, 나이키도 보보 기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


보보를 부르주아와 독립된 라이프스타일과 산업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삶의 방식과 일의 방식은 부르주아를 따르고, 정치에서만 진보주의를 주창하는 보보. 비판자의 관점에선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의 조합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보보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부르주아는 항상 반문화를 활용하고 수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주주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도 가능해 보인다. 부르주아 내부에서 반문화의 포섭과 자본주의의 개혁을 주도하는 일은 보보의 일이 될 것이다.


제4차 힙스터의 도전(2000년대)


1970년대 히피 운동의 좌절과 1980년대 부르주아의 부활은 반문화의 전반적인 침체로 이어진다. 1990년대 그런지, 힙합 등 대중음악을 통해 명맥을 유지한 반문화는 2000년대 초반 포틀랜드,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힙스터가 부상함에 따라 활기를 되찾는다.


히피가 자연으로 돌아갔다면 힙스터는 도시에서 새로운 도시 문화와 씬을 창조한다. 2000년대 이후 커피 전문점, 레스토랑, 바, 편집숍, 갤러리, 복합 문화 공간, 로컬 푸드 등의 소상공인 기업을 창업해 버려진 지역을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재생한다.


19세기 수공업자와 달리 힙스터는 상당 기간 대형 자본과 경쟁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와 달리 작은 브랜드도 SNS 위치 기반 서비스를 통해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마케팅과 홍보를   있다. 하이테크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을 찾은 하이터치 산업이 동시에 성장하는 것도 힙스터 산업의 자생력에 기여한다.


힙스터 비즈니스는 무엇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밀레니얼에게 매력적이다. 세계 전역에서 스스로를 창작자와 예술가로 인식하는 힙스터 창업자들이 도시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고 자신의 기업을 의미 있는 스몰 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제5차 노마드의 도전(2010년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밀레니얼 사이에서 부르주아 경제에 대한 회의가 확산됐다. 밀레니얼은 금융 자본주의와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스템의 대안을 창조성, 장소성, 삶의 질, 그리고 지속 가능성에서 찾는다. 어디서 누가 만드는지 모르는 상품보다는 자신의 취향과 윤리에 맞고 자신이 아는 장소에서 아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을 선호한다. 탈물질주의의 확산은 미니멀리즘, 업사이클링, 스몰 브랜드, 복합 문화 공간 등 새로운 유형의 창업으로 이어진다.


SNS, 플랫폼, 와이파이, 모빌리티의 발전은 또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한다. 최근 자유롭고 독립적인 일을 찾는 밀레니얼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이 떠오른다. 보편화된 노마드 직업 중 하나가 컴퓨터와 와이파이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중심의 디지털 노마드만이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서 자기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경쟁하는 창작자들도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추구할 수 있다.


노마드 산업이 지속 가능한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 노마드 산업의 주축 중 하나인 공유 경제가 최근 불안한 조짐을 보인다. 위워크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에어비앤비, 우버와 같은 선도 기업도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노마드 경제 성공의 관건은 창조적 커뮤니티의 건설이다. 플랫폼에 참여하는 노동자와 프리랜서의 커뮤니티가 새로운 창업과 혁신의 장으로 기능해야 플랫폼 자본주의가 성공할 수 있다.


반문화의 역전 가능성


반문화의 과거는 불행했을지 모르나 반문화의 현재와 미래는 희망적이다. 과거에도 개인의 자유, 다양성, 창의성을 부르짖는 반문화는 항상 젊은이의 피를 끓게 하는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이었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었다. 반문화를 따르면 사회 전체의 성장을 견인하기는커녕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반문화가 그동안 부르주아를 대체하지 못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19세기 수공업의 산업화에 실패한 보헤미안과 그 후손은 이후에도 계속된 도전과 기술 및 콘텐츠 개발을 통해 지속 가능한 대안적 산업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왔다. 인터넷 기술이 보편화되고 환경운동이 생활화되는 1990년대에 이르면 힙스터와 노마드와 같은 반문화가 오히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일과 직장을 창출하기 시작한다.


현재 라이프스타일, 로컬, 지속 가능성, 커뮤니티, 삶의 질 등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사인을 발신하는 산업은 거의 예외 없이 1960년대 반문화가 개척한 산업이다.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기술로 정의할 수 있는 4차 산업 혁명 기술의 기원도 1960년대 히피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기술이 히피가 추구했던 탈물질주의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블록체인, 모빌리티, XR(Extended Reality, 확장 현실), IoT(Internet of Things, 사물 인터넷) 등 자유와 커뮤니티에 대한 욕구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기술이 개인 자유주의 사회의 실현을 가능하게 한다.


반문화도 고용 창출의 동력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부르주아가 계속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부르주아는 한편으로는 반문화를 무시하고, 또 한편으로는 반문화 개혁을 수용하면서 계속 지배력을 유지했다. 그동안 부르주아가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도덕적, 문화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중산층과 서민층에 안정된 고용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반문화가 부르주아를 대체할 만한 충분한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처럼 부르주아는 대량 실업을 유발하는 기술에 집중하고, 반문화가 기술과 사람을 융합한 새로운 산업과 고용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양상이 계속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부르주아와 반문화의 지위는 뒤집어질 수 있다. 부르주아가 아닌 반문화가 경제를 살리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반문화가 스스로의 힘으로 부르주아와 경쟁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그 명분은 충분하다. 중산층 고용의 창출을 위해 1인 보헤미안 기업, 공간 콘텐츠 창업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반문화가 대표하는 직업, 일, 산업에 투자할 수 있다.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 확산되고 대기업과 전통 산업이 고용을 줄이는 상황에서 저숙련 중산층 노동자는 새로운 소상공인, 자영업 직업군으로 흡수될 것이다. 현재 직업 및 산업 분류 체계하에서 반문화 직군은 대부분 소상공인과 자영업으로 분류된다. 반문화 산업을 지원하는 일은 곧 소상공인과 중산층을 지원하는 일이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진행되면서 대량 실업과 소상공인 위기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폐업과 실업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미래형 소상공인을 육성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단기적인 구제 방안으로는 긴급 경영 자금 대출, 실업보험 확대, 일자리 지원금 인상, 페이와 배달 등 소상공인 공공 서비스 확충 등 다양한 정책을 검토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소상공인 육성이다. 미래형 소상공인은 공간 창업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로 분류할 수 있으며, 각각 다른 인프라가 필요하다. 공간 창업자에게는 지역 공동체와의 상생을 가능하게 하는 골목 상권과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스마트 상점이, 프리랜서에게는  사업 주기별(훈련-창업-운영-폐업) 또는 사업 단계별(연구개발-구매-계약-생산-마케팅-판매) 온라인 경영 지원을 제공하는 통합 포털이,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단기 일자리뿐 아니라 커뮤니티와 창업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창업 플랫폼이 비용을 낮추고 권리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인프라다.


미래 경제에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상생, 포용, 통합, 지속 가능성이 핵심 가치다. 미래 경제가 희망적인 이유는 오랫동안 반목하고 갈등했던 부르주아와 반문화의 상생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의 발전이다. 선제적 투자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부르주아와 반문화의 상생을 실현하는 나라가 미래 경제를 주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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