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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Oct 20. 2017

라이프스타일에서 찾은 서울의 미래

도시 미래에 중요한 변화는 기술 변화와 가치 변화로 양분된다. 한국 도시들은 스마트 도시, U-City 등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변화에 분주하게 대응한다. 양적 성장보다는 자유, 개성, 자아실현, 삶의 질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의 부상에 대한 대응도 중요한 현안으로 등장했다.


탈물질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미래 세대가 원하는 도시가 어떤 도시일까?


개성 있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창출되고 공존하는 도시, 자신이 꿈꾸는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할 수 있는 개방적인 도시,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인재와 기업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도시산업을 창출하는 도시,


바로 라이프스타일 도시다.


뉴욕, 런던, 도쿄와 같은 글로벌 메가시티만이 라이프스타일 도시가 아니다. 포틀랜드, 코펜하겐, 베를린 등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도 매력적인 도시문화로 젊은이와 예술가를 유치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다.



한국 경제위기의 본질


도시 문화와 산업을 창출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이 처한 사회와 경제위기는 탈물질주의 경제에 대한 부적응에 기인한다.


전 세계가 탈산업화 경제, 탈물질주의 경제로 전환되고 있음에도, 한국경제는 전통적이고 획일적인 대기업, 수출, 제조업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개성과 차별성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한국 대기업들이 기술력과 조직력만으로는 중국과 경쟁국의 추격을 따돌리는데 한계가 있다. 경쟁국 기업이 모방하기 어려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축적된 한국 문화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둘째, 전 세계, 특히 선진국 소비자의 취향이 물질적 가치에서 탈물질적 가치로 변화하고 있다. 감성, 문화, 개성,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던 소비자에게 품질과 가격 경쟁력은 선호하는 브랜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탈물질주의 경쟁력의 중요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분야는 애플과 한국 기업이 경쟁하는 스마트폰 산업이다.


아이팟, 아이폰 등 전자제품으로 새로운 IT 문화를 개척한 애플은 단순한 전자기기를 넘어 그 문화를 판매하는 탈물질주의의 대표 주자다. 개인을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이단 정신을 토대로 혁신적인 기술을 선도했고, 문화적 정체성을 그들의 제품에 매력적인 가치로 담아냈다. 애플 상품을 통해 혁신과 변화의 가치를 소비하는 탈물질주의 소비자들은 이제 모든 영역에서 가치 소비를 지향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기업은 애플과 달리 뚜렷한 문화 정체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가 아이폰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면, 한국 스마트폰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과거에도 한국 산업은 탈물질주의 문턱에서 무너졌다.


뛰어난 기술력과 연구개발 능력으로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능력은 탁월했으나, 가치를 소비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부산 신발산업과 SKT 싸이월드가 적시에 문화산업과 문화브랜드로 전환했다면, 나이키와 페이스북이 세계 시장을 쉽게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소비자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모든 소비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탈물질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한국 산업과 도시는 전환점을 맞아야 한다. 한국적 가치와 문화를 제품에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때다.

 

출처 해럴드경제


서울도 탈물질주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시사하듯이 서울은  역동적인 청년문화와 연예산업을 자랑하는 문화도시다. 서울이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면 머지않은 장래에 아시아에서 도쿄, 홍콩, 싱가포르와 경쟁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서울이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발전하려면, <라이프스타일 도시>가 제시한 개방성, 차별성, 유연성, 세계를 지향하는 '강소도시' 모델, 즉 '작은 도시 패러다임'을 실천해야 한다.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는 '작은 도시 패러다임'의 핵심 성공 조건은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다른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추종하는 기존 방식을 고수해서는 결코 성공한 도시를 만들 수 없다.


서울이 잘할 수 있는 산업, 서울만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이미 사람들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살고 싶은 도시를 결정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젊은 인재가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할 수 있는 도시만이 선순환적 지역 발전이 가능하다. 최근 '살고 싶은 도시'로 부상한 제주, 부산, 강릉 등은 글로벌 강소도시처럼 친환경, 해양레포츠 및 영화, 커피와 서핑 등 지역 환경과 문화자원을 활용한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우며, 관광객과 이주민을 유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도시들 고유의 문화 정체성은 정부 중심의 획일적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매우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5천 년 역사를 거쳐 형성된 지역 문화,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특색과 장점, 산업화 과정에서 생성된 각 지역 산업 기반과 문화 등 정체성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자원은 아직도 풍부하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 지역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발전해온 문화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도시들마다 내재된 정체성을 확립하고 발현하려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발굴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구체화하고 생활화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성장 시대 대응 전략으로 지역 산업의 소재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시애틀은 커피 문화를 기반으로 커피산업을, 포틀랜드는 아웃도어 문화를 활용하여 스포츠 의류 산업을 육성했다. 홍대 홍합밸리, 성수동 소셜벤처밸리, 제주 화장품과 녹차산업, 강릉 커피산업, 부산 해양스포츠 산업 등 한국에서도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지역 산업이 늘어나고 있다.











도시 라이프스타일에서 차별성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도시는 환경, 생활, 문화 인프라 등 세계화 추세에 걸맞은 보편적 인프라, 즉 도시 어메니티(amenity)를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골목길 상권은 탈물질주의 경제가 중시하는 개성, 스타일, 다양성의 상징이자 동시에 세계의 젊은 층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도시 어메니티의 하나다.


