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나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 집만큼 그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공간이 있을까? 반反기술, 탈 脫기술, 선善기술 중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지, 집에서 나의 기술 철학을 구현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술보다 먼저 선택해야 하는 것이 있다. 라이프스타일이다. 집도 그 안에서 '나만의 작은 문명'을 만든다는 인문학적 고민을 요구한다(김지수, 2022). 내가 지향하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먼저 결정하고, 그에 따라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순리다.
라이프스타일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집만큼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공간이 있을까? 김지수 작가가 《집을 갖추다》에서 지적하듯이 우리는 ‘나만의 작은 문명’을 만든다. 그 렇다면 집의 미래는 라이프스타일의 미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기서 라이프스타일이란 개인 의 취향을 넘어 사회에서 널리 인식되는 생활 문화로서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집과 관련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해야 할까? 일단 개인 취향의 문제는 다른 글로 미룬다. 여기서 말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사회에서 널리 인식되는 생활 문화로서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집과 관련한 라이프스타일을 논할 때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이 ‘사는 집’이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사는買 집과 사는居 집. 집을 투자 대상으로 여기는 ‘사는 집’ 문화가 지배하다 보니, 내가 실제로 생활하는 ‘사는 집’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 하듯 적당히 투자 가치 있는 주택, 주로 아파트를 살 수 있으면 사서 식구가 늘어남에 따라 평수를 늘리는 것이 집에 대한 우리네의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특히, 4인 가족 틀에 박힌 기성세대의 생각이 그렇다.
그런데 ‘MZ세대’와 ‘코로나’라는 시대의 키워드가 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집은 더 이상 단순히 사는 공간만이 아니다. 일하고 여가를 즐기는 공간이 됐다. 더불어 자연 환기가 중요해지면서 테라스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하지만 집에 사무, 주거, 놀이, 환기 공간을 따로 장만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은 집안 공간의 재배치로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대응한다. 트렌드에 따라 집의 중심 공간이 거실의 소파에서 부엌의 식탁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1인 가구 중심으로 집 문화가 바뀌다 보니 공간도 좁아지고 굳이 밥을 먹는 공간과 휴식하는 공간을 분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언제부터 인지 침구류가 중요해졌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데일리 루틴’을 위해 시간을 쪼개 서라도 편안하고 깊은 수면을 챙겨 삶의 질 유지 및 향상에 항상 신경 써야 한다. 집 가꾸기 또한 새로운 트렌드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인테리어나 가구 장식에서도 나다움이 중요한 트렌 드로 부상했다. 삼성전자의 ‘유메이크 YouMake’ 캠페인처럼 많은 리빙&전자제품 브랜드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자유자재로 제품 사용 조합과 색상, 디자인을 바꿔볼 수 있는 ‘비스포크 bespoke’를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제 가전에서도 나의 개성을 표현하고, 더 나가 내가 원 하는 제품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세계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다. 1960년대 이후 서구 사회가 지속적으로 추구한 삶의 방식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이다. 공동체도 중요하지만, 자유와 독립을 보완하는 가치다. ‘느슨한 연대’가 MZ세대의 공동체관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물건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바꾸듯이, 공동체에 대해서는 그런 자율성을 원한다. 그때그때 필요할 때 선택하는 것이 공동체다.
일의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노마드가 느슨하게 외부와 연결하면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직업이 아닐까. 디지털 노마드란 노트북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주로 코딩, 디자인, 콘텐츠 등 디지털 기술을 보유한 프리랜서들이다. 과거에는 일부 프리랜서만 디지털 노마드를 선택했지만, 코로나를 거치면서 일하는 사람의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됐다. 대기업이 리모트 워킹, 하이브리드 워킹을 권장하기 시작하면서 대기업 직원들도 실질적인 디지털 노마드로 일한다.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에 익숙한 직원들은 이제 사무실로 돌아오라는 회사의 명령을 거부한다. 회사로 돌아가더라도 사이드 프로젝트, 부캐, 부업 활동으로 디지털 노마드적인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많고, 근무시간에 충족하지 못하는 디지털 노마드 욕구는 여가 시간에 채운다.
디지털 노마드가 라이프스타일의 대세라면, 미래의 집도 디지털 노마드의 수요에 맞게 진화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맞다. 기술도 디지털 노마드가 원하는 집에 맞게 개발하고 수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노마드가 원하는 집은 어떤 집일까?
