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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n 24. 2022

왜 골목길인가

한국에서 도시나 마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질문해야 할 것 같다. 왜 골목길에 사람과 돈이 모일까? 전국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상권은 거의 예외 없이 원도심 골목지역에 위치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네오밸류와 같은 부동산 개발회사는 수원 광교 신도시에서 골목상권 콘텐츠로 디자인한 쇼핑몰 ‘앨리웨이 광교’를 출시했다. 해외 트렌드도 유사하다. 뉴욕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첼시 마켓 등 보행, 체험, 독립가게 등 골목상권 콘텐츠로 채운 거리형 쇼핑몰이 늘어난다.  

 

최근 감지되는 트렌드는 ‘직주락’ 센터다. 한 지역에서, 직주락, 즉 일, 주거, 놀이를 도보나 자전거 이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동네다. 직주락 근접은 2010년 이후 감지할 수 있는 직주 근접 선호의 연장이다. 서울의 신흥 직주락 센터인 마포, 용산, 성동(마용성) 사례가 보여주듯이, 직주락 센터는 락-직-주 순서로 형성된다. 매력적인 골목상권이 들어간 후 일자리와 주거를 유치하는 패턴을 따른다. 

 

그렇다면 새로운 주거단지는 어떻게 골목길 현상을 반영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골목길의 건축환경에 대한 학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골목상권에 대한 로컬 경제학 북클럽 토론을 들으면서 골목길의 정의, 현황,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실감했다.


필자는 건축환경과 상권의 관계를 설명한 ‘골목길 자본론’에서 골목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골목상권이 들어가는 건축환경은 분석하지 않았다. 책에서는 골목상권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대로변 상권, 먹자골목을 제시했다. 도로로서 골목의 반대말로는 대로를, 콘텐츠로서 골목상권의 반대말로는 먹자골목을 상정했다. 서울의 골목지역이 어디에 있고 그곳이 어떤 지역인지는 굳이 논의하지 않아도 다 아는 지식이라 생각했다.


골목길과 골목지역의 정의

골목길은 골목과 길의 합성어다. 골목은 어원이 불확실한 단어이기에 오히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건축가 천의영은 골목을 골짜기 같은 통로가 꺾이는 지점으로 이해한다. 꺾여가며 연결된 길이 골목길인 셈이다. 건축가 김영섭은 다르게 해석한다. 골목은 마을의 입구를 의미하고, 골목길은 마을의 입구에서 시작하는 동네 안의 길로 설명한다.


그럼 동네 밖의 길은 무엇일까? 동네가 하나의 독립된 마을로 형성됐던 농경 사회에서 동네 밖의 길이란 건,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이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 신작로가 됐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새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어사전은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 신작로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면, 골목길은 사람들이 오래 사용해 오던 동네의 옛 길이다.


현재 우리가 '골목길'로 인식하는 골목길은 역사적 정의와 다르다. 일반적으로 중앙 분리선이 없는 2차선 규모의 좁은 길을 골목길로 인식한다. 골목길이 반드시 원도심 지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도시 저층 지역에 있는 작은 길도 골목길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4차선 규모의 도로도 보행환경이 우수하면 골목길로 간주하다.


정부는 도시계획 기준에 따라 도로를 광로(8-10차선), 대로(6차선), 중로(4차선), 소로(2차선)로 분류한다. 도로 크기로 골목지역을 정의하면, 중로와 소로로 연결된 격자형 도로망을 가진 저층 지역이 골목지역이다. 골목상권은 이런 골목지역에 진입하는 상권이다. 건축학자 김성홍은 가로수길 현상을 설명하면서 중로와 이면도로의 위계적 구조를 상권 형성 요인으로 지적한다. 곧고 긴 중로와 그 이면도로가 격자형 구조망을 형성하는 지역이 골목상권 입지 조건이다.


