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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r 09. 2017

나는 홍대에서 산업을 만난다

홍대는 무엇일까? 카페거리, 유흥가, 문화예술지구? 나에게는 '산업단지'다.  


홍대를 유흥가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의 인식에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홍대는 저렴한 클럽, 술집, 식당, 옷가게가 많아 젊은이들이 하루 즐길 수 있는 소비공간일 뿐이다.


홍대 문화의 독립성과 자유, 그리고 다양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크게 다를까? 그들에게도 홍대는 치유와 사유의 장소이지 생산과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현장은 아니다. 작가 양소영의 말대로 홍대는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곳,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것에 익숙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대표적인 홍대산업의하나인 출판산업


하지만 홍대에는 분명 중심 산업이 존재한다. 상업지역으로 머물러있는 서울의 다른 골목상권과 달리 이 곳은 하나의 산업단지를 형성한다. 관광, 음악·연예, 문화예술, 디자인, 출판·영상, IT 등 다수의 산업이 상생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생산, 주거, 오락 활동이 한 곳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산업단지다.




홍대가 산업단지임을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산업이 관광산업이다. 홍대는 국내외 젊은 여행자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다. 2016년 서울에서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은 핫플레이스도 홍대다. 홍대는 여행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외국인이 선호하는 청년문화, 공항철도 한 번으로 인천공항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올 수 있는 접근성, 외국음식점, 게스트하우스 등 외국여행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홍대의 강점이다.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본사


인디뮤직을 바탕으로 성장한 음악·연예산업도 홍대 산업이다. 문화정치학자 이무용은 홍대 정체성을 인디뮤직에서 찾으며, 지역 정체성의 변화가 음악과 청각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언급한다. 산업 분포를 분석하면 홍대 지역은 강남 일대와 함께 오디오물 출판과 원판 녹음업의 중심지로 두각을 나타낸다. 현재 YG엔터테인먼트를 필두로 10개 이상의 연예기획사가 홍대에 둥지를 트고 있다.


1996년부터 합정동에 자리 잡은 YG는 새로운 인디밴드와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삼거리포차, 삼거리푸줏간 등 상업시설과 부동산에 투자함으로써 자신의 홍대 정체성을 적극 홍보한다. 홍대에서 원대한 미래를 꿈꾸는 창업자 양현석은 그것이 무엇인지 공개하지 않지만 그 장소가 홍대 임을 확실하게 밝힌다.


홍대와 그 주변은 나의 음악적 모태이자 고향이나 다름없다. 오늘의 나와 YG를 만들어준 홍대에서, 그리고 한국 가요계의 토양이 된 인디와 언더 쪽 꿈나무들이 땀 흘리면 음악을 계속하는 그곳에서 내가 이루려는 소원이 있다.


홍대의 문화예술산업은 KT&G 상상마당, 산울림소극장, 비보이전용극장 등 소극장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레진코믹스V홀, Yes24 뮤직홀, West Bridge 등의 공연 공간도 홍대 산업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연남동 애경디자인센터


인디뮤직과 더불어 미술과 디자인 분야도 홍대의 정체성에 중요하다. 미대로 유명한 홍대 주변에 작업실, 학원, 갤러리가 들어서면서 홍대 골목문화가 시작됐다. 홍대의 미술 인프라는 디자인 산업의 기반이 됐고 현재 많은 디자인 기업이 홍대 지역에 집적돼있다.   


서울시 보고서에 따르면, 연남동, 서교동, 합정동, 서강동 등 홍대 전역에 집적된 디자인 업종은 전문 디자인업이다. 실내건축과 건축 마무리 공사업은 연남동, 합정동, 그리고 광고업은 합정동과 서강동이 핵심지역으로 파악했다. 디자인 업종 중 홍대 지역에 집중되지 않은 업종은 건축 엔지니어링 및 관련 기술 서비스업에 불과하다.

 

망원동 카페창비


홍대는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출판산업단지이다. 서울시는 홍대 지역을 종로, 강남 일대와 함께 서적·잡지와 인쇄물 출판업 클러스터링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지목한다.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대규모 출판사들이 홍대 지역에 터를 잡고 본사 건물에 북카페를 운영해 지역문화를 풍요롭게 만든다.   


홍대와 가까운 상암동에 미디어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많은 영상, 미디어 업체들이 홍대 지역에서 창업한다. 서울시는 합정동, 서강동, 연남동을 영화·비디오물, 방송 프로그램 제작과 배급업이 클러스터링 되어 있는 지역으로 분류한다.


도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가 예측한 대로 홍대 특유의 도시문화와 탄탄한 골목상권이 새로운 창조인재와 창조기업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술가, 건축가, 출판인 등 문화산업 종사자들은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뚜렷하게 만들고, 골목가게 주인들은 독립서점, 레스토랑, 카페 등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도시 어메니티를 공급한다.

