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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y 25. 2021

실리콘밸리와 교토는 어렵지만 포틀랜드는 가능합니다

지역 서열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폐해는 국민 다수를 방관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미래 성장을 주도한 산업의 개발은 수도권, 더 정확히 말하면 서울의 일이 됐다. 다른 지역은 수도권 중앙 산업을 지원하거나 그곳에서 파생된 공장과 작업장을 유치하는 것에 만족한다. 지역의 자족적인 산업이나 중앙을 대신해 국가경제를 견인할 산업을 개척하는 일은 실질적으로 포기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개인과 기업이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콘텐츠로 경쟁하는 미래 사회는 탈중앙화 사회라는 점이다. 한 지역이 국가 전체의 성장을 이끌 수 없는 경제다. 생활권으로 독립된 모든 지역이 자신만의 콘텐츠로 다른 지역이 복사할 수 없는 산업과 기업을 배출해야 한다. 도시경제학 언어를 빌리면 모든 지역이 자족적인 창조도시, 창조 커뮤니티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창조도시는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까? 하이테크 산업 중심의 실리콘밸리, 문화산업 중심의 교토, 소상공인 산업 중심의 포틀랜드 등 세 가지 모델이 있다. 세 모델의 차이는 중심 산업이다. 모든 창조도시가 일정 수준의 하이테크, 문화, 소상공인 산업을 보유하지만, 창조화를 견인한 중심 산업은 다르다. 하이테크, 문화, 소상공인 산업이 주도한 창조도시 모델이 각각 실리콘밸리, 교토, 포틀랜드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원하는 창조도시 모델은 실리콘밸리다. 대학, 연구기관, 하이테크 산업이 주도하는 혁신창업 생태계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실리콘밸리 모델이 시애틀, 보스턴, 오스틴 등 극소수의 도시에서 성공한 것을 보면 한국에서 테헤란로, 판교, 대덕 등 이미 자리 잡은 혁신 생태계 외의 지역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교토, 베를린, 코펜하겐은 각각 전통문화, 현대미술, 디자인산업 등 압도적인 문화예술 자원을 바탕으로 창조도시가 된 도시다. 한국에서도 통영, 안동, 전주, 경주 등 전통자원이 풍부한 도시는 문화산업 중심의 창조도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혁신 생태계와 문화자원에 의지할 수 없는 대다수의 도시는 어떻게 창조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많은 소도시에 가능한 모델은 스스로를 작고 창의적인 메이커의 도시로 부르는 포틀랜드다. 그리고 소도시에서 포틀랜드형 창조 커뮤니티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생태계는 골목상권 기반 로컬 브랜드 생태계다.


소상공인 중심 창조도시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로컬 브랜드, 스몰 브랜드, 소셜 벤처 등  청년세대가 창업하고 싶어 하는 기업은 기본적으로 소상공인 기업이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그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기 위한 일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로컬에서 하고 싶어 한다. 하이테크, 문화산업 중심의 창조도시가 대안이 될 수 없는 소도시는 창의적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육성해 도시의 창의성을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생활 반경이 좁혀져 동네 중심 생활과 경제가 확대되는 현상도 소상공인 중심 창조 커뮤니티 건설에 고무적인 변화다. 코로나 19 시대의 로컬은 이제 생활권으로 좁혀졌다. 일상의 재구성,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창조 커뮤니티를 구축할 것인가?


먼저 오프라인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쟁이 이루어지면서 비대면과 배달 서비스 중심의 온라인이 부상하고 있다. 중심지 상권에서 지역 상권으로 옮겨가고, 자연과 가까운 공원, 동네의 약진과 다운타운의 부진을 가져오는 등 오프라인 상권 간의 경쟁이 치열해진다. 환경문제와 전국단위 배달 서비스가 해결과제로 떠오르면서 지역단위로 배달 서비스가 주목을 받게 된다. 통계를 보면 집에서 500m 거리 내의 홈 어라운드 소비, 즉 동네 상점 카드결제만 증가했다고 한다. 자전거, 편의점, 동네슈퍼 등 예상 밖의 코로나 19 수혜 업종도 늘어나고 있다. 여행이 해외여행에서 국내여행으로 바뀐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택해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며 쉬어가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제 소도시에 필요한 것은 동네 단위, 마을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인프라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서울 회사원 절반이 2018년에 이미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다. 전원도시, 오프라인 공동체 선호도 늘어난다. 자전거 타기와 근거리 걷기도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삶의 질에 대한 미래 세대의 수요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일과 주거, 놀이까지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직주락 일체 생활권 도시의 구축이 필요하다.