중로와 이면도로의 격자형 구조망이 가장 광범위하게 펼쳐진 지역이 홍대앞이다. 서교동에서 시작된 홍대앞은 격자형 구조망을 통해 연희동(1), 연남동(2), 서교동 동부(3), 서교동 서부(4), 상수동(5), 합정동(6), 망원동(7), 대흥동(8) 등 현재 7개 동, 8개 소권역으로 확장했다.


망원동-서서교-망원동-연희동으로 이어지는 동교로(붉은색)


남북 확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길이 동서교에서는 와우산로와 어울마당로, 서서교에서는 동교로와 성미산로다. 골목상권은 중로와 이면도로를 통해 확장한다. 다른 상권과 비교해, 홍대 지역엔 상권과 상권을 연결하는 장거리 중로가 많다. 양화로, 연희로, 독막로 등 홍대 안의 대로는 상권 확장에 기여하지 못한다. 홍대 상권은 대로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또는 대로에도 불구하고 성장한 상권으로 평가하는 것이 맞다.


동서교의 중심 거리는 걷고싶은거리-홍통거리-주차장길-당인리발전소로 이어지는 어울마당로다. 과거 서강역에서 당인리발전소를 잇는 철길을 재생한 도로다.  홍대앞 상권은 말 그대로 홍대앞 거리인 와우산로에서 시작했다. 홍대 정문 앞을 통과하는 와우산로 주변에 모인 예술가 작업실과 아지트가 홍대 문화의 토대였다. 산울림소극장이 자리 잡은 와우산로 북쪽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땡땡거리로도 불리는 이 거리는 1980년대 홍대 지역 노포 음식점이 모여있던 곳이다.


동교로는 남쪽 끝인 망원정사거리에서 북쪽 끝인 연세대 북문까지 무려 4.2km에 이른다. 고전적인 골목길은 아니지만 보행환경이 좋고 주변 건축물이 낮고 다양해 충분히 골목길 분위기를 낸다. 연희동으로 넘어오면 이름이 연희맛길, 연희로25길, 26길로 바뀐다.


서울 골목지역의 역사적 진화

현재 골목지역은 서울 전역에 분포돼 있다. 골목지역의 역사적 진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개념이 원구도심이다. 서울이 원도심(조선시대), 구도심(근대화시대), 신도심(1990년대 이후)으로 확장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골목지역이 공급됐다.


원도심이 4대 문 안이라면 구도심은 어디일까? 구도심은 2단계로 형성됐다. 일제강점기 전차길로 연결된 지역이 1차 구도심이라면, 1980년대까지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형성된 지역이 2차 구도심이다.

     

1950년대 전차 노선도(출처: 위클리서울)


일제강점기 서울 확장 과정을 보면 현재의 종로, 중구, 용산, 영등포가 구도심 중심지역이다. 일제강점기 건설된 전차 노선은 성북구, 마포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성동구 일부도 전차가 다니던 구도심임을 보여준다. 구도심은 도로정비와 토지구획정리를 통해 격자형 도로망을 갖춘 지역이 있고 그렇지 못한 지역(창신동 등)으로 나뉜다.





1980년대까지 진행된 토지구획정리사업도 많은 골목지역을 공급했다. 홍대 지역의 기본 골격, 즉 격자형 도로로 연결된 단독주택 지역도 1960년대 서교, 성산, 연희 토지구획정리사업에 의해 짜였다. 이 지역을 촘촘히 연결하는 걷기 좋은 길, 이면도로가 이때 만들어졌다. 강북지역만이 아니다. 압구정동, 청담동, 송리단길, 가로수길, 서래마을 등 강남의 골목상권도 1970-8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공급된 골목지역에서 자리 잡았다.


골목길의 무엇이 특별한가?

서울이 마지막으로 골목상권이 들어갈 수 있는 건축환경을 조성한 시기는 1980년대다. 1990년대 이후 대단지 중심으로 택지를 공급함으로써 골목상권 진입 가능한 건축환경의 공급을 중단했다. 더 우려스러운 변화는 기존 원구도심의 재개발이다. 원구도심 골목지역을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면 골목지역의 총량은 계속 줄게 된다.


