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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25. 2020

로컬로 향하는 오프라인의 미래

안녕하세요, 모종린입니다. 스타벅스, 애플, 무지 등 세계적인 브랜드가 새로운 상권에 진출할 때 그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로컬화’ 전략을 추진한다는 사실, 잘 알고 계시죠? 그런데 이들의 로컬화 전략은 판매하는 제품, 서비스의 로컬화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공간도 로컬화를 추진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로컬화를 추진하는데 최근 트렌드는 동네 사랑방입니다. 동네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소통하는 사랑방, 즉 지역 상권의 앵커스토어가 되고자 하는 것이죠. 애플스토어를 도시 광장(Town Square)이라고 부르는 애플의 사고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오늘은 <골목에서 미래를 읽다> 마지막 시간으로 해외 기업 사례를 통해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앵커스토어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동네 사랑방이 된 스타벅스   

스타벅스가 1999년에 서울에 들어와 인사동에 간판을 한글로 써서 뉴스가 되었습니다. 스타벅스는 어딜 가나 똑같은 매장 디자인과 상품을 팔지만, 최근에 들어와서 동네마다 특색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로컬 브랜딩은 한국에서 더딘 편이지만 일본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본 전역에 15개 매장이 있는 스타벅스 콘셉트 스토어가 대표적입니다. 스타벅스 콘셉트 스토어를 찾아다니는 여행자가 생길 정도로 관광지로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역 중심지가 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 그 지역 문화재 건물을 매입하거나 그 안으로 입점하는 것입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물에 입점하는 매장이 콘셉트 스토어입니다. 


글로벌 표준화를 추구하던 스타벅스가 이제  지역에서 건축적으로 중요한 건물에 들어가고, 지역 문화 테마로 인테리어를 장식하며, 로컬 재료로 만든 상품을 개발합니다. 스타벅스가 한국에 처음 들어오던 20년 전, 아니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대기업도 동네 가게가 되려고 노력하는 거죠.     


스타벅스 로컬화의 현장은 교토입니다. 산조 오하시점, 카라스마 롯카쿠점, 니넨자카점 등 이곳 스타벅스는 교토 문화를 흡수한 콘셉트 스토어 전략을 추구합니다. 통유리로 매장을 디자인해 교토의 유명 사찰인 ‘롯카쿠지’를 전면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한다거나 전통가옥을 복원해 다다미 양식의 테이블과 일본식 정원을 갖춘 매장으로 꾸미는 등 로컬화를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교토 스타벅스는 관광객은 물론 지역 주민들이 애정하는 사랑방이 되었죠.


최근에는 도쿄 긴자에서 서클스(Circles) 매장을 열었습니다. 이 매장의 입구에는 창작 연구소(Think Lab)라는 사인이 있습니다. 언뜻 카페 매장과 어울리지 않은 공간 브랜딩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매장에 들어간 코워킹 스페이스를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동네 상권의 플랫폼이 되기 위해 스타벅스가 1인실 중심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매장 안에 조성했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도 로컬화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최근 지역 특색을 담은 ‘지역 메뉴’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가 대표적인데요, 당근 현무암 케이크, 거문오름 크루아상 등 제주의 지역명칭을 활용한 메뉴와 제주산 콩, 유채꿀, 녹차 등을 사용해 개발한 메뉴들은 모두 제주 스타벅스에서만 맛볼 수 있습니다. 제주의 청정자연 이미지를 담은 디저트와 음료로 제주 정체성과 결합함으로써 스타벅스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죠.      



커뮤니티 호텔로 브랜딩하는 에이스호텔

스타벅스와 함께 앵커스토어 전략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기업이 또 있습니다. 바로 ‘에이스호텔’입니다.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출발한 에이스 호텔 창업자 알렉스 콜더우드는 호텔이 로컬 커뮤니티 공간이 되길 바라는데요, 널찍한 로비에 커다란 테이블과 편안한 소파를 배치해 거리의 사람들이 호텔에 들어와 편하게 쉬고 작업하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호텔 로비가 ‘지역 주민들의 공동작업장’이 된 것이죠. 개방적인 로비 공간에서 작가, 음악가, 기업가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교류하며 호텔 정체성에 맞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호텔의 역할이 이렇다 보니 입지선정부터 남다릅니다. 목이 좋거나 접근성이 뛰어난 곳에 우선순위를 두는 대신 도심 재생을 지원할 수 있는 낙후된 지역을 찾습니다. 그리고 지역 자재를 사용해 도시의 유서 깊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활용하죠. 포틀랜드 에이스호텔의 경우 1912년 지어진 건물의 구조를 살린 채 복원함으로써 20세기 감성을 재현했습니다. 피츠버그 에이스호텔은 낙후된 지역의 오래된 YMCA 건물을 선택했습니다. 빈티지하고 캐주얼하면서도 현대적인 도시 특색이 드러나는 디자인으로 주변에 비슷한 감성을 가진 독립 가게의 입점을 촉진해 거리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죠.


