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목길 경제학자 Oct 26. 2022

로컬이 강한 지역과 동네

세상 변화를 실감한다. 그동안 지역 인재들이 지역을 떠난다는 소식만 들었는데 이젠 전국 이곳저곳, 그리고 중앙정부까지 로컬 창업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과연 일부 전문가가 예측한 대로 '로컬 전성시대'가 온 것일까?


로컬의 현재와 미래를 점검하기 전에 먼저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로컬은 일상적으로 더 큰 공동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기준점이 글로벌이면, 국가를 포함한 글로벌보다 작은 모든 공동체가 로컬이 된다. 글로벌 관점에선 한국도 로컬이다.


기준점이 내셔널이면 국가보다 낮은 단위인 지역, 지방, 동네가 로컬이다. 로컬을 어떻게 정의하든 문화 경제 시대에 중요한 것은 로컬의 문화적 가치다. 지역이 독립적인 문화를 창출할 수 있어야 로컬로서의 의미가 있다. 로컬의 정의도 독립적인 문화를 창출하는 최소 생활권 단위로 정의하는 것이 맞다.


문화 창출이 왜 중요할까. 오래전부터 미래학자들은 기계가 인간이 대체하면 사람이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적 창조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화 가치 창출이 개인에게만 한정되는 기술일까? 국가와 국가, 동네와 동네, 로컬과 로컬이 경쟁하는 문화 경제 시대에는 로컬도 문화를 창출해야 생존할 수 있다. 문화 창출 능력 관점에서 볼 때 로컬이 강한 나라, 즉 로컬이 강한 지역이 많은 나라가 문화 경제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국가 모델이다.


그럼 한국에서 로컬이 강한 지역은 어디일까? 모든 지역이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특색과 개성을 갖고 있다. 모두 지역은 저마다의 로컬로 특별한 것이다. 하지만 산업 자원으로의 로컬은 다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도 지역마다 로컬 산업화 수준이 다르다. 지역 문화를 생활 문화를 넘어 산업 문화로 구현하는 지역이 로컬을 산업화한 지역이다. 로컬 산업 문화가 강한 지역은 지역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와 이들이 창업한 로컬 브랜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Local Brand Review 2023은 서울 마포구, 서대문구, 성동구, 경기 수원시, 부산 부산진구, 영도구, 전북 전주시, 경북 경주시, 제주도, 강원 강릉시, 충남 홍성군, 광주 남구, 대구 중구 등 한국에서 로컬 크리에이터 활동이 활발한 13개 지역을 선정해 그 지역의 로컬 역사와 현황을 소개한다.


이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항상 머릿속에 이 질문이 맴돌았다. 왜 이 지역일까? 돌이켜보면 4가지 자산이 로컬이 강한 지역의 공통점이다. 첫째가 중심지 문화다. 한국의 중심지는 한 곳 서울이지만,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의 행정과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하는 소중심지를 찾을 수 있다. 경기 수원, 전북 전주, 경북 경주, 강원 강릉 등이 도청 소재지 또는 소지역 행정 중심지로서 오랫동안 지역의 문화 자원을 집결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능력을 키워왔다. 제주도와 충남 홍성군은 행정과 무관하게 각자의 영역에서 중심지로 기능한다. 제주가 한국 자연주의의 중심지라면 홍성은 한국 유기농과 협동조합 운동의 중심지다.


두 번째 요인이 청년 인구다. 로컬에서 감성을 찾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문화는 기본적으로 MZ세대 문화다. 현재 40대인 X세대가 2000년대 중반 골목상권 중심으로 로컬 문화를 개척했지만, 현재 로컬 현상을 견인하는 세대는 MZ세대다. 따라서 MZ세대를 배후 인구로 보유하지 않은 지역과 상권이 로컬 문화를 만드는 것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서울 마포구, 서대문구, 성동구가 로컬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그 지역의 1인 가구와 대학이 있다. 대학가가 유리한 이유는 대학 문화만이 아니다. 대학가 주변에 형성된 원룸, 1인 가구 지역이 대학촌의 로컬을 강하게 만든다. 서울 관악구, 은평구와 같이 대학촌을 보유하지 않아도 대학과 직장 지역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지역이 많은 1인 가구를 유치한다.   