대형상가, 광로와 대로 중심으로 구성된 신도시에서 매력적인 거리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 광교 앨리웨이, 판교 애비뉴프랑, 동탄 레이크 코모 등 부동산개발업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골목 구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거리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노력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골목길과 골목지역에 임의적으로 만들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첫 번째가 소프트웨어다. 골목길이 제공하는 문화자원은 역사가 만드는 추억과 기억, 주민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공동체 문화, 팔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정성, 개성 있는 독립 가게가 생산하는 콘텐츠 등 무수히 많다. 임의적으로 건설된 상업시설이 만들 수 없는 문화다.


두 번째가 하드웨어다. 골목길, 즉 중로와 소로로 연결된 격자형 도로망이 사람들이 걷고 싶어 하는 휴먼 스케일 도로다.  건축학자 유현준은 골목길의 공간 구조 자체가 볼거리의 밀도와 우연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골목지역이 보유한 또 하나의 중요한 문화자원이 건축물이다. 서울의 원도심은 한옥, 1단계 구도심은 적산가옥, 2단계 구도심은 단독주택을 공급했다. 현재 서울의 골목상권이 활용하는 소중한 건축자원이다. 현재 공급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문화자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양한 연령대의 건축물이 존재하는 것도 골목지역의 장점이다. 현재 원도심 건축물은 대부분 여러 가구가 같이 사는 중간주택이거나 주거, 상업, 업무 기능이 혼합된 무지개떡 건축물이다. 오래된 건물은 또한 서민, 예술가, 청년이 들어갈 수 있는 저렴한 공간을 제공한다. 사회적 다양성 구축을 위해 중요한 자원인 것이다.


골목지역의 소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가지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걷기 좋은 가로와 스토리 있는 건축물이다. '멋진' 가로와 건축물이 없는 지역에서 '멋진' 거리문화와 도시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단지 중심의 택지공급, 재건축과 재개발은 결국 후세가 활용할 수 있는 건축환경, 스토리 자원, 문화창조산업 소재를 파괴하는 일이다.

 

정부는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주택 수요를 만족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신도시와 단지를 건설한다. 정부가 국민의 특정 건축 양식과 지역 선호를 만족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 제기를 차지하고도, 작금의 도시 정책은 도시 미래에 중요한 두 가지 트렌드를 간과한다. 

 

첫째가 도시의 창조화다. 창조경제 시대의 도시는 단순히 주거지가 아니다. 도시의 다양성과 문화를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문화와 창조산업을 육성하는 생산지다. 역사와 공동체 보호를 위해 골목지역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는 도시경쟁력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스토리와 콘텐츠 자원을 보호하듯이 골목길과 골목지역을 보호해야 한다. 

 

둘째가 도시의 다양화다. 현재 다양한 연령대의 대도시 주민이 자연, 환경, 창의성, 공동체 등 대안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대도시를 떠난다. 현재 농촌과 소도시 환경이 그들의 대안적 욕구를 만족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공동체, 공유, 자연, 창의성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 지역의 공급이 필요하다. 이런 주거 지역은 가능하면 도시재생을 통해 읍내, 면소재지 등 기존 농촌 중심부의 자연 마을에서 공급해야 한다. 

 

대안적 도시 설계의 방향은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없다. 도시재생 지역도, 농촌의 공유 주거 단지도 동네를 더 건축적으로 아름답게, 더 공동체 친화적으로, 더 창의적인 상권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 상황에서 그 모델은 원구도심 골목상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Jane Jacobs, The Death and Lifes of Great American Cities, 1961

김성홍, 길모퉁이 건축, 2011, 현암사

모종린, 골목길 자본론, 2017, 다산북스

박기범, 동네에 답이 있다, 2022, 집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2015, 을유문화사

한광야, 도시의 진화 체계, 2022, 커뮤니케이션북스

황두진, 무지재떡 건축, 2015, 메디치미디어



출처: 간삼건축 매거진 지스타일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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