집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제주에 한 달 살기처럼 자신이 살고 싶은 장소에서 단기간 살고 그다음 다른 장소로 옮기는 디지털 노마드에게 영구 주택 Permanent Home이란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 한 장소에 머물 때도 독립 주택일 필요도 없다. 자원을 나누어 쓰는 공유주택, 코리빙 스페이스면 충분할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는 대체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심플 라이프,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한다. 주택에서도 공동 자원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한다. 공유 환경은 또한 노마드 생활을 하면서 부족할 수 있는 커뮤니티 라이프를 제공하는 장점도 있다.
그럼에도 집은 집이다. 코리빙 스페이스에서도 최소한의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크리에이터에게 필요한 특별한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예술가에게 어떤 집을 선호하는지 묻고 싶다. 예술가 마을, 예술가 도시 개념이 말해 주듯이, 도시와 동네에 대해서는 크리에이터 와 예술가의 전반적인 선호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예술가의 집’이라는 개념도 있지 않을까? 검색하면 ‘예술가의 집’이라는 제목을 가진 적지 않은 책을 발견할 수 있다. 반가워 읽었지만, 정답은 주지 않는다.
유명한 예술가가 살던, 유명한 작품의 배경이 됐던 집을 소개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상식적은 수준에서 크리에이터의 집을 개념해야 한다. 집에서 크리에이터에 게 제일 중요한 공간은 작업실이다. 노트북 하나로 일하는 크리에이터에게 필요한 작업실은 화가나 조각가에게 필요한 작업실과는 다를 것이다. 최근까지도 예술가는 작지 않은 작업실을 찾아 공장 지역, 빈민 지역 가리지 않고 이주했다. 덕분에 많은 낙후 지역이 예술가의 유입으로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탈바꿈했다. 집에 작업실이 있어도 집 주변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크리에이터가 집의 작업실에 크게 투자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집의 중심 공간으로 떠오르는 키친에서 작업식을 꾸릴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집의 미래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이처럼 디지털 노마드의 작업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노 마드의 작업실을 반드시 도심의 거점 오피스 또는 코워킹 스페이스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라이프스타일의 미래를 개척하는 기업인들은 디지털 노마드의 작업실로 어떤 집을 제안할까?
에어비앤비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는 여행의 미래를 ‘자연 속에서 한 달 살기’로 전망한다. 그 장소로 산속의 오두막을 제시한다. 여행이 자주 가기 어려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한번 여행 가면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일과 휴식을 융합하는 워케이션Work+Vacation이 매력적인 여행 방식으로 부상한다.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안전한 곳에서 자연을 즐기면서 일하고 싶다면 산속 오두막만큼 좋은 곳이 없을 것이다.
주거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2022년 5~6월 충청북도 진천에서는 열린 ‘하우스 비전’ 전시회였다. ‘미래의 주거와 라이프스타일’의 주제로 농촌과 교외에서 자신만의 정서와 가치가 담긴 일상을 향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는 주거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전시 기획자들이 주목한 미래의 집은 ‘농막’이다. 공원, 마켓, 레스토 랑, 농장, 농막으로 마을을 구성하고 그 중심에 농막을 두었다. 농막은 하이테크 농업과 디자인으로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는 마을의 작은 집이다. 무인양품 디자이너 하라 켄야의 ‘양의 집’도 평 소 그의 철학인 ‘이 정도면 충분히 좋다’를 연상케 하는 미니멀리즘 작품이다. 작고 가벼운 농막,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디지털 노마드의 홈 베이스로 제격인 것 같다.
코리빙 스페이스, 마이크로 하우스, 오두막, 농막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이다. 지속 가능성이 어떤 기술보다도 앞으로 우리의 삶과 집을 지배할 것이다. 월든 오두막이 대표하는 19세기 초월주의와 다른 점은 기술이다. 기술이 제어한 환경에서 기술로 연결된 자연주의적 삶을 사는 것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지만 자연에 충실한 삶, 그 삶에 맞는 집이 디지털 노마드,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이고 집이 되지 않을까?
<참고 문헌>
김지수, 가구, 집을 갖추다, 싱긋, 2022
에드윈 헤스코트, 집을 철학하다, 아날로그, 2015
최고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휴머니스트, 2017
*까사미아 브랜드북 기고문,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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