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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Oct 12. 2017

홍대 맛집의 젠트리피케이션 생존법

우리 사회는 골목 자영업자를 약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진상' 고객과 건물주에 맥없이 휘둘리는 약자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홍대 상권에서는 자영업자가 약자라는 주장에 섣불리 동의하기 어렵다. 의구심이 든다면 홍대 맛집을 한번 방문할 것을 권고하고 싶다.



불편을 파는 홍대 맛집


홍대 맛집은 일단 위치가 불편하다.


흔히 말하는 ‘홍대 앞’뿐만 아니라 상수동, 합정동, 연남동, 연희동 등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있어 초행자라면 보통 인내심으로는 찾아가기 힘들다. 음식점은 위치가 좋아야 한다는 통념은 홍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고객을 더욱 곤란하게 하는 것은 식당의 까다로운 서비스 방식이다.


주차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보통이고 예약 절차도 복잡하다.


많은 예약제 식당은 특정 시간대에만 식사가 가능한 ‘2부제’ 또는 식당의 한 테이블만 예약석으로 지정하는 ‘예약석제’를 운영한다. 예약을 받지 않는 맛집은 더 불편하다. 그런 식당은 항상 만원이기 때문에 빈 테이블이 날 때까지 밖에서 1~2시간 기다리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어렵게 자리에 앉아도 예상외의 서비스에 당황하게 된다.


일명 ‘한정 판매제’를 도입, 음식재료가 떨어지면 아예 가게 문을 닫거나 그 재료가 들어가는 요리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메뉴도 간소해서 한두 개 요리만 먹으면 나가란 말을 하지 않아도 손님 스스로 눈치껏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게 된다. 오너 셰프 한 사람이 보조원 없이 혼자 운영하는 ‘원 테이블’ 식당은 셰프가 요리하는 중에는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홍대 상인이 이런 ‘불편’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우리는 다양한 서비스 대신 단 한 가지, 싸고 질 좋은 음식으로 승부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당이 늘어나는 건 고품질 음식을 싸게 파는 공급자와 이를 신뢰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불편 서비스의 경영학


서비스 간소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일반적인 기업 전략이다. 항공과 유통 시장에서는 이를 ‘노 프릴(No Frills) 서비스’ 전략이라고 한다.


일등석, 지정석, 기내식 등 모든 부차적인 서비스를 제거하고 운송에 꼭 필요한 서비스만 제공하는 저가 항공사가 대표적인 예다. 대량으로 소비하는 생활용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대형마트도 다른 서비스 말고 가격이라는 단 하나의 경쟁력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노 프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노 프릴 식당이 늘어나는 걸까? 자영업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현상일까?


노 프릴 식당 운영자들은 실은 생존전략이라고 말한다.


점점 상승하는 임대료와 들쑥날쑥한 고객 수준 때문에 노 프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대료는 모든 자영업자의 애로사항이다. 홍대도 예외는 아니다. 상권이 커지면서 임대료가 상승해 기존 세입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계속되고 있다.


또 많은 자영업자는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고급 서비스만을 요구하는 고객 때문에 장사하기가 어렵다고도 호소한다.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는 고객 대부분이 장년층이어서, 일부 식당들은 아예 젊은 고객만을 상대하기 위해 업종을 카페로 바꾸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홍대 자영업자는 인근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노 프릴 서비스를 도입함으로써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또 이렇게 하면 ‘수준 낮은’ 고객을 회피할 수도 있다. 좋은 음식에 만족하는 고객만이 불편한 장소와 노 프릴 서비스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진 곳에 위치한 노 프릴 맛집은 상인이 시장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전략적 결과다.



고숙련 자영업자 육성이 관건이다


따라서 소비자 문화, 임대료 변화 등 자영업 시장의 변화에 정부가 성급하게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영업을 도와야 한다면 규제와 보호보다는 더 많은 고숙련 자영업자를 육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불편을 감수하고 노 프릴 맛집을 찾는 고객이 많다는 것은 고숙련 자영업 서비스 공급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노력과 더불어 필요한 것은 소비자의 서비스 의식 개선이다. 자영업자들의 호소처럼 서비스에 대해 불합리한 인식을 가진 소비자는 서비스업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운 고급 음식점과 손님에게 과도한 불편을 주는 노 프릴 식당으로 양분된 맛집 시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매우 비정상적이다. 훌륭한 음식과 서비스에 대해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소비자가 늘어나야 다양한 수준의 맛집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노 프릴 맛집의 가장 큰 교훈은 자영업자가 항상 약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력 있는 자영업자라면 정부의 보호와 지원 없이도 시장 변화에 대응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할 수 있다.

노 프릴 서비스로 불합리한 소비자와 임대 문화에 반격한 홍대 상인들처럼.





출처: 라이프스타일 도시, 위클리비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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