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창조 커뮤니티 필독서' 추천했는데요. 오늘은 창조 커뮤니티가 전체 지역발전 추진 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경제 성장 모델이 물리적 자본에서 개인 상상력과 창의력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한국이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의존한 지역발전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토지, 용수, 인력, 항만 등 제조업 생산시설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 성장한 지역이 이제는 도시 어메니티, 다양성, 테크놀로지 인프라 등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문화 자원으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뀐 거죠.
지역이 과거 지역발전 모델에 집착해 창조도시 건설에 소홀한 사이, 지역의 창조산업과 창조인재는 창조도시 인프라가 풍부한 수도권으로 이동합니다. 창조경제의 부상이 2010년 이후 수도권 집중이 악화되는 구조적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지역은 앞으로 어떻게 창조경제를 구축해야 할까요? 창조경제는 개인과 지역의 다양성에 기반한 경제입니다. 새로운 지역발전 모델도 다양성, 특히 규모의 다양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다양한 규모의 지역이 다양한 창조 커뮤니티를 조성해 지역의 창조력을 높여야 하는 거죠. 한국 지역에서 실현할 수 있는 창조경제 단위는 광역경제권, 지역생활권, 동네 생활권 등 3개입니다.
가장 큰 단위가 광역경제권입니다. 지역발전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광역경제권은 수도권, 충청권, 경북권, 경남권, 호남권 등 5대 광역권입니다. 여기에 제주권, 강원권을 추가한 광역경제권 지원 정책이 이명박 정부의 5+2 모델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시티 정책도 광역경제권 모델의 한 유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근 대구경북연구원과 광주전남연구원이 5+2를 3+2 자립 권역으로 재편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5+2에서 독립 단위로 분류하는 제주권과 강원권을 각각 호남권과 수도권으로 편입시키는 안입니다. 사실 광역경제권 구분에 공식이 없습니다. 저는 2010년 이후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점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살린 제주도와 강원도를 다른 지역과 통합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역경제권 논리는 단순한 규모의 경제가 아닙니다. 규모의 경제 논리를 따른다면, 전 국토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것이 지역발전 모델이 되어야 하죠. 5+2 광역경제권은 500만 명 인구가 국가단위 창조경제에 적절한 규모라는 인식에 기반합니다. 홍콩, 싱가포르, 덴마크 등 전 세계가 창조경제 모델로 주목하는 강소국가의 인구가 500만 명 수준입니다. 5+2 모델이 성공하려면 각 광역경제권이 국가 수준의 독립적 권한을 가져야 하는데 이를 공식화한 정책이 이회창 후보가 2007년 대선에서 공약한 ‘강소국 연방제’입니다.
광역경제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가산업 관리입니다. 현재 보유한 국가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가 단위의 신성장동력을 개발하는 것이 광역경제권의 역할이고, (국가산업 육성을 목표로 운영한다는 의미의) 국가 단위 혁신 생태계를 통해 이를 실현해야 합니다.
규모 다양성을 요구하는 창조경제에 독립적인 조세, 산업, 문화, 교육, SOC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광역경제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종합병원, 종합대학, 대형 문화시설과 상업시설 등 주민이 글로벌 수준의 문화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제반 편의시설을 공유하는 지역생활권도 중요한 창조경제 단위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2-5개의 기초 단체를 하나의 지역생활권으로 묶어 지원했습니다.
지역생활권에 적합한 창조 커뮤니티는 기존 지역산업을 지원하고 새로운 지역산업을 발굴하는 지역 단위 혁신과 스타트업 생태계입니다. 현재 광역단체 중심으로 조직된 테크노파크와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역 단위 혁신 생태계와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현재 한국은 지역 단위 산업 생태계를 150-1,000만 명 규모의 광역단체 중심으로 관리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30-50만 명 수준의 생활권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3만 명, 5만 명 단위의 창조도시가 경쟁력을 발휘하지만, 규모의 경제에 민감한 한국에서는 단과 대학 2-3개를 유치할 수 있는 30만 명 규모의 도시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신간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가 성공적인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로 소개하는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의 인구는 10만 명입니다.
