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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an 19. 2020

노마드와 도시의 불안한 동거

도시는 형용사와 어울린다. 창조, 문화, 글로벌, 전원, 자동차, 보행자 등 그 앞에 어떤 단어를 붙여도 그 의미가 명확하다. 라이프스타일 유형과도 조합될 수 있다. 부르주아 도시, 보헤미안 도시, 히피 도시, 보보 도시, 힙스터 도시 등. 하지만 마지막 6번째 라이프스타일인 노마드는 예외인 것 같다.  


노마드 도시 단어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도시가 정착민의 공동체라면 정착민이 아닌 이주민 중심의 노마드 도시는 형용모순(Oxymoron)이다. 그런 노마드 도시가 만약에 존재한다면, 전근대의 오아시스처럼 "아주 가끔씩 지나가는 대상 행렬을 자기네 [도시]로 통하게 만들려고 싸움을 벌이는" 빈껍데기 도시에 불과할지 모른다.


노마드 행렬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서 승리해도 원주민에게 좋은 도시가 될지는 확실치 않다. 뉴욕, 런던, 파리, 마이애미, 라스베이거스 등 세계 곳곳에서 세계화 시대의 노마드로 불릴 수 있는 관광객, 외국인 투자자, 외국인 노동자가 원주민을 둥지에서 몰아내는 현상이 발생한다. 급기야 캐나다 밴쿠버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 소유의 주택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마드 도시를 이주민에 개방적인, 다양한 이주민이 공존하는 도시로 정의할 수 있었다. 공동체와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지금, 이주민 개방성으로만 노마드 도시를 정의하기 어렵게 됐다. 빈집, 부동산 폭등, 빈부격차 등 많은 도시가 이주민, 특히 부동산에 투자하는 이주민의 유입으로 발생한 사회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현재 노마드와 도시가 불안하게 동거하고 있지만 미래는 다를 수 있다. 원론적으로 '영혼 있는' 노마드 도시는 노마드에 개방적이지만 주민 중심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도시다. 이런 도시는 노마드 방식으로 원주민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노마드 기업이 모일때 가능하다. 과연 그런 도시가 존재할까? 디지털 노마드, 프리랜서, 플랫폼 기업, 스트리트문화 기업 등 노마드 도시가 유치하고 배출할 수 있는 노마드 기업의 유형 별로 후보지를 논의한다.  



디지털 노마드가 선호하는 도시


노마드 기업 중 디지털 노마드가 가장 최근에 형성된 노마드 유형이다. 현재로선 두 가지 기준으로 디지털 노마드 도시를 개념화할 수 있다. 첫째가 디지털 노마드가 살기 좋은 도시이며, 두 번째가 그들이 비즈니스 하기 좋은 도시다.


먼저 디지털 노마드가 살기 좋은 도시다. 디지털 노마드가 언론에 등장한 이후 이 그룹에게 가장 좋은 도시를 평가하는 언론 기사를 흔히 볼 수 있다. 초기에 인기 있는 도시로 부상한 곳이 치앙마이, 발리, 조호바루 등 물가가 싸고 날씨가 좋은 동남아 휴양지였다. 이후 유럽과 북미의 작은 도시들이 디지털 노마드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새로운 목적지로 등장했다. 에스토니아 탈린, 폴란드 크라코우, 헝가리 부다페스트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 불리는 동유럽의 소도시다.


2세대 디지털 노마드 도시는 1세대와 달리 인터넷 인프라와 디지털 비즈니스 환경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삶의 질, 인터넷 속도를 넘어 디지털 노마드의 창업을 유도할 수 있는 규제환경을 만든 것이다. 홍콩, 밴쿠버, 샌프란시스코 등 하이테크 대도시들 모두 블록체인, 가상화폐 등 새로운 디지털 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 블록체인 산업을 유치하는 대표적인 소도시로는 스위스의 추크(Zug)를 들 수 있다. 추크는 금융, 유통 등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핀테크, 블록체인, 가상화폐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일부 연구 기관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 노마드 인구가 2035년까지 10억 명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세계의 많은 도시와 국가가 규제 완화와 인프라 투자를 통해 디지털 노마드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이유다. 하지만 어떤 도시가 디지털 노마드 경제로 성공할지는 확실치 않다.  경제가 초기 단계이어서 아직 대표적인 디지털 노마드 도시를 배출하지 못했다. 현재 확산되는 플랫폼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고려할 때 디지털 노마드 도시가 지속가능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추크가 구상하는 대로 디지털 노마드의 집적이 가시적인 산업으로 결집돼야 디지털 노마드 도시가 지속가능해질 것이다.



