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목길 경제학자 May 17. 2022

상권 활성화 사업의 현재와 미래

한국 골목상권은 양극화되어 있다. 대다수의 상권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MZ세대가 여행하듯 찾는 골목상권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필자의 집계에 따르면, 2000대 중반 서울 홍대, 가로수길, 이태원, 삼청동 등 4 곳에서 시작된 골목상권은 2022년 4월 현재 전국 182 곳으로  늘어났다. 상권을 동 단위로 집계했기 때문에 골목상권을 보유한 읍면동이 180개면, 전체 3,500개 읍면동의 약 5%에 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골목상권 효과는 상권으로 그치지 않는다. 지역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관광단지, 기업 생태계로 진화한다. 경주 황리단길, 전주 한옥마을, 군산 월명동 등 일부 비수도권 골목상권은 상권 활성화를 떠나 도시 전체의 관광산업을 견인한다고 주장할 만큼 지역경제에 미치는 임팩트가 크다. 서울 홍대, 성수동, 이태원, 가로수길 등 1세대 골목상권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로컬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로컬 브랜드 상권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자생적인 지역산업을 공급할 수 있는 골목상권을 우선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이미 서울 로컬 브랜드 상권 양성, 부산 소상공인 산업화, 인천 차세대 미래 상권 지원 등 지역 정부가 로컬 브랜드 상권 육성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지역 정부는 어떻게 골목상권을 지원하고 이를 로컬 브랜드를 배출하는 로컬 브랜드 상권으로 육성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와 시장 변화를 정확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 지역 정부는 그동안 기존 제도의 다양한 상권 활성화 사업을 추진해 왔는데, 기존 제도가 새로운 시장 환경에 적합한지 질문해야 한다. 현재 오프라인 상권은 디지털 전환, 소비자 취향 변화, 커뮤니티, 경험 등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다. 상인 한 명 한 명을 1인 로컬 브랜드로 만들고, 상권 전체를 다른 지역에 복제할 수 없는 로컬 브랜드를 배출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 상권으로 육성해야 온라인과 경쟁할 수 있다. 


상권 활성화 제도와 현황 

현재 시행되는 상권관리제도의 모태는 2002년부터 시작된 시설현대화, 주차환경개선, 특성화시장을 통한 상권 활성화 사업이다. 2010년에 제정된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은 지원 대상 지역을 2010년 이전의 전통시장과 상점가에서 시장이나 상점가에 포함되지 않는 다수의 점포가 밀집한 상업지역으로 확대한 상관활성화구역제도를 도입했다. 2013년에는 지원 대상 규정을 상업지역이 100분의 50 이상 포함된 지역으로 완화해 지원 대상을 주거 지역과 상업지역이 포함된 생활권으로 확장했다. 상권활성화구역으로 지정된 지자체는 전통시장법에 따라 상권관리기구인 상권활성화재단을 운영해야 한다. 


상권 활성화 성공에 중요한 변수가 신규 사업자 유치다. 기존 사업자 지원만으로는 상권 콘텐츠를 개선하는데 한계가 있다. 대표적인 신규 사업자 유치 사업이 청년몰이다. 2011년 문화관광부의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청년몰 사업은 2017년 이후 중기부로 이관돼 정규 시장 활성화 사업이 됐다. 지금까지 전국 36개 청년몰에 672개 점포가 입점했다. 


그러나 정부 상권 활성화 사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정부의 지원으로 활력을 되찾은 전통시장이나 상권이 어디인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언론이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청년몰의 실적도 좋지 않다. 총 672개 청년몰 입점 점포 중 2021년 8월 현재 263개가 폐업했다. 


상권 활성화 사업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개입 방식이다. 공모에 참여한 소수의 지역을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그 지역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전국 단위 상권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어렵다. 대부분의 상권활성화구역이 정부 지원이 끝나 면 자생적인 재정 구조를 확보하는데 실패한다. 사업 내용도 문제다. 기존 상인이 주도하다 보니, 기존 상인의 민원성 요구 사항이 사업의 주를 이룬다. 


정부는 기존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2021년 8월 지역 상권법을 공포했다. 상권 내몰림을 방지하고, 소상공인을 살리는 제도로 홍보한다. 지원 대상은 임대료가 급격히 상생해 주민 협력을 통해 임대료를 관리해야 하는 지역상생구역, 자율 협력과 정부 지원을 통해 쇠퇴 상권을 활성화해야 하는 자율상권구역으로 구분한다. 지역상생 구역은 임대료 인상 제한, 지방세 감면, 대수선비 융자로, 자율상권구역은 지역상생구역 특례, 온누리 상품권 가맹과 상권 특성화 사업으로 지원한다. 


