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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09. 2020

로컬푸드 없는 로컬 시대 없습니다

2019년 3월 '로컬전성시대'라는 화두가 등장한다. 도시 콘텐츠 그룹 어반플레이가 2010년대 초 시작된 로컬 창업 사례를 모은 책의 제목이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할 만큼,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로컬과 로컬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로컬은 막 시작하는 단계다.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몇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중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 로컬푸드 시스템이다.


로컬푸드는 로컬 경제의 주축이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로컬 운동은 환경과 로컬푸드 운동의 양축으로 움직인다. 생산자, 소비자, 유통기업, 시민단체, 정부가 로컬푸드 운동에 참여해야, 선진국 수준의 로컬푸드 시장을 구축할 수 있다.


공급 자원은 충분하다. 로컬 브랜드를 타 지역이 복사할 수 없는 콘텐츠를 기반해 창업한 기업으로 정의한다면, 로컬푸드만큼 로컬 브랜드 창업에 적합한 콘텐츠는 찾기 어렵다. 아무리 한국이 작은 나라라고 해도 기후와 지리의 차이로 전국의 모든 지역이 그 지역 고유의 식자재와 식문화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도 늘고 있다. 한국에서도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식탁에 올리기 위해 지역 농산물, 이른바 로컬푸드를 소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많은 식당이 농산물 원산지와 재배자 이름을 표기하고 있으며,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를 대접하는 팜투테이블(Farm to Table) 식당도 인기다.


현재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다. 다양한 방안을 논의할 수 있으나, 이글에서는 로컬푸드의 대중화를 강조한다. 로컬푸드가 보편화되려면 시스템과 제도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대중적인 트렌드가 돼야 한다. 한국 로컬푸드 시장과 정책을 검토하고, 해외 사례를 기반으로 로컬푸드 대중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이글의 목적이다.     

 

정부의 로컬푸드 정책

 

정부는 로컬푸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2015년 '지역농산물 이용 촉진법'을 통과시켰다. 세종시, 완주군 등 도농지역에서는 로컬푸드 산업을 지역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한다.


문재인 정부도 로컬푸드 확산을 100대 국정 과제로 선정,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로컬푸드 확산을 위한 3개년 추진계획, 지역단위 푸드 플랜 수립). 그 덕분인지 2020년 현재 전국 220여 개의 로컬푸드 직매장을 보유한 로컬푸드 산업이 농산물 유통의 8%를 담당한다(2022년 목표는 22%).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2019년 6월


현재 정부 정책은 지역단위 로컬푸드 소비체계의 구축이다. 농가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통합물류센터에서 수거, 학교(공공급식), 직매장, 기공/외식업체에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의 로컬푸드 정책 논의도 정부가 추진하는 시스템과 제도 중심으로 진행된다. 윤병선과 허남혁은 로컬푸드 운동을 "농업과 식품에 관련되는 사람들이 먹거리의 안전과 안심을 위해서 접근하고 얼굴이 보이는 관계와 신뢰관계를 찾아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결집을 가능하게 하는 운동"으로 정의하고, 로컬푸드 유통주체의 건설, 지역 내 네트워크의 강화, 학교 급식에 로컬푸드의 적극적인 활용 등 활성화에 필요한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로컬푸드 대중화 방안


한국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지만, 정부 주도의 유통 시스템으로 충분한지는 더 논의해야 한다. 로컬푸드 운동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면, 민간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1) 로컬푸드 파인 다이닝, 2) 유기농 슈퍼, 그리고 3) 로컬푸드 상권이 로컬푸드 확산을 주도했다.


로컬푸드 파인 다이닝 

미국의 ‘바른 음식 먹기’는 누가 시작한 것일까. 새로운 도시 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는 '뉴요커'나 친환경 소비를 옹호하는 시민단체가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인공은 샌프란시스코 근교 작은 도시 버클리의 자영업자다.
 
1971년, 버클리의 가정주부였던 앨리스 워터스(Alice Waters)가 개업한 프랑스 음식점 셰파니스(Chez Panisse)는 그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워터스가 신선하고 좋은 품질의 식자재를 구매하기 위해 기존 농산물 유통 시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역 농장의 생산자와 직접 거래하며 양질의 유기농산물을 확보했다. 유기농 재료를 고집하는 그녀의 경영 방식은 소비자의 호응을 얻으며 로컬푸드 운동으로 확산됐다.
 
