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협력 도시재생의 전형
2020년 하반기 시작된 부동산 폭등으로 서울시가 2013년부터 추진한 도시재생사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야당 후보들은 예외 없이 주민이 원하지 않는 도시재생이 주택 공급을 억제한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2000년대 이명박, 오세훈 시장이 추진한 뉴타운 모델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도시재생은 폐기돼야 하는 정책일까? 향후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공정한 평가다. 도시재생 커뮤니티가 그동안 사업 추진으로 바빴다면, 앞으로는 도시재생 성과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홍보해야 한다.
도시재생에 필요한 것은 동네 단위 롤모델이다. 초기 서울시가 홍보한 은평구 산새마을, 노원구 장수마을은 대중에게 어필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는 공공주도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연남동 사례 중심으로 도시재생의 가능성과 보완 방안을 논의한다.
도시정책의 이념화는 2000년대 뉴타운 사업으로 시작된다. 그전에는 정당 간 차이가 관심을 끌만큼 뚜렷했는지 기억되지 않는다. 뉴타운 모델은 민간주도 재개발이다. 2011년 서울 시장 선거 이후 서울시는 뉴타운 모델의 대안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한다. 도시재생의 기본 철학은 마을 공동체다. 마을 공동체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도시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뉴타운 모델 거부 명분은 공동체 파괴, 구체적으로 원주민 퇴출입니다. 뉴타운의 원주민 입주 비율이 20% 수준이었다.
논리적으로 보면 재개발과 재생은 한 지역에서도 공존할 수 있어 서로 반대되는 모델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국 정치 지형상 뉴타운 모델은 우파 정책, 도시재생 모델은 좌파 정책으로 고착된다. 한동안 잡음 없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이던 도시재생 사업이 2020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도시재생 모델이 주택 공급을 관리하는 사업이 아니었지만, 일부 지역에서 도시 공급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공급 문제가 현안이 되자 정부 여당도 공급 확대 정책으로 선회한다. 2021년 4월 서울 시장 선거에 출마한 여당 박영선 후보는 뉴타운 모델을 일부 수용하는 공약을 발표한다. 강남 재건축에 대한 규제도 완화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재개발도 추진하자는 정부보다는 유연한 정책을 제안했다. 선거를 앞두고 중도로 이동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야당 후보들은 2021년 이전 구도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고 도시재생 모델을 반대하는, 그러면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뉴타운 모델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한다.
도시재생의 미래를 논의하는 중에 정부의 2.4 부동산 정책이란 게임 체인저가 등장한다. 정부가 교외 지역에서 사용했던 공공주도 재개발, 정부가 토지를 수용해서 재개발을 주도하는 모델을 제안한다. 정부가 도시재생을 포기하지 않고 공공주도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대도시 도시 재생 지역의 대다수가 재개발 대상 역세권으로 편입된다. 이념적으로 보면 공공주도 재개발은 도시재생보다 더 집단주의적 발상이다. 도시계획의 헌법이나 다름없는 용적률을 '편의에 따라' 확대하고, 토지 수용 동의 비율을 3/4에서 2/3으로 완화했다.
도시정책에서 여야 사이의 타협점, 즉 중도는 없을까? 흥미로운 것은 여야가 같이 신도시 제시하면서 서로 사회주의 유토피아니(우가 좌에게), 원주민 몰아내는 게이티드 커뮤니티니(좌가 우에게) 비난한다는 점이다. 좌우 모두 획일적인 재개발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다양성을 담보하는 복합용도지구가 대안일지도 모른다.
박영선 후보가 제안한 '21분 도시'는 중도적 대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집에서 15분 이동하면 일상에 필요한 모든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파리의 '15분 도시'를 재현하는 도시다. 한국적 맥락에서 도시재생과 재개발을 혼합해야 하는 중도적 성격의 대안이다. 대규모 단지보다는 소규모 주택사업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뉴타운보다 중도이고, 생활환경 개선보다는 골목상권 개발을 포함한 소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도시재생보다 중도다.
과연 서울에 재개발과 재생의 융합으로 성공한 '15분 도시'가 있을까?
연남동은 경의선숲길을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나뉜다. 단독주택 중심의 서쪽, 서교동에 근접한 지역은 이미 2000년대 홍대 상권에 편입된다. 2010년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연남동은 연립주택이 밀집한 동쪽이다. 2012년 동진시장에서 태동한 연남동 열풍,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연남동 현상은 골목상권 현상이다. 골목길 문화가 도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 지금껏 학군이 좋거나 부동산 투자 수익이 높은 곳이 좋은 지역이었다면, 이제는 물질적 풍요를 넘어 문화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동네가 사랑받고 있다. 2000년대 중반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성수동, 이태원을 필두로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해 공유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골목길 문화 덕분에 동네에서 도시가 재생되고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진화한다.
