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문화 메가트렌드 탈물질주의

by 골목길 경제학자

골목길 현상의 원인은 젊은 세대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바뀐 것입니다. A도시에서 B도시, 신도시에서 골목 도시로 바뀐 것이죠. 라이프스타일 변화의 여파는 골목길에만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라이프스타일 경제 시대가 온 것입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소비와 생산을 주도하는 경제, 저는 이를 라이프스타일 경제라고 부릅니다.


사실 라이프스타일은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단어가 아닙니다. 재들 왜 저리, 아직 고생을 안 해 배부른 소리 한다, 겉멋 부린다, 이리 말합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라이프스타일 경제는 세계적인 현상이고, 한국이 번영하려면 라이프스타일 경제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소비분야에서는 라이프스타일 단어를 자주 접합니다. 소비 트렌드를 추적하는 트렌드 보고서가 매년 수많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발굴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신조어가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긴, 큰 흐름은 하나입니다. 우리 사회가 탈물질주의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탈물질주의는 경쟁, 성장, 노력, 신분과 반대되는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입니다. 키워드는 개성, 다양성, 삶의 질, 행복, 윤리적 가치입니다. 개인이 조직에 구애받지 않고,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사는 그런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개인주의의 무안한 확장이 탈물질주의입니다.


탈물질주의 확산함에 따라, 소비자도 모던 소비자에서 포스트모던,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소비자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모던 소비자입니다. 가격, 품질, 편리성, 다시 말해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입니다. 그중 일부는 소비를 통해 부를 과시하는 과시형 소비자입니다.

2000년대부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차별적, 심미적 소비를 선호하는 포스트모던 소비자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좀 다른 사람과 다른 소비를 하고 싶다,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물리적 품질보다는 문화적 가치와 감성을 느껴보싶다는 소비자들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또 다른 소비행태가 부상합니다. 소셜적 소비 성향이라고 하는데, 소비를 통해 친구를 만나고, 연결하고 유대관계를 맺는 그런 소비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게를 중심으로 생산자-상인-소비자가 취향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 만든 제품,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만든 상품을 선호한다면 바로 소셜적, 연대적 소비자입니다. 소비를 통해서 사회와 소통하고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는 소비자를 라이프스타일 소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소비는 주로 일본을 통해 수입합니다. 일본 소비 트렌드는 고도 성장기를 지나면서 크게 변합니다. 고도 성장기에는 일본에서도 모던 소비자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안정 성장기, 잃어버린 20년, 현재로 가면서 차별적, 심미적, 라이프스타일 소비자로 바뀝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는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미래를 움직이는 트렌드는 크게 기술과 문화 트렌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가 유독 기술 변화에 아주 민감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4차 산업 혁명을 이렇게 걱정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할 것입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저는 4차 산업혁명은 미국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개발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연 그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지를 질문하지 않고 그냥 미국 기술을 따라가기에 바쁩니다.


미국이 원하는 세상을 뭘까요? 이는 미국의 가치 변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미국은 70년대 이후 가장 먼저 탈물질주의를 수용하고 이에 따라 산업과 경제 체질을 개편합니다. 결국, 개인이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조직이나 집단의 의존하지 않고 개인이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기술이 4차 산업혁명 기술입니다.


저도 탈물질주의를 지지하는 편이라 미국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세상이 모두 우리에게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개인이 아닌, 가족 중심의 세상을 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에게 개인보다는 가족이 중요하다면, 가족 중심 사회를 건설한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맞는 방향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사회를 원한다면 공동체를 위협하는 기술은 경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차량 서비스인 우버를 혁신 기업이라 생각하는데, 도시 공동체 관점에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도시가 걷고 싶은 도시, B도시라면 보행길과 대중교통 인프라 구축이 우버 서비스보다 더 중요합니다. 걷기 편하고 대중교통이 잘되어 있는 도시에서 과연 우버 같은 서비스가 필요할까요? 오히려 우버는 편리성과 규모를 강조하는 A도시에 적합한 교통수단입니다.


미국의 문화 변화는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결과입니다. 미국과 서구는 60년대 반전운동, 평화운동, 히피 운동 등 사회 전체를 뿌리째 흔든 큰 혼란을 겪습니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중국의 문화혁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도 세대 간 가치 차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미국의 60년대와 같은 혼란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60년정신을 수용했습니다. 70년대 시작된 이 수용 과정이 유럽, 일본 등 선진국 확산합니다. 탈물질주의 확산 과정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 미시간 대학의 로알드 잉글하트입니다. 5년마다 한 번씩 ‘세계 가치 조사’를 합니다. 50여개 국가의 가치관을 두 축으로 측정합니다. X축이 생존가치-자기표현 가치입니다. 자기표현 가치가 개성, 다양성, 삶의 질을 강조하는 탈물질적 가치입니다. 생존가치는 경쟁, 성공, 신분, 노력, 조직을 강조하는 물질적 가치입니다. Y축은 전통가치-세속 합리성 가치입니다. 전통가치는 종교의 영향이 큰 가치이고, 세속 합리성 가치는 이성과 법에 근거한 사회 질서를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그림에서 보실 수 있듯이 미국을 필두로 서구사회는 생존가치에서 자기표현 가치로 이동합니다. 서구사회 전체가 탈물질주의 성향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 패턴이 다릅니다. 유럽, 특히 북유럽이 자기표현 가치, 세속 합리성 가치 모두 신장했다면, 미국은 자기표현 가치만 늘어납니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미국 사회가 유럽보다 세속 합리성 가치를 수용하는데 소극적이었습니다.


동아시아 패턴이 흥미롭습니다. 잉글하트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가치가 크게 변하지 않은 나라에 속합니다. 1981-95년 사이 우리의 세속 합리성 가치와 자기표현 가치가 변화지 않았습니다.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세속 합리성 가치가 높은 나라입니다. Y축으로 보면 북유럽 모델에 근접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전통문화를 많이 정리하고, 종교도 세속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세속 합리성 가치가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표현 가치입니다. 한국의 자기표현 가치는 중국과 대만 수준, 그러니까 아직 집단주의 성격이 강한 사회로 남아있습니다.

중국은 집단주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전통문화를 수용한 특이한 사례입니다. 사회주의 실험을 하면 전통문화를 봉건 문화로 부정했기 때문에 1980년대에는 무척 세속 합리성 가치가 높았습니다. 개혁개방을 하면서 전통문화를 복원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전통문화가치가 높아진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예외적으로 북유럽 모델을 따라 보다 세속적이고, 보다 개인주의적으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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