이후 워터스는 '음식은 정치다'라고 주장하며 버클리 지역의 로컬푸드 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그녀는 단순히 식당을 경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1996년 셰파니스 재단을 설립해 학교를 대상으로 건강한 음식문화 교육을 시작했다. 버클리 지역 공립학교는 재단의 지원을 받아 교과 과정의 일부로 음식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교내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를 활용해 요리를 체험한다. 농산물 그림과 자료는 수학, 과학 등 다른 과목의 수업 교재로도 사용된다. 유기농산물로 만든 급식을 제공하는 재단 사업은 청소년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시작한 '렛츠 무브(Let's Move)' 운동의 모델이 됐다.

 

한국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요리 과정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쿡방)이 인기를 끌면서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스타 셰프 등 음식산업 종사자가 음식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양평의 프란로칼, 시흥의 바오스앤밥스, 제주 안덕의 iiin테이블:사계부엌, 옥수동 로컬릿 등 지역의 로컬푸드 운동을 선도하는 팜투테이블 식당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유기농 슈퍼마켓

미국 유통시장에서 로컬푸드를 개척한 사업가는 파머스마켓과 생협(Co-op)다. 파머스마켓은 로컬푸드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생협의 중심 상품은 유기농과 로컬푸드다. 생협 모델을 대기업화한 기업은 1980년 미국 오스틴에서 창업한 유기농 슈퍼마켓 홀푸드마켓이다.


홀푸드마켓의 성공으로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와 같은 전국단위 유기농 슈퍼마켓과 포틀랜드 뉴 시즌즈 마켓(New Season's Market)과 같은 지역단위 유기농 슈퍼마켓이 시장에 진입했고, 월마트, 세이프웨이 등 기존 슈퍼마켓도 유기농과 로컬푸드 판매를 대폭 확대했다. 현재 미국의 로컬푸드 슈퍼마켓 시장은 이렇게 전국단위 유기능 슈퍼마켓, 지역단위 유기농 슈퍼마켓, 일반 슈퍼마켓으로 삼분됐다.


한국에도 한살림, 초록마을, 올가 등 유기농 슈퍼마켓이 영업한다. 미국과 달리 이들은 로컬푸드 시장에 아직 진입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로컬푸드의 대중화는 유기농 슈퍼마켓이 로컬푸드 마켓으로 전환하고, 대형마트가 로컬푸드 판매를 확대해야 가능하다.  

 

로컬푸드 마켓과 상권

현재 한국에서도 정부가 주도하는 로컬푸드 직매장만이 로컬 푸드를 유통하는 것이 아니다. 혜화동 마르쉐, 양평 리버마켓, 양평 두물뭍 농부시장, 연희동 채우장 등 민간 직거래 시장이 로컬푸드 유통의 빈 공간을 메꾸고 있다. 이들이 상설시장이 되면 이들 중심으로 로컬푸드 상권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과연 한국의 어느 도시가 로컬푸드 상권을 조성해 음식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청년 창업가의 새 터전이 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고메 푸드, 그로서런트, 제로 웨이스트 등 스페셜티 품목에 특화된 동네 마켓도 로컬 푸드의 중요한 유통 채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태원 보마켓, 대전 어은동 퍼블릭마켓과 같이 표준화된 일반 식품과 다른 커피, 치즈, 오일, 꿀, 초콜릿, 향료, 소스, 유제품, 소시지, 훈제 육류 등 독특한 맛과 향을 원하는 소비자를  위해 생산되는 스페셜티 식품을 판매하는 마켓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스페셜티 식품점은 판매되는 식자재를 활용해 음식을 파는 그로서란트Grocerant를 운영한다. 성수동 더피커와 연희동 채우장은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는 제로 웨이스트 마켓이다.


소규모 로컬푸드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버클리와 같은 공동 무대일지 모른다. 직매장, 레스토랑 등 단일 매장으로는 로컬푸드를 '붐업'하기 역부족일지 모른다. 유기농 음식점과 마켓이 모여 있는 버클리의 고메 게토와 같은 거리에 로컬푸드 관련 상업시설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대안을 보여주는 사례가 연희동 ‘유어보틀위크’다. 제로 웨이스트 장터 채우장, 카페 보틀라운지, 포인트 적립 앱 제로클럽을 운영하는 보틀팩토리가 2018년 시작한 동네 제로 웨이스트 축제다. 축제 기간 동안 참여 가게에서는 물건을 살 때 일회용품  없이 개인 용기를 사용한다. 2020년에는 연희동 일대 50여 개 가게가 참여했다. 제로 웨이스트 판매로 시작한 친환경 캠페인은 쉽게 유기농 또는 로컬 푸드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딥택트 로컬푸드의 가능성


로컬푸드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을 의미하는 딥택트의 역할에도 주목해야 한다. 전국 기업이 로컬푸드 유통을 독점할 것으로 가정할 필요는 없다. 딥택트 기술을 구비한 로컬 기업도 옴니채널을 활용해 지역 내 로컬푸드 유통의 앵커기업이 될 수 있다. 성공의 관건은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플랫폼의 구축이다.