 

 

연희동 골목상권으로진입하는 창조산업 기업들


최근 홍대 문화와 산업이 창출하는 신흥 산업은 IT와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IT·모바일 기업들은 주로 합정동, 서강동에 클러스터링 되어 있다. 서울에서 정보 서비스업 사업체가 집적되어 있는 곳은 도심, 강남 일대를 제외하면 홍대 지역이 유일하다. 소프트웨어 업종도 합정동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서울시와 마포구는 IT산업 활성화를 위해 창업보육기관 '홍합밸리'를설립하고, 홍대 지역 대학의 창업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토록 다양한 산업군이 모여있는 홍대의 지역 발전을 위해 서울시가 벤치마킹하는 대상은 독일 베를린이다. 베를린은 자유분방한 문화와 스타트업의 결합을 통해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부상한 도시다. 음악과 미술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이 아방가르드 도시 문화를 창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조인재를 유치한다는 점에서 베를린이 홍대에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오스틴의 도심 곳곳에서발견할 수 있는 음악산업 기념물


그러나 서울시가 홍대에 새로운 실리콘밸리를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홍대다운 사업인지는 더 고민해야 한다. 오히려 홍대 정체성에 기반한 산업의 육성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의 말대로 홍대는 “인디 뮤지션을 중심으로 하는 자생적 하위문화의 중심지”다. 그렇다면 인디뮤직의 발전과 활용이 홍대 발전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홍대와 유사한 음악도시인 미국 오스틴은 인디뮤직 인프라를 활용해 세계 최대의 음악 축제인 SXSW (South by Southwest)를 개최한다. 1987년 인디뮤직 축제로 시작한 SXSW는 2000년대부터 영화와 인터랙티브 산업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하이테크/엔터테인먼트 축제로 거듭났다. 홍대도 유사한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동아시아 도시에서 찾을 수 없는 대규모 인디뮤직 인프라를 보유한 홍대가 SXSW 같은 하이테크산업 축제를 열어 이를 음악과 IT 산업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발전 전략이다.

 

홍대가 지닌 또 하나의 정체성은 대안문화다. 한국에서 강남이 주류사회 물질주의를 대표한다면 홍대는 그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탈물질주의 문화다. 사회적 기업가 강도현이 표현한 대로 홍대는 "운동과 사업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다. 건축가 김진애가 만난 홍대 사람들은 "독립성을 잃지 않겠다는 인디 정신이 투철하고 아웃사이더로 남은 한이 있더라도 소신을 지키는 언더 정신으로 무장된, 누가 뭐라든 진짜 자기가 좋아서 하는 마니아들이다.”


강남과 홍대의 차이는 상가의 구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강남이 고급 식당, 부티크와 명품 가게 등 상류사회 수요를 만족하는 상점으로 채워진 것에 비해, 홍대는 인디뮤직, 거리공연, 독립서점, 독립브랜드, 실험예술 등 대안 문화를 추구하는 장소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안문화 브랜드 할리데이빗슨


권위주의가 강한 아시아에서 홍대만한 대안문화 중심지를 찾기 어렵다. 개성, 자유, 독립성을 갈구하는 아시아의 젊은이들에게 홍대는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 될 수 있다. 할리데이빗슨, 버진, 디젤 등 '반항아' 이미지를 표방하는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대안문화는 충분히 산업화할 수 있는 소재다.




서울시와 마포구가 해야 할 일은 기존 홍대 산업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우선 홍대의 장소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 외국여행객에게 매력적인 인디문화와 크리에티브 예술문화를 홍대 브랜드로 각인시켜야 한다.


음악·연예산업의 부가 서비스 개발을 지원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캐릭터, 테마파크, 패션 등 홍대문화에서 파생된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할 수 있다.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삼성동 코엑스에 소속 가수의 음악을 체험하고 그들의 얼굴이 새겨진 상품을 판매하는'SM타운 아티움'을 운영해 한류를 이용한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그 예다.


지역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육성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홍대가 상징하는, 홍대 스타가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새로운 사업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을 제안한다. YG가 화장품, 외식업, 패션에 진출하는 것도 홍대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일종이다.


무엇보다 교육, 주택, 의료 등 홍대 지역을 창조인재가 살고 싶어 하는 지역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홍대 지역이 살고 싶은 도시가 되면 더 많은 창조인재가 이 지역으로 집적되고 이들 창조인재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로컬 소비를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역 산업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이처럼 홍대는 관광, 문화, 창조, 라이프스타일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창출하는 '도시산업 발전소'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우리는 제조업 중심 사고방식에 얽매여 홍대 산업의 잠재력을 간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홍진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홍대와 같은 산업 생태계를 복합산업단지라 부른다. "생산기능, 주거기능, 연구기능, 업무기능, 상업기능 등 여러 가지 기능을 일정 공간 내에 유치하여 집적의 이익을 창출하는" 공간이 바로 복합산업단지인 것이다.


복합산업단지와 대비되는 개념은 이제 산업사회의 유물로 쇄락하고 있는 전통적인 제조업 산업단지다. "과거에 비해 대기업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중소·벤처기업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대규모의 생산설비를 중심으로 한 단순한 형태의 생산공간보다 소단위 복합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생산공간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우리가 제조업 산업단지를 지양하고 생산과 생활을 한 곳에서 추구하는 창조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길 원한다면 그 모델을 다른 나라에서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 홍대가 바로 우리가 구축해야 할 창조산업단지 모델이다. 홍대가 탈산업화 경제가 요구하는 창조도시이자 신성장동력인 것이다.




아래는 참고한 글입니다.


김수아, 서울시 문화공간의 담론적 구성: 홍대공간을 중심으로, 서울연구원, 2013

김진애, 우리도시 예찬, 인그라픽스, 2003

서울시, 신촌, 홍대, 합정 일대 산업현황 실태조사 분석 및 발전방안 연구용역, 2016

손남원, YG는 다르다, 인플루엔셜, 2015

양소영, 홍대앞뒷골목, 그리고책, 2010

이무용, 홍대앞 문화역사, 세계일보, 2004

홍진기, 산업입지정책의 현황과 개선방향,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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