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본질은 문화 창출 능력이다. 창조경제 시대에 대응해 개인, 동네, 도시, 지역, 국가 모두 저마다의 다움을 구현하려고 노력한다. 개인과 집단의 생존과 경쟁력이 문화 창출 능력에 달렸기 때문이다. 남이 복제하지 못하는 콘텐츠를 찾다 보면 필연적으로 나다움, 동네 다움, 도시 다움, 지역 다움, 나라 다움 문제에 맞닥뜨린다.
로컬은 동네, 도시, 지역 사이의 일정 규모로 독립적인 문화를 창출하는 생활권이다. 로컬이 창출하는 문화는 다양하며 생활문화, 비즈니스 문화, 도시문화 등 크게 세 개 문화로 나눌 수 있다.
생활문화로서의 로컬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자신이 사는 지역과 동네에 장소성에 기반한 정체성과 의미를 부여한다.
비즈니스 문화로서의 로컬은 지역 경제의 실핏줄이다. 주민에게 기본 서비스와 여행자에게 다른 지역이 복제할 수 없는 경험과 콘텐츠를 로컬 비즈니스가 없으면 지역과 동네 공동체는 생존하기 어렵다.
로컬의 세 번째 기능이 도시 문화다. 사람들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직주 근접, 직주락 근접으로 이동하면서, 로컬은 이제 놀이, 일, 생활을 근거리에서 해결하는 직주락 센터로 진화하고 있다. 로컬 간 경쟁이 도시 경쟁과 유사한 양상을 띤다. 누가 매력적인 로컬 문화로 창조 인재를 더 유치하는지에 따라 로컬 경쟁력이 결정된다.
로컬의 생활, 비즈니스, 도시 문화 기능을 연결하는 것이 로컬 브랜드 생태계다. 로컬이 문화, 비즈니스, 도시 자원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로컬 브랜드를 배출하지 않으면, 즉 로컬이 로컬 브랜드 생태계로 발전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현재로선 로컬이 배출한 가장 높은 수준의 로컬 브랜드 생태계는 강릉의 커피 브랜드 생태계다. 2000년대 초반 커피 크리에이터가 강릉 시장에 진입한 후 테라로사, 보헤미안박이추커피, 커피커퍼, 서울우유 강릉커피 등 전국적으로 유명한 커피 브랜드를 배출했다. 커피 브랜드가 가시적인 성과라면, 이를 잉태한 생태계가 강릉 커피 산업의 비밀이다.
강릉 커피 생태계는 로컬 브랜드 상권, 로컬 콘텐츠 타운, 로컬 생산 단지 분야에서 강세를 보인다. 다른 지역 특산물과 달리 강릉 커피 산업은 커피 콘텐츠를 도시의 거리에서 도시 문화로 승화시켰다. 커피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쇼우케이스(Showcase)하고 소비자로 하여금 체험하게 하는 공간이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생태계 차원에서 더 중요한 점은 콘텐츠가 앵커 상업시설(로컬 콘텐츠 타운), 앵커 생산시설(로컬 생산 단지), 앵커 상권(로컬 브랜드 상권)에 집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원하는 다른 지역은 무엇을 해야 하나? 국내외 성공 사례는 로컬 브랜드 상권 조성, 특히 로컬 브랜딩과 로컬 스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로컬 브랜드 상권은 일종의 문화지구이기 때문에 정부 계획에 의해 조성하기 어렵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후보 지역에 로컬 스쿨을 운영해 지속적으로 로컬 크리에이터를 공급하는 것이다. 동시에 기존 상인을 위한 로컬 기술 훈련 프로그램도 운영해야 한다.
상권 단위로 로컬 브랜드를 육성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로컬 브랜드 양성과 더불어 상권 활성화를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같은 하드웨어 중심의 상권 활성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권 마케팅과 브랜딩 중심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혁신이 필요하다. 하나의 방법이 상권 매거진과 SNS 운영이다. 청년이 청년 감각으로 상권과 가게를 매거진과 SNS를 통해 홍보하는 사업이다.
매거진과 SNS를 통한 상권 활성화를 추진하는 상인회와 지방 정부는 마포구의 사이골목 프로젝트를 참고할 수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소상공인-사회적경제 협업의 일환으로 상권 홍보와 마케팅을 통한 상권과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이골목 프로젝트는 핫플레이스뿐 아니라 일반 골목 상권도 지원한다. 우리가 사는 동네 안에는 여러 유형의 상권이 있습니다. <Local Brand Review>가 주목하는 크리에이터/콘텐츠 상권도 있지만 전통시장, 아파트 단지 상권, 대로변 상권, 생활밀착형 상권도 있다. 일차적으로 크리에이터 상권이 문화지구로 전진했지만, 다른 상권도 콘텐츠를 강화해 문화지구형 상권으로 전환해야 한다.
로컬 브랜딩은 사이골목 프로젝트와 같이 상권과 지역 콘텐츠를 매거진 형태로 발굴하고 홍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브랜드 워딩도 임의적으로 부과하지 말고, 동네, 지하철역, 골목길 지명을 활용하면서 콘텐츠가 쌓여 차별화가 가능하면 브랜드 카피와 디자인으로 가야 한다. 지명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으니 2단계로 가지 않아도 된다.
사이골목 소개문이다:
“사이골목은 청년 로컬 에디터가 골목을 찾아다니며 마포지역의 골목 스토리를 아카이빙하고 소상공인 홍보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지역 밀착형 월간지 <사이골목> 발행을 시작으로, 홍보물 제작과 SNS 교육 등 골목상권 및 소상공인 맞춤형 홍보/마케팅을 통해 골목경제 활성화를 지원합니다.”
로컬 브랜드 상권 지원에서 정부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보행 환경, 건축 환경, 문화시설이다. 수준 높은 상가가 들어갈 수 있는 건축물을 보호하고 지원하고 , 상권 보행 환경을 중로(4차선 이하 도로)와 골목길로 연결된 격자형 도로망 중심으로 재편하며, 유동인구를 창출하고 보행 흐름을 연결하는 문화시설을 요소요소에 배치하면 창의적인 상인이 알아서 들어가 상권을 개척한다.
로컬 스쿨도 새로운 학교보다는 기존 창업 시설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 정부 기관 중에서는 청년 창업가를 지원하는 청년센터가 로컬 스쿨 네트워크의 간사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훈련 내용이다. 로컬 콘텐츠 발굴, 공간 기획, 커뮤니티 디자인, 비즈니스 모델, 장소 기반 창업 훈련, 현장 실습과 훈련 외에 로컬 창업이 다른 기술 창업이나 소상공인 창업과 다른 점을 명확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 로컬에 일차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는 로컬 비즈니스는 다른 영역과 확연히 다른 창업 아이템, 비즈니스 모델, 현금 흐름을 요구한다.
<Local Brand Review 2023>이 소개한 로컬이 강한 도시와 동네는 로컬 브랜드 생태계로 발전할 잠재력이 높은 지역이다. 아무쪼록 로컬 크리에이터 중심으로 정부, 대기업, 로컬 브랜드, 주민, 그리고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지역을 살리고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 더 많은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