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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r 07. 2020

코로나바이러스와 지역의 재구성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다. 세계와 국가 상황보다는 우리가 사는 동네와 지역의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지역감염이 우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 생활 패턴도 지역 중심으로 변한다. 위기 발생 후 많은 사람이 멀리 떨어진 상권보다는 개인적으로 친밀한 동네 상권 중심으로 활동한다. 위기가 장기화되면 우리의 생활 무대는 신뢰자본이 아직 살아있는 우리 동네와 지역으로 옮겨질 것이다.


문제는 지역의 준비 상태다. 과연 지역이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생활환경과 경제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지역 정부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을 보면 그 답은 부정적이다.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주민 보호에도 역부족이다.   


한국의 전염병 방역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와 광역 지차체 중심으로 운영된다. 지난달 '코로나 3 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우리의 생활권을 관리하는 시군구 정부가 지역 내 확진자의 역학관계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과 인력이 없었다. 대구가 보여주듯이 시도 광역정부도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격리병상과 격리시설, 방역 장비와 치료제를 확보할 수 없다. 현재 규정으로는 중앙정부와 민간단체가 지원한 자금도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대구 시장이 예산 집행에 대한 면책특권을 요청할 정도다.


지역 정부가 왜 이렇게 력할까. 지자체장의 개인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지역 인력과 예산을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강력하고 능동적인 지역 정부를 원한다면 국가 운영 시스템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지역 정부의 무기력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성공 신화로 자리 잡은 국가주의와 세계주의의 산물이다.


국가주의와 세계주의의 지배는 지역에 대한 무관심과 경시로 이어졌다. 다른 선진국이 공통적으로 세계, 국가, 지역이 상호 보완하는 발전 전략을 추진했다면, 한국은 ‘지역 없는’ 세계와 국가 중심의 성장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한국 엘리트 사이에는 한국 같은 ‘작은 나라’는 국가산업을 키우고 이를 수출해야 먹고살 수 있다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그들의 상당 수가 지방자치는 한국에 맞지 않는 제도라고 믿는다.


세계화 시대에는 한국의 선택이 현명해 보였다. 그러나 세계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를 맞는다. 미국에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급기야 2016년 대선에서 자유무역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다. 유럽에서는 2011년 시리아 난민 위기 이후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결과 영국은 브렉시트를 선택했고, 극우 정당이 유럽 전역에 득세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도 세계화 위기의 연장이다. 세계화의 비용이 기후변화, 환경오염, 경제 불평등에서 시작해 금융위기, 고용불안, 전염병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선진국 지식인들은 세계화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지역 공동체를 강조한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등의 저술로 1990년대 세계화 운동을 주도했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은 세계화 시대를 회고한 ‘늦어서 고마워'에서 미국이 지역 공동체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철학자 마이클 샌델도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지역 공동체가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적절한 수준의 지역주의로 세계화의 충격을 완충해야 한다. 즉, 지역이 세계화에서 낙오된 중산층을 위해 의미 있는 고용과 복지를 제공해야만 개방적인 경제와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있다.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보여주듯이 인류가 직면한 모든 문제에서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대해지고 있다. 한국도 지역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탈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지역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다행히 밀레니얼 중심으로 지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지역 자원을 활용한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역의 상권과 장소를 핫플레이스로 만들어 지역에 새로운 산업과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지역은 지방, 변두리, 시골일지 모르지만, 밀레니얼에게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는 로컬이다.


지역 개혁의 방향은 분권과 도시 재구성이다. 분권을 통해 지역에 방역과 고용을 포함한 지역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할  있는 권한과 자원을 부여해야 한다. 도시 구조를 주민이 지역과 동네 중심으로 일하고   있는 생활권으로 재구성하는 일도 중요하. 특히, 일터와 삶터가 멀리 떨어져 있어 생활권 중심의 삶이 어려운 대도시의 재구성이 시급하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 일자리를 생활권으로 분산시키는 일이 용이해질 것이다.  


생활권 도시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인구 감소를 겪는 산업도시가 흔히 상업과 주거 시설을 도심에 집중시켜 도시 환경과 고령인구 복지를 개선하는 생활권 도시 사업을 추진한다. 글로벌 대도시도 생활권 활성화를 통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 한다. 최근 도시 어느 곳에 살아도 자전거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획을 발표한 파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주의와 국가주의의 과잉이 인류를 위협하는 지금, 생활권 중심의 지역 공동체 복원으로 세계-국가-지역의 균형을 바로잡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출처: 전염병이 무서울 때 우리는 동네로 돌아온다, 모종린의 로컬리즘, 2020년 3월 13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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