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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an 27. 2021

사택 도시 울산 동구

울산은 한 도시가 아니다. 여러 지역이 독립적으로 발전해 온 전형적인 다핵도시다. 울산 '도시' 중 가장 특색 있는 도시는 동구다. 공장과 상업지역이 분리된 일반적인 산업도시와 달리 동구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대기업 공장과 백화점이 서로 마주 보는 곳이다.


현대중공업 본사와 조선소가 위치한 울산 동구는 한국 조선산업의 중심지다. 그런데 다른 산업도시와 마찬가지로 동구도 제조업 불황으로 전례 없는 위기감에 젖어 있다. 과연 동구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해답은 한 가지다. 자생적인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기존 산업을 혁신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창조도시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동구를 비롯한 산업도시들이 지향해야 할 미래 모델이다.

울산 동구의 모델이 될 만한 해외 도시로 피츠버그를 꼽을 수 있다. 많은 전문가가 철강산업 사양화의 여파를 극복하고 보건, IT 서비스 등 새로운 산업을 개척한 피츠버그를 창조도시로의 전환에 성공한 대표적인 산업도시로 주목한다.

울산의 현재 상황이 피츠버그가 1980년대에 겪었던 위기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철강산업을 포기한 피츠버그와 달리 동구는 조선산업을 대체할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도화와 혁신을 통해 조선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

또한 조선과 해양 플랜트 기업으로 알려진 현대중공업은 엔진 기계, 로봇, 그린 에너지, 건설장비 등 비조선해양 부문에도 이미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투자 규모도 매우 크다. 현대중공업 비조선해양 부문의 2015년 매출은 전체 매출의 45%인 60억 달러에 이른다. 건설장비를 제외한 다른 비조선해양 부문은 미래 산업으로도 유망하다.

미래 산업을 발굴하는 것과 관련해 현대중공업과 동구가 주목해야 할 기업은 일본의 대표적인 중공업 기업 히타치다. 히타치는 2008년 가전사업의 부실로 8000억 엔의 적자를 냈지만, 기존 사업에 대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차세대 산업을 발굴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 인프라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위기에 직면한 울산의 중공업 산업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히타치의 유연함과 대담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특히, 에너지, 도시개발, 수송, 보건, 수자원 등 다양한 사회 인프라 분야를 사회 혁신 사업으로 통합한 히타치의 비즈니스 모델은 새로운 성장 산업을 발굴해야 할 과제 앞에 선 현대중공업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히타치의 비즈니스 모델을 따른다면 현대중공업이 새로 진출해야 할 분야는 수송, 보건, 수자원 등 현재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포함되지 않은 사회 인프라 부문이다.

창조산업을 발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창조인재의 유치다. 어쩌면 창조인재를 유치하는 일이 창조 산업을 발굴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일 수 있다. 창조산업이 성공적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입지 조건이나 자본보다는 창의성을 가진 인재의 창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창조인재를 유치하는 것과 산업 인재를 유인하는 것은 다르다. 창조인재는 문화, 환경, 생활 인프라 등 도시 공간의 쾌적함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행히 동구는 다른 산업도시와는 차별화된 도시 문화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설립자의 근로자 복지 철학을 이어받아 지속적으로 도시 인프라에 투자한 결과다.

동구 해변에 넓게 자리한 현대중공업 조선소 입구에 현대중공업 본사가 있고, 바로 근처에는 백화점, 예술관, 병원, 호텔 등 선진국 산업도시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 시설이 들어서 있다. 또 주거 환경과 교육 인프라를 공급하기 위해 정문 지역을 중심으로 학교, 공원, 호수가 조성된 대규모 주거단지를 건설했다.


현대호텔에서 바라본 현대중공업 본사와 정문 앞 현대백화점. 다른 대기업과 달리 현대중공업은 생산 사업장을 둘러싼 지역에 직원을 위한 주거단지뿐 아니라 백화점, 병원, 공원, 학교, 미술관 등 최고 수준의 생활 인프라를 구축했다. 다른 산업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사택 도시 인프라를 바탕으로 창조도시로 발전하는 전략이 울산 동구가 추구해야 하는 탈산업화 모델이다.


조선소와 주거 지역의 자연환경도 쾌적한 편이다. 조선소 남쪽에는 울산시가 자랑하는 일산해수욕장이 위치해 있고, 해수욕장 주변에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해수욕장 아래에는 대왕암, 방어진, 슬도 등 매력적인 해변 관광자원이 펼쳐있다.

해외 선주 회사가 울산에 파견한 2000여 명의 감독관 사회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꽃바위 외국인 상권은 ‘제2의 이태원’으로 불린다. 이곳에는 다양한 외국 음식 전문 식당, 커피 전문점, 외국인 바 등이 모여 있어 활발한 글로벌 도시문화를 즐길 수 있다.

이처럼 울산 동구에는 해변, 공원, 골목상권, 학교 등 창조 인재를 유치하는 데 필수적인 도시 자원이 풍부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동구가 아직 젊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동구가 서울의 홍대, 이태원과 같은 젊은 문화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 정부뿐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은 울산대학교 등 지역 대학의 디자인 관련 기관을 동구로 이전하는 것이다. 미국의 시러큐스 대학은 디자인 대학을 도심으로 이전함으로써 시러큐스 도심 전체의 재생을 주도했다. 동구도 지역 대학의 지원을 바탕으로 일산해수욕장에서 꽃바위에 이르는 지역을 젊은 문화의 중심지로 개발해야 한다.

도시 재생을 반드시 정부가 주도할 필요는 없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심에 교육, 문화, 상업 시설을 유치함으로써 도시 재생을 이끈 인터넷 신발 판매 기업 자포스의 사례가 보여주듯, 도시 재생은 민간사업자가 참여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개발사업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아라리오 미술관이 미술관을 중심으로 제주 원도심을 재생하는 등 민간 주도의 도시 재생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울산 동구는 한 기업이 도시 전체를 새롭게 건설한 우리나라 기업도시의 원형이다. 현대중공업은 동구에 근로자의 사택만 조성한 것이 아니라 백화점, 병원, 공원, 학교, 미술관 등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생활 인프라를 구축했다.

다른 산업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창조도시 자원을 보유한 동구가 해야 할 일은 창조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문화를 조성하고 현대중공업의 사업 재편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사택 도시에서 창조도시로 발전하는 동구가 우리나라 탈산업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출처: 조선비즈, 201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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