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산업의 분류와 육성은 지역 경제의 자생력과 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다. 지역이 강한 일본은 지역산업과 지역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육성한다. 야마나시현은 대표적인데, 이 지역은 지역산업을 농업, 로컬 콘텐츠, 소셜 벤처, 중앙산업 지원 산업, 지역 수요 기반 산업 등 중앙산업과 독립된 지역산업을 개념화한다. 로컬 비즈니스에 대한 분류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로컬 지향의 시대'는 로컬 비즈니스를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재생 비즈니스, 도시제조업, 마을 브랜드, 사회적 기업으로 분류한다.
일본의 체계적인 접근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산업과 비즈니스 분류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 사례는 한국 시군구 기초단체가 어떤 지역산업과 지역기업을 육성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글은 일본과 한국의 지역산업 분류 방식과 로컬 비즈니스의 학문적 기반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한국 시군구의 지역산업 육성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한다.
일본 야마나시현은 지역에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를 5개 분야, 11개 영역으로 정의한다. 5대 분야는 ① 관광산업, 지역브랜드 산업 등 국내외 사람들과의 다양한 교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농업분야, ② 6차 산업화 농업, 산림·마을·지역을 연결하는 산림·임업·목재산업 등 야마나시현의 지역자원을 활용하여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산업 분야, ③ 소셜 비즈니스·벤처 등 지역진흥이나 지역복지 등 지역과제의 해 결로 연결되는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 분야, ④ 클린에너지, 부품과 생산 시스템 산업 등 일본의 제조업을 지원하는 경쟁력 있는 기술 및 기능을 활용한 산업 분야, ⑤ 의료기기, 생활산업, 웰빙, 식품산업 등 건강, 보험·요양, 간호 등 새로운 수요가 기대되는 산업 분야이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야마나시현의 ④번 산업, 즉 전국 제조업 밸류체인과 연결된 산업만을 지역산업으로 간주하고 지원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광역경제권 단위의 선도산업, 시도 단위의 신특화산업과 차별화된 시구 단위 연고산업을 통해 특산물 산업의 고도화와 기술 기반 지역혁신 체계의 구축을 모색했으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산업정책의 대상은 아니었다. 탈산업화 시대는 산업화 시대와 달리 지역경제의 자생력을 제고하고 지역색을 부각하는 독립적이고 차별적인 지역산업을 요구한다. 한국 정부도 앞으로 야마나시현이 분류한 모 든 유형의 산업을 지역산업으로 관리하고 지원해야 한다
시군 단위에서 육성할 수 있는 산업이 변화하듯이, 시군 단위 지역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도 변한다. 전통적이 지역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과 차별되는,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대응한 콘텐츠로 창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기업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로컬 비즈니스로 분류한다.
'로컬 지향의 시대'는 로컬 비즈니스를 5개 분야, 14개 비즈니스 모델로 분류한다. 지역자원을 창의적으로 사업화하는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낡고 오래된 지역자원을 재생하는 재생 비즈니스, 지역산업 생태계에 오래 축적된 신뢰 자본을 바탕으로 생성된 도시제조업, 생산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마을 브랜드, 지방 고유의 문화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 등이다.
로컬 비즈니스의 체계적 분류 체계적인 육성 정책은 로컬 기업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를 요구한다. 로컬 비즈니스를 분류하는데 중요한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가 해당 비즈니스가 시장 기반인지, 공동체 기반인지 여부이며, 둘째가 로컬 콘텐츠 기반인지, 보편적 콘텐츠 기반인지 여부다.'로컬 지향의 시대' 분류에서 시장 기 반 비즈니스는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도시 제조업, 공동체 기반 비즈니스는 재생 비즈니스, 마을 브랜드, 사회적 기업이다. 시장 기반 비즈니스와 달리 공동체 기반 비즈니스는 일정 규모의 산업 생태계를 창출하기 어렵다. 시장 기반 비즈니스 중 자생적인 지역산업으로 유 망한 비즈니스로는 다른 지역이 복제할 수 없는 로컬 콘텐츠를 가진 기업을 들 수 있다.
위의 여섯 가지 로컬 비즈니스 분류에서는 로컬 브랜드가, '로컬 지향의 시대 분류에서는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와 도시 제조업 이 이 기준을 만족한다. 지역의 독립기업이 개발하는 로컬 콘텐츠 비즈니스와 달리, 보편적 콘텐츠 비즈니스는 주로 대기업과 프랜차이즈가 주도하는 영역이다. 정부의 특별한 개입이 없이도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콘텐츠다. 현재 주목받는 로컬 크리에이터는 대부분 로컬 콘텐츠와 시장을 기반으로 경쟁하는 개인사업자나 기업이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공통적으로 로컬 콘텐츠로 다른 지역이 복사할 수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기업 형태로 사업화한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는 이렇게 정의한 로컬 크리에이터를 다시 세 가지 유형으로 세분한다. 공간 기반의 앵커스토어, 공간을 운영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프라 비즈니스이다. 앵커스토어는 업종 수에 따라 단일 업종 앵커스토어와 복수 업종 앵커스토어로 구분될 수 있다. 카페, 베이커리, 슈퍼마켓, 독립서점, 로컬 푸드 등이 앵커스토어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업종이다. 최근 트렌드는 여러 업종을 연결하거나 운영하는 복수 업종 앵커스토어다. 마이크로 타운, 복합문화공간, 커뮤니티 호텔, 로컬 편집숍 등이 대표적인 복수 업종 앵커스토어 모델이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아웃도어, 전통문화, 스트리트 컬처, 로컬 기술, 로컬 제조업 등 지역문화와 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일반적으로 작업장이나 생산시설 중심으로 운영되는 비공간 비즈니스다. 앵커스토어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모두 소비자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B2C 업종이다. 로컬 산업에도 미디어, 유통, 기술, 투자, 기획, 교육·훈련, 컨설팅 등 생산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B2B 비즈니스가 존재한 다. 이들 기업을 로컬 경제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로컬 시장의 거래비용을 인하한다는 의미에서 인프라 비즈니스라고 부를 수 있다.
