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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n 06. 2020

로컬 크리에이터가 제시하는 거제의 미래

'골목길 자본론'은 서울 골목상권의 역사를 바탕으로 3단계 지역발전 모델을 제안한다. 골목상권에서 출발한 지역은 3단계를 거쳐 도시산업 생태계로 진화하는데,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골목상권이 들어서면 동네가 브랜드가 되고, 동네가 브랜드 되면 창조인재와 창조산업이 들어온다.


골목상권 모델로 성공한 대표적인 지역이 홍대다. 홍대에 골목상권이 들어선 시점은 2000년대 초반이다. 홍대가 그 후 골목상권을 기반으로 브랜드 동네가 되자, YG, 스타일난다, 애경 등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그곳으로 이전하고 로컬 디자이너들이 젠틀몬스터, 로우로우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디자인 기업을 창업했다. 성수동도 골목상권을 기반으로 소셜벤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골목상권은 서울 원도심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서울의 다른 지역이나 지방 대도시의 원도심에서도 밀레니얼이 여행 가듯 찾는 골목상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제주 탑동 아라리오 프로젝트 등 지방에서도 창조산업을 유치할 수준으로 발전한 골목상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골목상권 모델이 지방 소도시나 도농 지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 상권, 교육, 주거 등 생활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서 골목상권만으로 도시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도시가 골목상권 모델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현재 전국 여러 소도시에서 로컬 크리에이터가 상권 기반으로 창조적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있으며, 이 중 거제 장승포에서 시도하는 지역 라이프스타일을 활용한 커뮤니티 구축이 소도시의 지역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




공유를 위한 창조의 거제 실험


1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거제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 조선산업과 함께 승승장구하던 거제가 소멸을 걱정하는 평범한 지방 도시로 돌아갈 위험에 직면했다. 현실적으로 조선산업이 과거 수준으로 부활하기 어렵기 때문에 거제는 조선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산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거제의 대안으로 부상하는 산업이 아웃도어다. 해변과 산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제에서는 캠핑, 서핑, 낚시 등 모든 유형의 아웃도어 활동을 즐길 수 있다. 거제가 아웃도어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웃도어 마니아를 거제로 유인할 수 있는 인프라다.


호텔, 케이블카, 캠핑장, 해안도로 등 하드웨어 인프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거제로 청년을 유인하고, 이들에게 로컬과 동네 문화를 그들 정서와 감성에 맞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 공간, 커뮤니티, 즉 소프트웨어 인프라가 더 절실하다.


거제 아웃도어 산업의 개척을 위한 새로운 인재와 방식의 유입이 아쉬운 상황에서 부산에서 활동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그룹 ‘공유를 위한 창조’가 2019년 거제 장승포에서 '거제 아웃도어 라이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베이스캠프가 위치한 곳은 장승포의 원도심,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건설한 식민이주어촌 자리인 신부동이다. 신부동 거리의 작은 집을 개조해 아웃도어 라운지 밗을 운영하고, 바로 옆 일본식 주택을 로컬 코워킹 스페이스와 로컬 편집숍을 운영하기 위해 리모델링한다.


거제에서 아웃도어 라이프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이제 밗에서 체크인하고, 흥남해수욕장 서핑 스폿 등 밗이 확보한 사이트에서 거제의 아웃도어를 즐기면 된다. 아웃도어 활동에 참여하는 사이사이에 밗과 편집숍에서 운영자가 편집한 크리에이터 작품과 책을 통해 로컬과 동네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밗 자체도 거제 아웃도어 라이프의 프런트 데스크이자 거제 로컬이 커피를 마시며 편하게 교류할 수 있는 '거실'이다.


‘공유를 위한 창조’는 2단계로 아웃도어 여행자를 위한 마을 스테이를 준비한다. 새로 공간을 매입하는 것보다는 공실이 많은 기존 게스트하우스, 모텔과 협업할 예정이다. 동시에 밗이 위치한 거리에 캠퍼를 위한 음식점, 캠핑 장비를 임대하고 판매하는 상점, 캠핑 장비를 손수 만드는 DIY숍을 유치할 예정이다. 밗에서 시작된 캠핑 문화가 거리와 동네 문화로 진화하는 것이다.  