그러나 골목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조차 그 문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공간 디자인, 접근성, 임대료 등의 입지 조건을 골목길의 성공 요건으로 제시하지만, 그것을 다 갖추었다고 해서 모두 문화 거리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골목길 문화가 특정한 물리적 조건의 충족만으로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일구어낸 누군가의 노력에 주목해야 한다.
골목길의 역사는 보통 그곳에서 처음으로 창업한 '첫 가게'로 시작된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을 가진 첫 가게를 찾는 사람들로 인해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다양한 가게가 줄지어 들어서면서, 골목길은 활기찬 상권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골목길이 뜨면 자연히 임대료도 껑충 뛴다. 그리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기존 임차인이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떠나는 현상 즉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면서 골목길은 성숙기에 접어든다.
연남동의 첫 가게는 2012년 성미산로 입구 동진시장에 문을 연 태국 음식점 ‘툭툭누들타이’다. 이 가게를 시작으로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개성 있는 식당이 연이어 창업하면서 연남동이 새로운 골목길 상권으로 부상했다. 그 후 연남동은 계속 확장한다. 아래 지도에서 보여주듯이 연남동 전체로는 12개, 동쪽에도 7개의 상권이 들어섰다.
연남동의 부상에는 홍대에서 넘어온 기업과 예술가의 공이 컸다. 그렇다고 민간이 모든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연남동은 2013년 휴먼타운으로 불리는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시작한 도시재생 1세대 동네다. 휴먼타운 사업지는 연남동 239-1번지 일대다. 재건축 사업성이 높지 않은 이 지역에 서울시가 전선 지중화, 마을 커뮤니티센터, CCTV, 도로 개선 등 기반 시설 정비를 제안했다. 휴먼타운의 결과물이 서울에서 보기 힘든 도로 중앙에 벚꽃나무가 심어진 연남동 벚꽃길이다.
연남동이 골목상권 중심지로 도약한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경의선숲길 연남동 구간의 개방이다. 경의선 숲길의 개통으로 연남동은 공항철도 3번 출구에서 공원을 따라 접근할 수 있는 매력적인 상권과 주거지로 부상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서울을 진입하는 관문으로 기능하는 연남동 일대에 서울에서 가장 큰 게스트하우스 집적지가 형성됐다. 경의선숲길 덕분에 동진시장과 미로길에 한정됐던 연남동 상권이 연남동 동쪽 전체로 확장했다.
경의선숲길은 현재 홍대 지역에서 마포지역으로 확장한다. 홍대 상권의 확장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지역이 서강대 부근 대흥역이다. 도시문화의 불모지였던 서강대와 대흥동이 드디어 '뜬 것이다'. 마포지역은 이렇게 골목상권의 힘으로 직주락이 가능한 15분 도시가 됐다. 정부가 길을 터주면 골목상권 들어서고, 골목상권 들어오면 동네가 브랜드가 된다. 동네가 브랜드가 되면 기업, 아파트, 학원이 따라온다.
연남동의 세 번째 도시재생 지역이 연남동 동교로51길 일대 세모길이다. 용산선, 경의선, 연남아파트가 만들어낸 경의선숲길의 끝자락에 위치한 삼각형의 작은 마을이다. 서울시는 2018년 세모길을 '골목길 재생 지역'으로 지정해 주민 중심으로 도시가스 공급, 하수관 정비, 도로 정비 등 생활 인프라 개선 사업을 추진했다.
'골목길 재생사업'은 '면' 단위로 추진하는 기존 도시재생 사업과 달리, 골목길을 따라 ‘선’ 단위로 추진하는 소규모 재생 사업이다. 재생 사업을 마친 세모길은 경의선숲길의 나무, 골목길, 예술가 공간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작은 유럽풍의 마을이 됐다.
연남동 도시재생의 역사를 복기해 보자. 시작은 홍대 상권의 유입이다. 연남동에서 민간이 주도한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부는 상권이 이미 활성화된 상태에서 진입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다. 2013년 휴먼타운, 2015년 경의선숲길, 2018년 골목길 재생 사업 등 걷고 싶은 길과 생활 시설 중심으로 추진한 공공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연남동은 서울을 대표하는 골목상권으로 확장한다. 연남동에 비밀이 있다면 홍대 문화에 기반한 창의적인 소상공인과 예술가, 그리고 거리 사업 중심의 소규모 도시재생 사업이다. 연남동에서 삼각지에 이르는 경의선숲길 전체 구간의 비용은 500억 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한국 도시재생 역사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사업이 아닐까?
연남동의 미래는 결국 일, 주거, 놀이가 가능한 직주락 도시, 15분 도시의 건설에 달렸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이 주택 공급과 일자리 창출이다.