지역상권법은 모법인 전통시장육성법의 상권활성화구역 사업의 연장이다. 가장 큰 차이는 추진 체계다. 전통시장법에서는 지자체가 상권활성화재단을 만들어야 했는데 지역상권법에서는 주민과 상인이 조합을 만들어 추진할 수 있다. 지역상권법은 그동안 임시법(특별법)과 지자체 조례로 추진하던 상권활성화사업을 공식 법체 계로 제도화하고, 쇠락 상권에 한정한 상권 관리 자격에 임대료가 상승한 상권을 포함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역상권법으로 충분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기존 상인과 임대인 중심의 정책으로는 상권 경쟁력 강화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이 반복된다면 지역상권법 사업도 주차장 건설, 대기업 규제 등 기존 사업자가 원하는 사업 중심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상권법으로 상권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정부는 '사람과 돈을 모으는' 골목상권과 백화점의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상권관리기구 없이 성장하는 골목상권과 상권관리기구의 체계적인 개입으로 성공하는 백화점, 즉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손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상권관리 성공의 비결이다. 


콘텐츠 상권의 부상 

골목상권은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상권운영체계를 가동해 콘텐츠 경쟁력을 유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골목상권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일까? 골목상권의 국내외 사례를 분석한 '골목길 자본론'은 골목상권의 OS(운영체계)를 C-READI로 요약한다. 성공한 골목상권의 OS는 공통적으로 문화 인프라 (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 정신 (Entrepreneurship), 접근성(Access), 공간 디자인(Design), 정체성 (Identity) 등 6가지 축으로 작동한다. C-READI는 또한 골목상권 성공의 조건이기도 하다. 


정부가 골목상권과 같은 상권을 원한다면 상권 관리를 통해 6가지 조건의 실태를 평가한 후 부족한 부분에 자원을 투입해 상권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골목길의 문화자산을 확충하고, 임대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골목 창업을 지원하고 필요 인력을 훈련·육성, 골목길 연결성과 대중교통 접근성을 개선하며, 골목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공공재에 투자하는 것이다. 


C-READI 모델은 단순하지만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기존 연구가 문화자원, 임대료, 거리 디자인, 접근성을 강조한다면, C-READI 모델은 기업가 정신, 정체성 등 새로운 성공 요인을 제시한다. 영역별 성공 가능성은 다르다. 저층 건물과 걷기에 편한 거리, 주거지와 상업 시설 공존 등의 복합적 공간 디자인과 편리한 대중교통 구축을 통한 접근성 개선은 정부가 비교적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지역 정체성을 드러내는 미술관과 공방, 적정 임대료의 유지, 개성 있는 가게를 창업해 골목문화를 선도하고자 하는 기업가 정신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일궈내기 힘들다. 주민, 상인, 예술가, 청년창업가 등 골목길 주체들의 협력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내외 성공 사례는 골목상권 지속 성장의 핵심이 골목문화 유지와 이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에 있음을 보여준다. 


골목 상권을 활성화하고 싶은 정부에게 C-READI는 상권 현황의 체크 리스트이기도 하다. C-READI 각 영역에서 현재 상태가 어느 수준에 와있고, 이를 더욱 만족하려면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정부도 기업처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경험을 볼 때 정부가 잘할 수 있는 일은 거리 조성과 문화시설 유치다. 지역 정부가 매력적인 골목상권을 원한다면 두 가지 일에 집중해야 한다. 걷고 싶은 길을 열어주고, 동네 정체성에 맞는 문화시설을 배치하는 일이다. 


지역 정부가 직접 상권 개발에 나서야 한다면 지역관리회사 모델을 고려할 수 있다. 2019년 오픈한 군산의 영화타운은 전통시장 재생의 성공 모델이다. 영화타운 사업의 차별성은 추진 방식이다. 청년몰 사업이 기획자를 먼저 선정한 후 기획 자가 기초 공사를 하고 개별 운영자를 모집하는 기획자 모델이라면, 영화타운은 운영자를 먼저 선정한 후 그가 전체 사업을 총괄하고 장기 운영하는 지역관리회사 모델이다. 건축도시연구원이 운영자 모델을 군산시에 제안하고 지원했으며, 군산의 민간 사업자인 ㈜지방이 사업의 시행을 맡았다. 


