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위기의 본질은 양극화다. 소상공인은 지역 상권에서 지역성과 연결된 고유의 콘텐츠로 승승장구하는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와 충분한 준비 없이 생계를 위해 창업한 사업자로 구분된다. 서울 연남동에서 커뮤니티 라운지와 지역 브랜드 편집숍을 운영하는 어반플레이, 강원 양양의 한적한 해변을 연 50만명이 찾는 서핑의 메카로 변신시킨 서피비치, 전통적인 시장 음식인 어묵을 베이커리 경영과 접목한 부산의 삼진어묵, 부산의 명란을 카페와 미식으로 브랜딩한 덕화명란, 미아동의 우체국을 재생해 지역 상권의 앵커 스토어를 창업한 카페 어니언 등이 중견기업 규모로 성장한 로컬 크리에이터다.
로컬 크리에이터 부상의 배경에는 가치와 기술 변화가 중요했다. 로컬 크리에이터를 찾는 소비자는 감성, 경험, 개성, 다양성 등 탈물질적 가치를 중시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중심의 대기업보다는 소비자 각각의 취향을 맞출 수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유리한 소비 행태다. SNS 생활화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위치와 규모에 관계없이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지역 문화를 창조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주요 활동 무대는 서울과 각 지역 원도심의 골목상권이다. 홍대·합정동, 연남동·연희동, 가로수길, 삼청동·안국동 등 과거 조용한 주택지였던 동네가 맛집 중심지로 부상했다.
로컬 크리에이터 효과는 상권에 그치지 않는다. 동네와 지역을 브랜드로, 창조 도시로 만든다. 골목상권이 들어서면 주변 동네가 브랜드가 되고, 동네가 브랜드가 되면 창조 인재가 들어온다. 연남동, 상수동, 합정동, 망원동, 후암동, 해방촌, 성수동, 왕십리, 뚝섬 등이 골목상권을 기반으로 '사람과 돈이 모이는' 브랜드로 성장한 동네다. 이곳에는 음식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곳곳에 코워킹, 코리빙, 건축·디자인 사무소, 복합 문화 공간, 공방, 독립 서점, 예술가 스튜디오 등 크리에이티브 공간이 가득하다. 소비의 공간이었던 골목상권이 스타트업, 소상공인, 예술가가 집적된 한국형 창조 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서울뿐이 아니다. 지방에서도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역 경제를 선도한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활약에 힘입어 광주 동명동·양림동, 수원 행궁동, 강릉 명주동, 전주 풍남동, 대구 삼덕동이 지역을 대표하는 골목상권으로, 제주 화장품, 강릉 커피, 양양 서핑 산업이 지역 특색을 활용한 지역 산업으로 주목받는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출발점은 로컬 크리에이터 산업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로컬 크리에이터를 포함한 혁신적인 소상공인의 잠재력을 인식하지 못한 채 소상공인 전체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접근하면 이들이 제공하는 지역 발전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미래 경제 관점에서도 소상공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 등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직업과 일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도 전통적인 제조 중심의 대기업보다는 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소상공인 영역의 로컬 크리에이터 창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일의 미래로 앞서가는 나라가 미국이다. 최근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의 비중이 이미 35%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새로 창출된 일의 94%도 비정규직이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10년 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프리랜서로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밀레니얼 세대는 또한 전 세대인 베이비부머, X세대와 달리 적극적으로 스몰 비즈니스를 창업한다. 2017년 미국 CGK(Center for Generational Kinetics)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창업을 한 경험이 있는 밀레니얼은 30%로 베이비부머의 19%, X세대의 22%를 크게 앞선다. 44%의 밀레니얼이 사업 계획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고 답변한 반면, 다른 세대는 18%만이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밀레니얼이 선호하는 창업 장소는 도시다. 밀레니얼의 61%가 도시에서, 32%가 교외에서 창업하길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부는 양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시장에서 진행되는 자영업 구조조정을 수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소상공인 인재 육성과 퇴출 사업자의 재훈련을 통해 사업자 전반의 경영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로컬 크리에이터 인재의 체계적 육성이 중요하다. 소상공인 인재 육성 시스템의 부재로 이들이 외국에 가거나 기존 장인 밑에서 비공식적으로 훈련받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공간 기반 창업자를 위한 공간 기획, 커뮤니티 기획, 콘텐츠 개발 교육도 중요하다. 현재 골목상권에서 성공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다수가 건축, 디자인, 콘텐츠 분야의 교육을 받은 사업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감성과 체험을 중시하는 소비자의 니즈에 대응해 감각 있고 차별적인 공간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생존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기존 교육과 지원 기관을 연결해 원천 기술, 창업 교육, 창업 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장인 대학'의 설립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지역과 상생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와 그들이 개척하는 골목상권이 지역 발전과 소상공인 산업의 유일한 희망이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