프리랜서에 친화적인 도시


지금까지는 노마드 도시 논의가 노마드 경제를 선도하는 디지털 노마드 중심으로 진행됐다. 앞으로는 유치 대상 노마드 디지털 노마드에서 긱,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일부 연구는 2030년이면 미국 노동자의 50%가 실질적인 프리랜서로 활동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자에게 좋은 도시를 평가하는 기준은 플랫폼 산업의 규모, 플랫폼 노동자의 임금, 코워킹 스페이스 편리성이다. 플랫폼 산업이 활발한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애틀랜타, 보스턴 등의 대도시가 상위권에 랭크된다.


앞으로는 도시 경쟁력도 기업 투자 유치가 아닌 프리랜서 유치 능력으로 결정될 것이다. 이미 일부 도시 경쟁력 평가는 창조인재 유치 실적과 능력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사용한다. 아직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자의 환경으로 도시 경쟁력을 평가하는 연구기관은 없다. 창조사업과 창조인재와 달리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자 중심의 도시가 우리가 원하는 도시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직도 안정된 고용과 복지를 제공하는 대기업 정규직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고, 언론에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많이 보도하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플랫폼 노동자 기준에서 도시 경쟁력을 평가할 것이다. 다시 말해,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공유 경제 인프라와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도시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 모든 도시가 플랫폼 노동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환경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프리랜서의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플랫폼 비즈니스 환경이 좋은 도시


노마드 경제를 프리랜서와 긱 노동자를 고용하는 공유 플랫폼 비즈니스로 한정한다면, 노마드 비즈니스가 가장 활발하고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주도하는 도시는 샌프란시스코다. 실리콘 밸리는 반도체, PC, 스마트폰, SNS, 모바일 OS, 샌프란시스코는 이커머스, 공유경제, 블록체인 비즈니스 중심으로 발전한다. 특히, 공유경제는 샌프란시스코가 독립적으로 개척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가 중심지다. 공유경제 초기 단계였던 2015년에 전 세계 공유 스타트업의 15%가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있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유니콘을 배출할 정도로 샌프란시스코는 압도적인 규모의 벤처 캐피털과 하이테크 산업을 자랑한다.


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 판매를 위한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크레이그리스트, 회원제 렌터카 공유 회사 집카 등 초기 공유경제 모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됐다. 크레그 리스트 창업자 크레그 뉴마크(Craig Newmark)는 정보공유를 일종의 커뮤니티 사업으로 생각한다. “커뮤니티는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며, 면역시스템처럼 자체적으로 규율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도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의 하이테크 산업이 히피 문화의 연장선이라는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는 우버,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를 대표하는 대기업을 배출했다. 2007년 가을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는 컨벤션에 참가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왔지만 호텔을 구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방을 빌려주면서 에어비엔비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했다. 우버의 창업 과정도 유사하다. 2008년 겨울 자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을 매각한 가렛 캠프(Garrett Camp)와 트래비스 캘러닉(Travis Kalanick)은 파리의 한 모임에서 만나 샌프란시스코에서 택시 잡기 어려운 문제를 불평하다 승객과 운전사를 연결하는 기술을 창안한다.


진정한 의미의 노마드 창업가, 즉 한 번의 창업에 만족하지 않고 창업한 기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즉시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는 연쇄 창업가 문화도 창업문화가 제일 발달했다고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가 중심지다. 대표적인 실리콘밸리 연쇄 창업자로는 선 마이크로시스템(1982), 그래나이트 (1995), 케알리아(2001), 아리스타네트워크(2005)를 연달아 창업한 안드레 본 베크톨샤임을 꼽을 수 있다. 그가 연쇄 창업으로 모은 자산은 2018년 67억 불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hobhit Seth, Investopedia, 2019/9/16). 애플 컴퓨터를 창업한 후 회사를 떠나 넥스트 컴퓨터(Next Computer), 픽사를 창업하고 애플로 돌아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연이어 개발한 스티브 잡스도 연쇄 창업가로 부를 수 있다.  