창조인재와 창조산업을 유치하려면 신도시 건설, 대기업 생산시설 유치 등 고전적인 도시 발전 방식을 버려야 한다. 원도심 재생, 골목길 문화 활성화, 예술과 문화 교육 기관 유치 등 개성 있으면서도 보편적 편의성을 증진하는 도시 어메니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파워 도시 런던과 도쿄도시 재생을 통해 살기 좋은 도시로 발전한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과 마찬가지로 도시도 하드웨어 경쟁력보다는 소프트파워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일본 츠타야 서점 창업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새로운 브랜드 창조를 위해 디자인 능력을 핵심으로 꼽는다. 지역 정부와 기업도 개인/기업/도시의 정체성, 일/공간/생활의 연계, 기업/도시의 상호작용 등 지역과 문화의 관계에서 고객의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디자인 능력을 키워야 한다.


가치와 정체성을 가시화할 수 있는 창업자와 정책가에 의해 지역성이 지역 라이프스타일로, 지역 라이프스타일이 지역 산업으로 창조될 수 있다.


연희동 라이프스타일샵 비나리


골목상권과 라이프스타일 도시


작은 도시 패러다임에 입각한 ‘라이프스타일 도시 서울’은 각 단위 지역이 가진 고유한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유치하고 개발하는 도시로의 경제 시스템 전환을 의미한다.


지리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서울 내 각 지역 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면서 성장해 나간다면, 서울 전 지역이 활기 넘치는 도시 문화와 산업 중심지가 될 수 있다. 지역경제 의자 생력과 관련해 유념할 개념은 산업생태계다. 지역 산업생태계란 기업, 정부, 연구소, 대학 등 다양한 경제 주체가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기존 산업을 혁신하고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창조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충무로 영화산업, 동대문 패션산업, 테헤란로 벤처산업, 금천 디지털단지 등 서울에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산업 클러스터가 존재하지만, 자생적인 혁신 생태계로 기능하면서 기존 산업을 혁신하고 새로운 산업과 기업을 창조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서울이 문화적 특색을 살린 기업을 유치하고 개발하려면 지역 고유의 특색을 찾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단위 지역들 내 골목길 상권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홍대에서 시작된 골목길 상권은 2000년대 중반 급성장했다. 현재는 연남동, 연희동, 부암동, 성수동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골목길이 20~30개에 이른다.


골목은 젊은이들이 획일적인 소비문화를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취향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명품, 대량 소비, 가성비 가물 질주의 소비문화를 대표한다면, 작은 사치, 감성 소비, 문화 체험은 골목길이 제공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다.


각 지역 골목 상권에서 독특한 골목 문화를 토대로 골목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이들이 거주하면서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 서울’은 곧 골목 산업 생태계의 조성을 의미한다.

골목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다양한 인재들을 유입 골목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라이프스타일 기반 창업이 활성화한다면, 가치 중심 소비에 부합하는 경쟁력 있는 도시 될 수 있다.



서울의 골목길 라이프스타일 중심지는 홍대다.


예술과 문화 인프라를 기반으로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면서, 홍대에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구축됐다. 많은 젊은이들이 인근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고자 한다.


골목길을 사랑하는 미래 인재들은 '라이프스타일 도시'를 꿈꾼다.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고 개성 있는 문화가 담긴 골목길 부상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골목 문화는 단순히 젊은이들의 소비문화가 아닌, 생활의 변화임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다운타운(Downtown) 라이프스타일의 한 유형이다.  


일터와 멀리 떨어진 교외에서 사는 것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이들은 도심에서 일하고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기성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 서버번(Suburban)이라면, 골목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다운타운이다.



라이프스타일 도시가 '사람 중심 도시'


라이프스타일 도시 서울은 지역 거점 중심으로 다양한 도시 문화와 산업을 생산하고, 시민들이 그 거점을 중심으로 일하고 생활하는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도시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추구한 과거에는 도시 재개발과 신도시 건설로 서버번 라이프스타일을 지원했다면, 매력적인 도시문화로 인재와 자본을 유입할 수 있는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 확립을 위한 도시재생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다.


도시재생을 통해 쾌적한 주거 시설뿐만 아니라 세련되고 개성 있는 도시 문화와 기업 생태계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인재를 모으고 도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은 특정 지역의 독점적 우위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국 도시 발전에 긍정적 메시지를 던진다. 골목상권들의 지리적, 환경적, 역사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도시 문화가 형성되므로, 이를 추구하는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도 차별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 웨스트 빌리지, 브루클린 등 뉴욕 안에도 다양한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듯이, 서울에서도 홍대, 성수동, 이태원 등은 각기 다른 골목 씬(Scene)을 연출하며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한다.


한국이 선망하는 모든 선진국은 이미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이 창출한 창조산업, 문화산업, 환경산업으로 높은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고 있다.

앞으로, 도시문화를 즐기며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도시가 창의적이고 유능한 인재를 흡입하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가치 변화의 중요성을 인식한 문재인 정부는 ‘기업 중심 경제’가 아닌 ‘사람 중심 경제’를 경제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사람 중심 경제는 소득 재분배로 사회적 약자의 소득이 높아지는 경제가 아니다. 개인의 삶의 질과 자아실현이 새로운 산업과 고용을 창출하는 경제다.


사람 중심 경제의 1차적인 실험장은 단연 다양한 계층과 업종의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다. 도시재생과 지역 분권 사업을 통해 정부는 한국의 도시를 개인의 창의력과 사회적 책임성을 높이는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서울시가 창의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추진하는 세운상가 도시 제조업과 창신동 봉제업 생태계 복원도 다운타운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지역 산업 육성 정책이다. 복합 문화공간 조성, 보행로 개선 등과 더불어 주민공동체가 주도하는 관광명소화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골목 정체성에 맞는 산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역 주민, 청년 사업가, 골목 장인들의 협력으로 골목 문화자원을 활용해 지역 산업을 활성화하는 도시재생은 서울 전 골목으로 확대될 것이다.


서울이 개척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가 궁극적으로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 ‘지역이 성장을 주도하는 나라’를 실현하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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