이미 시흥에서는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 빌드가 온라인 기반으로 로컬 농산물과 지역 소비자를 연결하는 팜닷을 운영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네 슈퍼도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도 동네슈퍼와 로컬 플랫폼을 활용해 로컬푸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계하는 동네 단위 옴니채널 유통시스템을 활성화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온라인 식품 유통은 기본적으로 배달 서비스 기반이다. 로컬푸드 기업이 온라인 유통을 시작한다면 어떤 배달 서비스를 채택할 것인가? 로컬푸드 기업은 현재 진행되는 전국단위 배달 서비스 시장의 혁신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전국단위 배달 서비스는 환경과 공동체의 숙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포장 쓰레기와 탄소 배출 때문에 환경 문제를, 동네 상권과 상생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동체 문제도 극복하지 못한다. 현재 배달 서비스 중에 이 두 문제를 해결할 유리한 위치에 있는 기업은 GS다. GS는 투 트랙으로 가고 있다. GS프레쉬를 통해 새벽 배송을, GS25 매장을 통해 도보 배달 기반 우리동네딜리버리(우딜)을 운영한다.


GS가 이 두 서비스를 통합하면 환경과 공동체 기준을 상당 수준 만족하는 동네 배달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 즉, GS프레쉬에서 주문한 상품이 동네 GS25 매장으로 배달되면, 소비자가 걸어 나가서 아니면 '우딜'을 통해 픽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동네 배달 서비스 하에서는 GS25 매장이 GS프레쉬의 픽업 스테이션 기능을 한다. 동네 배달 서비스가 환경과 공동체 기준을 완벽하게 만족하지는 않지만 전국 단위 배달 서비스보다 환경과 공동체에 대한 피해가 적다. 앞으로 더 혁신적인 로컬 기술이 나오면 GS 동네 배달보다 환경과 공동체 기준을 더 높은 수준에서 만족하는 서비스도 가능할 것이다.


편의점이 로컬푸드 분야의 옴니채널 앵커 기업이 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편의점의 미래'로 불리는 미국의 폭스트롯(Foxtrot)의 행보가 흥미롭다. 동네 시장을 겨냥한 오프라인 매장 기반의 편의점이지만, 로컬 브랜드를 편집해 제공하고 카페를 통해 동네 사랑방 모델을 추구한다. 매장에 진열된 모든 상품을 배달하는 옴니채널 유통 기업이기도 하다. 현재 폭스트롯 제품의 10-15% 정도가 로컬 브랜드라고 하는데 이중 로컬푸드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해야 하지만, 대기업 편의점이 로컬 브랜드 유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로컬푸드의 미래에 긍정적인 사인이다.


......


로컬푸드의 생활화와 산업화 문제는 거대한 주제다. 농산물 유통의 구조와 현황, 로컬푸드에 대한 시민의 의식, 로컬푸드와 유기농과 건강식품의 관계 등 로컬푸드 운동의 특징, 로컬푸드 시장의 현황, 로컬푸드 직매장, 학교 급식 등 정부 주도 프로그램의 가능성과 한계, 한살림 등 민간 사업자의 사업모델과 경쟁력, 팜투테이블 레스토랑의 운영과 애로사항 등 많은 주제가 논의돼야 한다.


특히, 정부의 로컬푸드와 농산물 유통 정책을 설명할 수 있는 농업 전문가, 세종시, 완주 등 로컬푸드 직매장을 운영하는 지자체의 실무 담당자, 유기농, 로컬푸드 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 대표, 한살림 등 로컬푸드를 산업화하는 기업의 대표, 팜투테이블 레스토랑 운영자 등 현장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정책 논의의 핵심은 방향성이다. 로컬푸드의 대중화가 중요하다면, 먼저 대중 트렌드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환경 트렌드가 어렵기 때문에 프리미엄과 저가 트렌드를 자극해야 한다. 로컬푸드를 프리미엄 푸드나 저가 푸드로 산업화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전략은 프리미엄 푸드화이며, 이를 주도할 수 있는 주체는 기업이다. 로컬푸드 파인 다이닝, 유기농 슈퍼마켓, 로컬푸드 마켓과 상권을 통해 로컬푸드의 대중화를 이끌 로컬 크리에이터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2020 제주 지역혁신 싱크탱크 협의제 발제자료

**윤병선, 허남혁, "지역순환 농식품체계와 로컬푸드운동," 열린충남, 2011.


2021.4.19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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