연남동에 형성된 1인 가구 지구는 이미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주거지다. 기성세대도 사천교 건너편의 가재울 뉴타운, 곧 재개발되는 연희 제1지구에 거주하면 연남동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연남동 내부에서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숙제는 남아 있다. 경의선숲길 주변에 소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지만, 연남동 특성상 고층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재개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안은 저층 주택 리모델링이다. 구산동도서관마을, 홍은동 써드플레이스 프로젝트, 면목동 공동체주택마을 사례가 보여주듯이 저층 연립주택과 다가구주택도 매력적인 주택으로 변신할 수 있다. 앞으로 필요한 사업은 지역단위 리모델링 사업이다. 서울시도 재개발 지역뿐 아니라 재건축 지역에서도 소규모 리모델을 권장하고 있다.
두 번째 과제가 일자리 창출이다. 연남동이 이미 홍대와 상암동 경제에 포함됐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연남동 상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현재 연남동은 외지인 중심의 상권이다. 주민 비중이 70%에 달하는 연희동 상권에 비해 연남동 상권의 주민 비중은 30% 수준이라고 한다.
주거지역으로 로컬의 실리콘밸리로 불릴 만큼 탄탄한 로컬 경제를 구축한 연희동이 모델이 될 수 있다. 다른 동네에서 볼 수 없는 중견 기업 수준의 동네 마켓, 동네 디벨로퍼, 동네 콘텐츠 개발 기업이 연희동 로컬 생태계를 주도한다. 사러가쇼핑센터, 쿠움파트너스, 어반플레이, 보틀팩토리 등 동네 전체에 공공재를 제공하는 시장 기반 커뮤니티 비즈니스다. 이들 앵커 기업이 연희동 모델을 벤치 마크하는 다른 지역이 반드시 수입해야 하는 '진짜' 연희동 모델이다. 연희동 생태계가 로컬 브랜드 규모, 주민-외부인 고객 비중 등 다른 분야에서도 우수하지만, 한 동네에 집중하는 앵커스토어가 많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연남동이 도시재생의 미래에 던지는 메시지는 상권과 생활권의 중요성이다. 상권이 도시재생에 중요한 이유는 자명하다.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도 최소한의 상업 시설이 있어야 생활권으로 기능할 수 있다. 생활권 조성은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거점인 상업시설의 활력을 회복해야 달성할 수 있다. 상권 활성화의 파급효과도 중요하다. 도시재생에 대한 많은 연구가 상권 활성화가 주거 활성화를 촉진하지만 그 반대 효과는 크지 않음을 강조한다. 상권과 주거 지역 활성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전자를 선택해야 함을 시사한다. 젊은 층이 스타벅스 매장이 있는 지역을 의미하는 '스세권'을 주거지로 선호한다는 사실이 상업시설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생활권 도시의 부상이다. 코로나 사태로 생활 반경이 좁혀지면서 지주락 근접을 의미하는 생활권 도시의 구축이 시급해졌다. 생활권의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거, 교육, 상업 시설과 더불어 산업 기반의 구축을 요구한다. 다행히 재택근무, 원격의료, 온라인 교육과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대도시나 대도시 중심부에 살아야 할 필요성이 약해지고 있다. 국내여행, 로컬푸드, 집 가꾸기, 자전거, 아웃도어, 골목 산업 등이 생활권 도시가 활용할 수 있는 지역산업으로 부상했다. 생활권 도시의 건축환경을 거리문화 중심으로 디자인하면 생활권 도시는 소상공인 산업 활성화에 필요한 대규모 유동인구를 창출하는 소상공인 도시로 자리 잡을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일자리와 상업 시설이 생활권으로 분산되면 생활권 내의 주택 공급이 중요해진다. 생활권 내에 대규모 부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리모델링, 유휴 공간 활용 등 소규모 개발 사업을 통해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기존 주택의 리모델링뿐만 아니라 서울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도시형 상가주택(황두진 건축사무소의 무지개떡 건축), 공동체 주택(에이라운드 건축의 써드플레이스 홍은), 면목동 마을형 공동주택 등이 새로운 공급 모델이 될 수 있다. 생활권을 행정동으로 정의하고 각 생활권 당 100개 가구만 공급해도, 서울시 전체로는 42,500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425 행정동 x 100 가구). 서울시가 주민의 삶의 질을 중시한다면, 생활권과 연결된 '양질'의 주택을 생활권 단위로 공급하는 것이 순리다.
#머물고싶은동네가뜬다 #온라인이대체할수없는로컬콘텐츠의힘
참고문헌
어반플레이, 아는 동네, 아는 연남, 2017
어반플레이, 연희, 연남으로 출근한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