코로나 19 시대 미래산업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확연하게 구분된다. 재택근무와 원격의료, 온라인 교육, 쇼핑 자체가 온라인이라면 귀향 산업과 자생적 지역산업인 자전거와 아웃도어, 자연환기, 환경산업과 대체에너지산업, 로컬푸드 등 자생적 지역산업 중심으로 오프라인이 활성화된다. 지역으로 인재와 산업이 돌아오기 때문에 지역은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윤리를 중시하는 탈물질주의로의 전환에 따른 소비문화의 변화가 지역 경제를 주도할 것이다.


최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감성과 경험 자극이 더욱 요구되는 하이테크와 하이터치 원칙은 우리의 물리적, 정신적 세계 간 균형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하이테크는 온라인 서비스, 가격과 편리성, 대량생산 대량소비 등을 꼽을 수 있으며, 하이터치 부분은 대면 맞춤 서비스와 경험, 공유, 커뮤니티, 지역생산, 지역소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하이테크와 하이터치 산업을 이상적으로 결합한 나라와 도시가 미래 경제를 선도할 것이다.


포스트모던 생활권 도시의 부상도 예측된다. 걷고 싶은 거리, 개성 있는 마을, 저밀도 건물과 다양한 골목길, 소상공인과 크리에이터 중심의 활발하고 오래된 창조도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인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도 제주, 부산, 춘천, 전주, 강릉, 경주, 통영, 순천, 안동 등 자연과 문화자원이 풍부한 삶이 질이 높은 도시다. 울산, 포항, 거제 등 산업도시는 살고 싶은 도시 순위에 들지 못한다. 파리의 경우, 집에서 15분 안에 자신이 필요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15분 도시'를 구축한다. 생활권 도시에도 친환경 기술부터 보행자 기술, 소상공인 기술, 지역혁신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직주락 일체 생활권에 가장 근접한 지역이 골목상권이다. 2000년대 중반 서울 홍대, 가로수길, 이태원, 삼청동, 전주 한옥마을로 시작해서 젊은 2030(여성)이 선호하는 업종 중심으로 주택가나 근린상가에 형성된 상권이 주목을 받았다. 골목길의 성공 조건은 볼거리의 밀도와 우연성에 의한 ‘공간의 속도’, 예술인의 집적과 문화 정체성, 접근성과 임대료 등을 들 수 있다. 주로 1970년대 부촌으로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안동 옥천동과 경주 황리단길이 좋은 예다. 우리 기성세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축과 도시 자원이 골목상권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도시에는 다양한 상권이 존재한다. 도심상권과 부도심 상권, 대형 쇼핑몰과 대형 전통시장이 모여있는 몰링상권, 골목상권이 외부인 중심이라면 동네상권은 주민 중심이다. 새롭게 부상한 골목상권의 가장 큰 특징은 업종이다. 골목상권은 베이커리, 카페, 이태리 식당, 부띠끄 호텔, 일식당, 독립서점 등 청년세대가 선호하는 업종으로 시작한다. 그중 독립서점,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게스트하우스가 필수 업종이다. 골목에 서점이 들어가면 문화공간으로 발전한다. 골목의 지도나 먹거리, 볼거리 정보를 제공하는 독립서점은 또한 동네 여행의 안내소로 기능한다. 골목상권이 한 단계 더 진화하면 복합문화공간, 살롱과 라운지, 로컬편집숍, 커뮤니티호텔, 코워킹스페이스 등 동네에서 생태계를 구축하는 문화창조산업으로 진입한다.


골목상권의 주체는 창의적인 소상공인을 의미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성과 결합된 자신만의 콘텐츠로 가치를 창출하고, 전통 콘텐츠 영역인 예술, 문화, 영화, 영상, 디자인 등과 융합된 콘텐츠 복합적이면서 기획적인 공간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있다. 또한, 메이커스, 독립가게, 수제맥주, 스페셜커피, 도심양조장, 공유자전거, 코워킹스페이스 등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주도한다. 이들 중 상당 수가 이들이 지역화에 동참하면서 로컬 브랜드 편집과 지역의 차별화를 통한 지역과의 상생, 그리고 독립 타운을 추구하는 앵커 스토어로 자리 잡는다. 앵커 스토어 성공의 조건은 혁신성과 지역성, 문화적 매력에 있다.


서울 골목상권 역사를 보면, 한 동네에 골목상권에 한 가게가 들어서면 그 가게를 구심점으로 해서 창업가를 유치하고 확장해가는 '창조 커뮤니티'로 변해간다. 여기서 소상공인 중심 창조도시를 건설하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골목상권이 들어서면 동네가 브랜드화되고, 창조인재와 창조산업이 들어오는 과정, 이것이 한국 지역 도시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창조도시 모델, 포틀랜드의 로컬 크리에이터 패러다임이다.



*2020년 6월 2일 경북도청 화공굿모닝특강 강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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