세 번째 요인이 건축 환경이다. 로컬이 강한 지역과 동네는 거의 예외 없이 원도심 지역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건축물과 걷기 좋은 길로 연결된 저층 주거와 저층 상업 지역이다. 중로(4차선 이하)와 배후의 골목길로 연결된 격자형 지역이 걷기 좋고 장사하기 좋은 가로를 보유하고, 상권 확산을 촉진하는 지역이다. 서울 마포구, 성동구의 상권이 현재의 규모로 확장한 데에는 이런 건축 환경이 크게 기여했다.


새로운 건물과 단지가 아닌 오래된 건물이 많은 지역이 또한 로컬 문화에 중요하다. 현재 전국의 골목상권은 한옥, 적산가옥, 1970년대 단독주택 등 '우수한' 건축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건축물이 만드는 문화 콘텐츠가 골목상권의 가장 큰 자산이다. 오래된 건축물은 청년, 중산층, 예술가을 유인한다. 아무리 저렴하게 건물을 신축해도 신축 건물은 비용 측면에서 이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다양한 연령대의 건축물이 로컬에 필요한 콘텐츠를 만드는 주민을 유치한다.


마지막 요인이 로컬 크리에이터다. 아무리 로컬 환경이 우수해도 이를 활용해 로컬 브랜드를 창업한 사람이 없으면 로컬 문화로 연결되지 않는다. 각 지역의 로컬 크리에이터는 현지에서 태어나 자란 찐 로컬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이주민도 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2010년대 초반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동네에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등장했다. LBR 2023에서 소개된 지역 역시 2010년대 1세대 로컬 크리에이터가 개척한 로컬 상권이다.


결국 로컬을 강하는 만드는 것은 사람, 즉 로컬 크리에이터다. 물리적 환경이 열악해도 그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진입하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로컬 크리에이터 산업과 상권을 육성하기에 앞서 충분한 규모의 로컬 크리에이터를 먼저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을 위해 별도의 학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로컬에서 미래를 개척하는 청년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면 충분하다. 요즘 MZ세대는 개인과 커뮤니티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한 곳에 모아주면 알아서 서로 돕고 교육한다. 정부가 학계와 정부의 연구와 교육 역량을 집중해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과 훈련 교재를 개발해 보급하면, 각 지역의 청년 커뮤니티가 자체적으로 로컬에 필요한 로컬 크리에이터를 공급할 것이다.


로컬이 지속 가능할까? 로컬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은 사회적 지속 가능성과 경제적 지속 가능성이다. 먼저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보자. 로컬의 사회적 지속 가능성은 지역사회 연대에 달렸다. 지역 사회를 설득하려면 먼저 로컬 크리에이터가 연결하는 지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역 사회가 그 비전에 동의해야 로컬 크리에이터를 응원할 것이다. 지역사회에 로컬 크리에이터가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지역사회의 자생적 창조 역량이다. 다른 지역이 복제할 수 없는 콘텐츠 생산이 지역경제의 시대적 사명이라면, 지역 자원을 연결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로컬 크리에이터 외에는 대안이 없음을 설명해야 한다.


경제적 지속가능성도 중요하다. 로컬 크리에이터 커뮤니티와 산업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개인의 지속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로컬 크리에이터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로컬 스쿨, 로컬 생산단지(로컬 제조 기반일 경우), 로컬 콘텐츠 타운(로컬 콘텐츠를 한 곳에 모은 앵커 상업 시설), 로컬 브랜드 상권(로컬 브랜드 중삼의 상권)으로 구성된 로컬 브랜드 생태계, 이것이 로컬이 강한 지역과 동네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다.


로컬의 사회적 지속 가능성, 경제적 지속 가능성이 약속하는 미래는 한마디로 창조도시다. 한국 지역이 많은 용어로 포장하지만 모든 지자체가 꿈꾸는 도시는 창조도시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역에 필요한 인재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도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컬 크리에이터 실험의 성공 조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