2단계 사업이 완성되면 장승포에 아웃도어 덕후가 직주락, 즉 일, 주거, 놀이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마이크로 타운'이 들어선다. 2단계 사업은 또한 장승포를 2박 3일이 가능한 여행지를 만들 것이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구축한 인프라 덕분에 거제에서 한 곳에서 머무르면서 로컬 문화를 즐기는 밀레니얼의 동네 여행이 가능해지지는 것이다.


'공유를 위한 창조'가 시작한 지역발전 궤적은 2단계로 끝나지 않는다. 거제에서 캠핑 문화가 확산되면 거제에서 활동하는 캠핑 장비 판매점과 생산자와 협업해 거제에 적합한 새로운 캠핑 장비 라인의 생산을 추진할 계획이다. 라운지 브랜드로 시작한 밗이 본격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로 도약하는 순간이다. 캠핑 문화가 캠핑 산업으로 발전하는 단계에서 새로운 창조인재와 창조기업이 거제로 유입될 것이다. 이때 '공유를 위한 창조'가 운영하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인재와 창업가 유치의 거점이 될 것이다.




로컬 크리에이터 패러다임


부산 영도의 RTBP, 서울 연희동의 어반플레이 등 다른 지역의 크리에이터들도 밀레니얼이 원하는 상업과 주거 시설을 건설하고 그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이크로 타운'을 건설한다. 거제 장승포가 다른 점은 지역이 특화할 하나의 산업, 즉 캠핑 산업에 특화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캠핑은 낚시와 서핑과 더불어 많은 관광객을 거제로 유치하는 관광 자원이다. 많은 조선산업 종사자들이 가족 단위 캠핑을 즐기고 다른 지역과 달리 거제는 노지 캠핑이 가능한 공간이 많은 점에서 캠핑 산업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다.


마이크로 타운 사업은 로컬 크리에이터가 창조적 커뮤니티에 필요한 기본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는 사업이다. 골목상권만 조성하는 것이 아니고, 여행지와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마이크로 타운 모델의 성장 과정은 일반 골목상권과 비슷하다.

1단계 골목상권, 2단계 동네 브랜드, 3단계 산업 생태계의 성장 순서를 따른다.


'공유를 위한 창조'가 다른 지역의 팀과 다른 점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와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융합이다. 다른 지역이 포괄적인 도시문화를 바탕으로 커뮤니티를 구축한다면, 거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창조한다. 특정 라이프스타일의 선정은 도시 인프라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른다.


거제의 마이크로 타운 프로젝트는 이제 막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으로 믿는 이유는 사람이다. 운영자들은 부산 초량동에서 주민과 함께 마을 게스트하우스 이바구캠프를 운영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커뮤니티 디자인의 베테랑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진정으로 캠핑과 아웃도어를 사랑하고 생활에서 실천한다는 사실이다. 캠핑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이 철학을 커뮤니티와 방문자와 공유하려는 열정에서 '공유를 위한 창조'의 진정성과 차별성을 찾을 수 있다.

 

장승포 프로젝트의 비전을 다시 정리해보자. 마이크로타운 디벨로퍼 '공유를 위한 창조'가 아웃도어 라운지 밗을 중심으로 골목상권을 조성하고, 이 골목상권으로 지역을 2박 3일 체류가 가능한 여행지로 만들며, 골목상권과 여행 인프라가 구축한 동네 브랜드를 통해 거제의 캠핑 산업을 개척할 창조인재와 창조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로컬 크리에이터 패러다임(크리에이터 중심의 지역발전)이 로컬 크리에이터 그룹 ‘공유를 위한 창조’가 거제에서 실험하는 모델이자 거제에 제시하는 거제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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