인프라 비즈니스가 반드시 전통적인 B2B 기업인 건 아니다. 예를 들면 로컬 매거진은 판매하는 소비자 중의 상당수가 매거진을 매장에 구비한 로컬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인프라 비즈니스로 분류될 수 있다. 한 지역에 다수의 매장을 오픈하거나 골목형 쇼 핑센터를 개발하는 부동산 개발 사업도 상권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인프라 사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모든 상권 개발 사업이 인프라 사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권이나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만 해당된다.
여기서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와 인프라 비즈니스를 비공간으로 분류했지만 이들 중 많은 기업이 오프라인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기 때문에 공간과 비공간으로 구분하는 건 현실에서 애매할 수 있다. 기업이 공간과 비공간 중 어디에 방점을 두는지에 따라 자신의 비즈니스를 분류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많은 로컬 크리에이터가 매장을 운영하지 않는 비즈니스에 종사한다는 사실이다.
콘텐츠와 창조성에 기반한 로컬 비즈니스는 2010년대 등장한 새로운 콘셉트로 아직 이를 창업으로 활용하는 방법론에 대해 정리한 독자적인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 문헌의 일부는 창업가 정체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디지털 노마드 등 로컬 비즈니스의 중요한 요소를 논의하지만, 아직 로컬 비즈니스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한 공간과 콘텐츠, 그리고 이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다.
이 중 로컬의 스몰 브랜드를 주목하는 브랜드와 디자인 문헌이 브랜드 관점에서 로컬 비즈니스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직간접적으로 로컬 비즈니스를 분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제경영 문헌은 대안경제학과 지역경제학이다. 대안경제학은 로컬 비즈니스를 전통적인 자본주의 기업과 다른 기업 형태로 접근할 때 유용한 문헌을 제공한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아르티장 기업 Brew to Bikes: Portland’s Artisan Economy,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연구가 여기에 속한다. 정부나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지역재생을 연구하는 일본의 지역창생학도 마을 기업, 지역브랜드, 지역마케팅 등 로컬 비즈니스, 특히 농촌 지역의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을 제공한다.
대안적 로컬 비즈니스는 창업자가 주류 라이프스타일과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대안적 라 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성격도 띤다. 지역에 형성된 산업의 구조와 경쟁력을 연구하는 지역경제 학도 로컬 비즈니스 방법론 개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역산업은 자연, 역사, 문화 등 지역환경의 산물이자, 지역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는 생태계다. 지역경제와 지역기업은 떼 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지역환경과 문화는 기업 이념과 조직문화, 지역환경에 최적화된 비즈니스 모델, 기업의 테스트 마켓과 생태계 등 다양한 형태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의 경영에 영향을 미친다.
지역산업을 분석하는 대표적인 틀이 마이클 포터의 클러스터 이론이다. 국가, 지역, 도시의 산업 경쟁력을 그곳에 집적된 산 업 생태계에서 찾는 포터는 원도심 이점 Inner City Advantage, 로컬 이점 Local Advantage, 공유 가치 창조 Creating Shared Value 등 산업 생태계를 활용하고 그에 기여하는 다양한 비즈니스 방식을 설명한다. 소셜 벤처, 문화 스타트업, 콘텐츠 창작자 등 도시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유형의 도시 비즈니스에 대한 연구도 로컬 비즈니스와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문헌이다.
일본의 지역산업 분류와 로컬 비즈니스에 대한 체계적 접근은 지역경제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일본의 접근 방식은 지역의 자원과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방법론을 제공한다. 특히, 시군구 단위에서 육성할 수 있는 다양한 지역산업의 식별과 지원은 지역 경제의 다변화와 자립을 촉진한다. 한국도 분류 방식과 로컬 비즈니스의 육성 전략을 참고하여 지역 고유의 산업을 발굴하고 지원함으로써 지역 경제의 활성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지역산업의 독립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며, 글로벌 경제 속에서도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반을 마련한다.
<참고문헌>
마쓰나가 게이코, 로컬 지향의 시대, RHK, 2017
소네하라 히사시, 농촌의 역습, 쿵푸컬렉티브, 2013
모종린,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