노마드 기업이 창업하기 좋은 도시와 공존하는 개념은 노마드 노동자가 활동하기 좋은 도시다.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가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운동을 선도하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이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좋은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2019년 9월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우버와 리프트의 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한 판결을 내린 것을 볼 때 앞으로도 캘리포니아는 플랫폼 노동자 관련 법과 제도의 개혁을 선도할 것으로 보인다.


공유경제는 도시 인프라와 관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많은 도시들이 공유 자전거, 공유 주차장, 카플링 등 공유경제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해 도시의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크라우드 펀딩, 공유 자원 동원 등 공유경제 콘셉트를 낙후지역과 재해대비 문제에 적용하는 노력도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크루 창업가를 배출하는 도시


노마드를 크루 문화로 정의하면, 미국을 대표하는 노마드 도시는 스트리트컬처가 강한 뉴욕, LA, 샌프란시스코다. 크루 문화는 보통 미국 도시의 서브컬처에서 형성된다. 뉴욕의 거리문화(Street Culture), LA의 보드 컬처, 서핑 컬처가 대표적이다. 스포츠 중 유독 서핑과 보드가 크루 창업가를 많이 배출한 것은 연이 아니다. 자크 아탈리가 지적한 대로 노마드 DNA를 지닌 현대인은 이주성 노마디즘을 대체할 수 있는 스포츠를 즐긴다 (자크 아탈리, 호모 노마드, p443). 서핑과 보드가 노마디즘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대표적인 노마드 스포츠다.


거리에서 보딩을 즐기던 친구들이 크루를 형성해 일군 대표적인 기업이 슈프림이다. 1994년에 창업한 슈프림은 처음으로 명품으로 도약한 스트리트 브랜드다. 대기업으로 성공한 이후에도 거칠고 반항적인 보드 문화에 충실한 보더와 아티스트 중심으로 직원, 고객, 마니아 층을 운영한다. 창업자가 회사 내의 공식 타이틀이 없는 등 창업 당시의 느슨하고 비공식적인 크루 컬처를 조직문화로 유지한다.


LA의 보드 문화를 대표하는 기업이 반스다. 1966년 창업한 LA의 대표적인 운동화, 의류 브랜드다. 반스 브랜드의 핵심 가치는 뮤직, 액션스포츠, 아트, 스트리트컬처다. 스포츠, 스트리트, 음악, 예술 문화 등 LA의 대표적인 지역문화를 하나의 브랜드로 융합했다. 특히, 1960년대 소외됐던 빈민 지역의 청소년들을 브랜드의 상징으로 설정해, 그들이 거리에서 즐기는 스포츠와 보딩에 필요한 신발과 의류를 출시했다.


LA의 서핑 컬처도 노마드 성격의 브랜드를 다수 배출했다. 미국의 서핑 중심지 캘리포니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퍼 패션 브랜드, 서프보드 제작 회사가 많은데, 매출 규모는 연간 80억 달러에 이른다. 서핑은 젊은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라이프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도 서핑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후와 자연환경이 서핑을 하기에 알맞은 캘리포니아에는 매년 전 세계 서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 연구자는 크루 문화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크루 문화를 지탱했던 청년 세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급속도로 구매력을 상실했다. 청년 세대의 소비가 줄자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것은 아베크롬비(Abercrombie), 제이 크루(J. Crew) 등 청년 문화를 브랜드화한 패션 대기업이었다. 불경기가 지속되자 청년들이 고가 브랜드보다는 H&M, 자라, 유니클로 등 값싸고 디자인 품질이 높은 저가 브랜드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피상적인 청년 문화에 기반한 브랜드와 깊은 스트리트 컬처에 기반한 브랜드의 차이는 존재한다. 애버크롬비 등 일부 스트리트 브랜드가 불경기에 빠진 반면, 슈프림, 반스 등 스트리트 브랜드를 대표하는 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노마드 도시는 아직 진화하는 개념이다. 도시를 소비공간으로 인식하는 하이퍼노마드와 단순 노동을 제공하는 인프라노마드의 유입은 공동체 도시가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지속가능한 노마드 도시 모델은 노마드가 활발하게 창업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도시, 바로 노마드 기업의 도시다. 아직 노마드 도시의 성공 사례를 찾기 쉽지 않지만, 그 도시는 힙스터, 보헤미안, 보보가 선호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개방적인 도시일 가능성이 높다. 브루클린, 포틀랜드, 베를린 등  '라이프스타일 가이드북'에서 소개된 반문화 도시가 노마드 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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