개인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창조경제의 지리적 단위는 지역생활권보다 작은 5천-5만 명 규모의 동네 생활권입니다. 창조경제의 기본 자산인 지역 문화도 정체성과 문화를 공유하는 동네 생활권 단위로 형성되고 발현됩니다. 상권, 문화지구, 사회적 경제 기반의 다양한 창조 커뮤니티로 구성된 동네 생활권이 많은 나라가 진정한 의미의 창조국가입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소상공인에게 적합한 창조 커뮤니티는 그 기업이 속한 상권입니다. 정부도 이런 이유에서 소상공인 생태계를 상권 중심으로 구축하려고 노력합니다. 지역 상권 중심의 대표적인 창조 커뮤니티가 서울시와 부산시가 육성하는 골목상권 기반 로컬 브랜드 상권입니다.
창의적인 마을 생산 생태계도 상권 수준의 인구로 가능합니다. 농촌 공동체의 기본 조직인 농협과 다른 농촌 협동조합은 이미 인구 5천 명 또는 더 작은 규모의 마을 단위로 조직되어 있고요. 문화산업 유치보다는 예술인 집적을 목표로 하는 예술인 마을도 작은 규모로 운영됩니다.
문화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문화지구는 상권과 마을보다 큰 규모의 경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대도시일 필요는 없습니다. 문화지구는 상권과 스타트업 생태계 사이의 중간 규모인 3-5만 명 인구를 적정 규모로 제안해 봅니다.
광역경제권, 지역생활권, 동네 생활권 중 제일 중요한 창조경제 단위는 동네 생활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이 다수의 국민이 창조인재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창조 커뮤니티로 기능하는 동네가 많아야, 지역생활권, 광역경제권 단위 창조경제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습니다. 지역생활권과 광역경제권은 각자의 영역에서 동네 생활권을 연결하고, 동네 생활권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동네 단위 창조 커뮤니티는 지역생활권과 광역경제권이 주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동으로 형성되는 생태계죠. 동네 단위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창조산업과 창조기업이 요구하는 도시 환경, 문화 시설,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입니다.
동네를 창조인재가 일하고, 살며, 즐길 수 있는 직주락 센터로 만드는 것이 창조경제 건설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책이 아닐까요? 동네 중심의 직주락 센터 모델은 새로운 모델이 아닙니다. 프랑스 파리가 2019년 시작하고 2021년 서울과 부산 시장 선거에서 논의된 '15분 도시'가 바로 동네 중심 직주락 센터입니다.
정리하면, 창조 커뮤니티에는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혁신 생태계, 지역 단위의 스타트업 커뮤니티, 로컬 브랜드 상권, 문화지구(문화특구), 예술인 마을, 마을 공동체 등 총 6개의 유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중 국가 단위 생태계는 광역경제권, 지역 단위 생태계는 지역생활권, 나머지 4개 생태계는 (적어도 시작 단계에서는) 동네 생활권 중심으로 육성하자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보다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지만, 각 유형을 대표하는 창조 커뮤니티 사례를 아래 표에 정리했습니다.
많이 들어봤다고요? 창조 커뮤니티의 지리적 범위를 삶의 질을 확보할 수 있는 생활권으로 설정하고, 동네 생활권을 새로운 창조경제 단위로 제안한 것이 새롭다면 새로운 내용입니다.
P.S. 커버 사진의 지리산 포럼은 사회적 협동조합 지리산 이음이 남원시 산내면에서 매년 개최하는 지역 커뮤니티 운동 콘퍼런스입니다. 포럼 장소는 마을카페 토닥입니다. 작은 농촌 마을에서 복합문화공간과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지리산과 지역의 작은 변화를 만들고 연결하는 일, 작은 마을을 창조 커뮤니티로 만드는 일입니다.
1차 수정 202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