호텔 시설도 로컬을 지향합니다. 객실의 경우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해 개성 있는 공간을 연출하고, 로컬 브랜드로 편의용품(어메니티)을 공급해 지역문화와 어우러진 호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호텔 1층 커피숍은 포틀랜드의 대표적인 독립 커피 ‘스텀프타운 커피 로스터스’가 입점해 있죠. 이처럼 지역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 에이스 호텔의 앵커스토어 전략입니다.   


에이스호텔의 로컬 전략은 단기간에 실현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닙니다. 호텔 설립할 계획을 세운 시점부터 오픈할 때까지 5년 정도 시간을 투자해 처음부터 그 동네의 사랑방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매장 확장을 빨리 할 수가 없습니다. 전 세계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현재 10개 매장만 운영하는 이유입니다.  


이 모델이 지금 한국에도 들어왔습니다. 각 지역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커뮤니티 호텔을 창업합니다. 손님이 왔을 때 그 지역의 빈방을 주선하고, 음식은 지역 특산물로 준비하며, 자전거가 필요하다 하면 동네 자전거 가게를 소개해 주는 마을 호텔 모델도 늘어납니다. 커뮤니티 호텔, 마을 호텔은 둘 다 동네와 동네 문화로 공간을 브랜당하는 전형적인 로컬 기업입니다.      



로컬 브랜드의 플랫폼, 디앤디파트먼트

그런가 하면, 지역의 로컬 브랜드를 직접 발굴해서 판매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2000년 창업한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인데요, 각 지역에서 오래도록 사랑받은 물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을 ‘롱 라이프 디자인’으로 정의하고 그런 제품만 모아 파는 편집매장입니다. 창업자 나가오카 겐메이는 도쿄에 첫 매장을 낸 후 일본 곳곳에 여러 개 지점을 냈고, 한국의 이태원에서 첫 해외 지점을 냈습니다.


디앤디파트먼트는 지점마다 각 지역에 근간을 두고 뿌리내린 제품, 지역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구현하는 우수한 품질의 물건을 찾아 공급하는데요, 매장은 롱 라이프 디자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고 즐기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실제로, 각 지점은 ‘d 공부회’를 열어 공통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거나, 지역에서 새롭게 발굴된 물건을 소개하는 세미나를 열기도 합니다.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도 한국 고유의 철기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대장장이 이야기, 한국 전통술 복순도가의 손막걸리 이야기를 소개하는 세미나를 여는 등 롱 라이프 디자인을 즐기는 이들의 교류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 매장에서 발견한 물건 중 하나가 국산 만년필입니다. 제가 연세대에서 일하면서 외부 손님이 오면 독일 라미 펜에 연세 마크를 찍어 선물했습니다. 국산 만년필은 없는 줄 알고요.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70년대 대기업으로 만년필을 300만 개 팔았고 광고 모델이 정윤희였던 부산 기업 아피스 만년필입니다. 


최근 디앤디파트먼트가 제주 매장을 열었습니다. 제주 로컬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기 때문에 머지않은 장래에 제주 로컬 브랜드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디앤디파트먼트 모델은 로컬 창업에 영향을 미칩니다. 디앤디파트먼트에서 영감을 얻은 로컬 크리에이터가 전국 각지에서 로컬 편집숍을 창업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전국의 참기름을 수집, 편집해 판매하는 연남방앗간입니다. 운영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 매장에 놓고 파는 것을 편집한다고 합니다. 명란젓 편집샵, 참기름 편집샵, 이런 식으로 로컬 상품을 모아 놓습니다.


로컬 콘텐츠로 공간을 브랜딩하다    

한국에서도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한 앵커스토어 전략을 추구하는 대기업들이 있습니다. 지역 농부의 식재료를 공급받아 판매하는 이마트, 지역 소상공인의 온라인 입점을 지원해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네이버 등이 그런데요,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브랜딩은 기업의 지역 기반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전략입니다. 제주 탑동 매장의 올리브영은 제주의 로컬 매거진 ‘제주인’과 함께 로컬 테마의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합니다. CJ와 지역 기업이 협업해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문화 콘텐츠 체험공간을 열고, 지역 특화 기념품을 판매하는 것이죠. 


이처럼 지역 문화를 기업 경쟁력으로 활용하고 브랜딩하는 기업들의 전략은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탈물질 시대의 중요한 트렌드입니다. 특히 다양한 지역에 잠재된 매력적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은 앵커스토어 전략으로 활용되어 지역과 기업의 상생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산업자원이기도 하죠. 로컬 콘텐츠로 공간을 브랜딩하는 대기업과 독립기업, 오프라인의 미래라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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