로컬 브랜드와 로컬 브랜드 상권 양성

상권 개발보다 더 시급한 정책은 로컬 크리에이터 공급 정책이다. 보다 많은 로컬 크리에이터를 양성해 지역 상권에 공급해야 기존 기업과 상권이 브랜드로 탈바꿈할 수 있다. 골목상권을 로컬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 생태계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한 로컬 크리에이터의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세부 사업으로는 첫째, 지역 대학과 연계해 대학이 로컬 크리에이터를 장기적으로 안정되게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대학에 로컬 크리에이터 교과과정을 보급해 지역 대학 학생이 학교에서 로컬 창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이 로컬 창업에 대한 인식과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도 대다수의 지역대학 학생을 대기업 취업 준비 중심으로 교육한다.


둘째, 예비 창업자를 위한 현장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원해야 한다. 지역 가치를 차별화된 콘텐츠로 구현하며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양성을 위한 체계화, 전문화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훈련 단계에서 지역의 유무형 자원을 기반으로 한 사업 아이템의 기획, 상권 필드 리서치, 현장실습, 비즈니스 모델 개발, 실행계획 수립까지 마스터할 수 있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


셋째, 공간 기획 중심으로 로컬 크리에이터를 훈련해야 한다. 골목상권에서 성장하는 로컬 브랜드는 공통적으로 매력적은 공간을 기반으로 커뮤니티 자원을 연결해 성공한다. 공간과 커뮤니티 기획 능력이 없이는 오프라인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간 창업 훈련의 필수 요소가 창업 공간의 지정이다. 기존 상권에 빈 공간을 확보하고, 지역 청년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창업하면 좋을지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창업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훈련하지 말고, 공간을 미리 지정한 다음 그 공간에서 창업할 팀을 선정해 훈련하는 방식으로 지역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넷째, 로컬 브랜드 상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업 지원 시설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주락 근접 라이프를 중시하는 창업가의 주거와 커뮤니티 활동도 지원해야 한다.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코리빙, 청년 주거, 창업공간 공급과 중개를 통한 상권 내 거주와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 커뮤니티를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마케팅, 행사, 축제 등 로컬 브랜드 상권 단위의 커뮤니티 활동도 중요하다.


다섯째, 장기 발전 계획이다. 상권 활성화 사업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이를 통해 어떤 동네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비전이다. 입지 조건이 좋은 상권은 직주락 센터와 로컬 브랜드 상권을 지향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생활 반경이 좁아져 많은 사람이 동네 중심의 생활을 하고 이에 익숙해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지역은 주민이 동네 안에서 직주락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권으로 재편되고 있다. 생활권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경제적 자생력에 달렸다. 홍대, 성수동 골목상권이 단계적으로 도시산업 생태계로 진화했듯이, 앞으로 구축해야 하는 동네 중심 생활권도 지역 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를 배출하는 단계까지 발전해야 한다. 


이처럼 지역 상권의 미래는 골목상권 구축에 있다. 상권과 상권이 경쟁하는 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온라인과의 경쟁에서 확장하는 상권이 골목상권이다. 성공적인 골목상권 조성을 위해서는 안정된 로컬 크리에이터 공급이 필수다. 지역대학, 전문 양성기관, 앵커스토어, 지역관리회사 등 다양한 자원과 연계해 로컬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창업 기업을 공급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상권관리의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기적인 목표는 상권 활성화지만, 장기적인 목표는 상권과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와 로컬 브랜드의 지속적인 배출이 되어야 한다. 상권 기반 소상공인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소상공인 지원을 복지가 아닌 산업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제조업을 산업단지로 관리한다면, 상권 경쟁력과 구성이 중요한 소상공인 산업은 지역상권으로 관리해야 한다.


<참고 자료>

모종린, 골목길 자본론, 다산북스, 2017

모종린,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알키, 2021

윤주선, 지역관리회사와 마을재생, 건축공간연구원, 2020

"죽어라 뛰는데 답이 없다, 백종원, 이미트 파워도 안 먹히는 청년몰," 조선일보, 2021.9.3


출처: 골목상권 활성화, 목민광장, 희망제작소, 2022.5 


매거진의 이전글 상인회 중심에서 행정 중심 상권 관리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