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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ug 28. 2022

원도심 골목상권 현상의 의미

한국 도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다양한 모델이 있지만 한국 도시 앞에 놓인 선택은 스마트 도시와 골목 도시로 요약할 수 있다. 스마트 도시가 신도시에서 추진하는 모델이라면, 골목 도시는 원도심에서 구현할 수 있는 모델이다.


한국 도시가 선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미래 세대가 삶의 질과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면, 그 라이프스타일을 지원하는 도시 모델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미래 세대가 효율성과 편리성을 강조하는 신도시와 스마트 도시를 선택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2000년대 초반 이후 한국 도시의 변화는 그 선택이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원도심 도시재생을 통해 형성되는 골목 도시가 미래 세대의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골목 도시의 경쟁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원도심 골목상권이다. 골목상권이란 MZ세대가 여행 가듯 찾는 골목지역 상권이다. 골목상권은 일종의 문화지구다. 이곳을 찾는 소비자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팔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찾을 수 없는 경험, 감성, 가치, 콘텐츠를 소비한다.


골목상권은 2005년 이후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던 주거, 근린, 공업 시설 중심의 골목 지역에 새롭게 들어선 독립 기업 중심의 상권을 말한다. 골목지역을 건축 환경으로 정의하면 중로(4차선 이하)와 골목길로 연결된 격자형 도로망과 5층 이하의 건축물이 밀집된 지역이다.  


최근 한 10년, 뜨는 상권은 거의 다 모두 골목상권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은 당연히 그렇지만 지방도 마찬가지다. 최근 우리가 지역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래도 지역에서 뭔가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경주 황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등 지역의 골목상권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에서는 홍대, 삼청동, 가로수길, 이태원이 1세대 골목상권이다. 익선동, 망원동, 후암동, 부암동, 을지로가 최근에 뜬 골목상권이다. 2005년경 서울의 홍대, 삼청동, 가로수길, 이태원에서 시작된 골목상권은 이제 전국 전역의 180여 곳으로 증가했다.


골목상권이 도시의 미래에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문화창조산업의 입지 조건이다. 한국이 하이테크 산업을 넘어 문화창조산업을 육성하고 싶다면, 예술가와 크리에이터가 선호라고 집적된 지역을 문화창조산업 단지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


현재 서울에서 소규모 문화창조산업 기업과 크리에이터가 독립적으로 집적된 지역은 홍대, 성수동, 이태원 등 골목상권 지역이다. 크리에이터, 예술가 등 창조계급이 다양한 사람이 모이고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하는 골목상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여행자와 창조계급이 선호하는 원도심 골목지역을 포기하면, 제일 먼저 위협받는 산업이 관광산업, 그리고 그 다움이 문화창조산업이다. 골목상권의 관광 자원 가치는 이 질문으로 답할 수 있다. 우리 중 누가 신도시로 여행 가는가?


두 번째 이유는 삶의 질이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청년 세대의 직주 근접, 더 나가 직주락 근접 선호가 뚜렷해졌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청년세대가 근거리에서 일하고 즐기며 생활하는 지역을 선호한다. 한국에 더 많은 직주락 센터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최근 서울에서 직주락 센터로 부상한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마용성은 기본적으로 골목상권 현상이다. 마용성의 직주락 구조는 공통적으로 ‘락(상권)’으로 시작했다. 마포구와 용산구가 주거지로 주목받기 이전인 2005년에 이미 두 지역은 골목상권을 바탕으로 청년문화를 선도하는 문화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성동구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늦은 2010년대에 시작되었지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골목상권이 직주락 센터화를 견인했다. 서울을 대표하는 골목상권인 홍대, 이태원, 성수동을 보유한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에서 직주락 형성이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골목길과 골목지역에 무엇이 있길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중심지로 부상하는 것일까? 첫 번째가 소프트웨어다. 골목길이 제공하는 문화자원은 역사가 만드는 추억과 기억, 주민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공동체 문화, 팔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정성, 개성 있는 독립 가게가 생산하는 콘텐츠 등 무수히 많다. 임의적으로 건설된 상업시설이 만들 수 없는 문화다.


두 번째가 하드웨어다. 중로와 소로로 연결된 격자형 도로망이 사람들이 걷고 싶어 하는 가로다. 골목지역이 보유한 또 하나의 중요한 문화자원이 건축물이다. 서울의 원도심(4대문안)은 한옥, 1단계 구도심(일제 강점기 전차 노선)은 적산가옥, 2단계 구도심(1960년대 택지구획정리 지역)은 단독주택을 공급했다. 현재 서울의 골목상권이 활용하는 소중한 건축자원이다. 현재 공급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문화자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양한 연령대의 건축물이 존재하는 것도 골목지역의 장점이다. 건축 다양성 자체가 매력이지만 오래된 건물은 서민, 예술가, 청년이 들어갈 수 있는 저렴한 공간을 제공한다. 사회적 다양성 구축을 위해 중요한 자원인 것이다.


골목지역의 문화적, 산업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서울과 지방의 많은 골목지역이 재개발 대상지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주택 수요를 만족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 맞다. 하지만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만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은 재고해야 한다. 스마트 도시와 골목 도시가 상생하는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창조경제 시대의 도시는 단순히 주거지가 아니다. 도시의 다양성을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문화와 창조산업을 육성하는 생산지다. 역사와 공동체 보호를 위해 골목지역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는 도시 경쟁력이다. 골목지역의 스토리와 콘텐츠 자원으로 미래 세대가 선호하고 미래 경제가 요구하는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골목지역을 보호해야 하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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