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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Nov 22. 2022

균형발전에 대한 보수의 대안

지역발전에 대해 한국의 보수정당은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가? 윤석열 정부는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를 양 축으로 ‘지방시대’을 건설한다고 약속한다. 그렇다면 과거 지역발전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진다. 보수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지방시대론이 한국에서 지역발전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 균형발전론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여부다.

 

균형발전의 역사

균형발전 어젠다를 제시한 노무현 정부의 지역발전 철학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의 지역 비전은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이었다. 참여정부가 사용했던 귀에 익은 슬로건이다.

 

정책 수단에는 차이가 감지된다. 참여정부의 우선순위가 공공기관 이전, 전략산업 육성, 지역혁신체계 육성 등 자립 역량 강화였다면, 문재인 정부는 중앙정부 권한을 지역 정부에 대폭 이관하는 자치분권을 강조했다.

 

그중 핵심은 지방 재정 확충이다. 현재 8대 2인 국세·지방세 비율을 점진적으로 6대 4로 조정하는 것이 목표다. 김부겸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은 “현재 여건에서 7대 3으로 만드는데 약 20조 원, 6대 4로 만드는데 50조 원의 추가 재원이 소요된다”라고 설명했다.

 

중앙 사무의 지방 이관, 17개 시도지사가 주축이 되는 ‘제2국무회의’, 지방재정 확대 등 문재인 정부가 추구한 자치분권 개혁은 법 개정만으로 실현할 수 있는 단순 사안이 아니었다. 자치분권 개헌안을 준비하고 이에 대한 국민투표를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한 이유다.

 

균형발전의 명분은 충분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적한 대로 "현재의 중앙집권적 시스템은 국민을 방관자로 만든다." 지역발전에서도 국민은 주체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 중앙정부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고용창출과 산업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에 비수도권 지역은 수도권의 결정을 따르는 소극적 자세를 취한다.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성장 동력 창출에 대한 의지를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주체의 혁신이 원동력인 창조경제에서 지역 불균형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과제다. 최대한 많은 시민이 지역 경제의 생산성 향상과 고용창출 과정에 참여해야 진정한 의미의 지식기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균형발전의 한계

문제는 방법이다. 균형발전의 명분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실제 정책 선택을 논의하는 각론으로 가면 우선순위를 놓고 충돌한다. 지역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균형발전 vs 독립발전이다.


지역발전 모델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정리하는 방법이 대안을 이념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국가주의 보수, 자유주의 보수, 국가주의 진보, 자유주의 진보 이렇게 4개의 정파가 경쟁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국가주의 보수가 선호하는 지역발전 모델은 지역 구분하지 않고 전국 단위 효율성을 추구하는 전국발전이다. 자유주의 보수가 지역의 독립적 산업 생태계에 기반한 지역발전, 즉 독립발전을 선호한다. 균형발전을 지역발전을 국가 구도에서 조정하려는 국가주의 진보의 정책이다. 자유주의 진보는 이와 달리 지역 공동체 중심의 독립발전을 선호한다.


 

보수 진영에 국가주의 보수가 다수다 보니, 지금까지 보수는 국가주의 진보의 균형발전 어젠다를 마지못해 지지한 행태를 보였다. 속내인 전국발전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는 지역의 반발이 두려운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 제안한 지역발전 모델 중 가장 독립발전에 가까운 대안은 강력한 자치 분권 하에 자율적인 지역발전을 추진하는 이회창 후보의 2008년 '강소국 연방제 개헌'이다.


균형발전과 독립발전은 장기적으로 상호 보완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진행된 지방시대 논의를 보면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정책에는 균형발전과 독립발전 요소가 섞여 있다.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를 통한 기업과 투자 유치가 균형발전 정책이라면, 지역 맞춤형 창업·혁신 생태계 조성, 지역의 창조 능력 강화는 독립발전 정책이다.

 

규제 환경 개선을 통한 기업 유치를 균형발전 정책으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과거 균형발전 정책이 물리적으로 공공기관을 이전했다면, 윤석열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지역의 정책 디자인과 기업의 자율적 결정에 의존한다. 수도권 기업의 이전을 유도한다는 점에서는 수도권 자원의 재분배지만,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독립발전 정책의 하나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균형발전 모델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도 곧 균형발전과 독립발전 중 어디에 방점을 둘 지를 선택해야 한다. 자치분권으로 더 큰 권한을 얻은 지역 정부로 하여금 수도권 자원을 끌어오는 균형발전을, 아니면 자생적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지역발전을 추진하도록 유도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균형발전이 필연적으로 수도권 규제와 자원 분배 정책을 동반하는 반면, 독립발전은 재분배와 규제 특혜보다는 지역 정부의 권한과 책임의 조정, 지역의 자생적 혁신과 창조 역량 강화 등 독립적 성장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인센티브 디자인에 역점을 둔다.

 

한국 정당 구조에서 진보정당이 균형발전을 선택한다면 그 대안을 원하는 보수정당의 선택은 독립발전이 돼야 한다.

 

성장 자원을 공유할 여력이 없는 수도권

그 이유는 첫째, 과거와 달리 수도권은 다른 지역에 성장 자원을 분배할 여력이 없다는 데 있다. 주력 산업의 불경기로 수도권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올바른 선택은 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한 '지역 주도 성장' 전략이다. 한국과 달리 다른 선진국들은 지역 주도 성장에 의존한다. 모두가 선망하는 실리콘밸리도 캘리포니아 북부가 배출한 지역 산업이다.

 

한국 지역 주도 성장이 유독 부진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중앙 중심 성장의 대안으로 추진할 만큼 지역발전에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2010년까지는 국가 주도에 의한 성장으로 충분했다.

 

독립발전을 선택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창조경제 시대가 혁신과 창조 생태계 중심의 지역 산업 구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국가 주도 성장 모델이 일정 수준 작동한다고 해도, 장기적 측면에서 지역이 주도하는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지역 주도 성장의 원동력은 지역 기반 기업생태계다. 현재 우리나라는 관리 경영과 R&D는 수도권에서, 생산은 비수도권에서 수행하는 국가 산업 체제를 운영한다. 대규모 설비 투자를 위해 특정 지역에 공단을 조성하고, 기획, 연구개발, 제조, 서비스 등 산업의 핵심 기능을 지리적으로 분산시킨 이 모델은 혁신과 창업을 통한 창조경제 실현을 저해한다. 각 지역에 다양한 분야의 핵심 인재들이 집적되어 혁신이 일어나는 생태계가 미래 지향적인 지역 산업 체제다.  

 

혁신 생태계는 메가 시티 규모의 도시를 요구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북캘리포니아 사우스베이(South Bay) 지역의 인구는 350만 명으로 부산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창조도시의 소형화는 더 가속될 전망이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최근 기사에서 미국과 영국의 대도시를 떠나 '작은 도시'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약 50-100만 규모의 도시가 인기라고 한다.

 

기술 중심의 지역 산업, 대학, 연구소를 연결하는 R&D 투자 시스템이 혁신 시스템이라면, 새롭게 부상하는 콘텐츠 중심의 창조산업, 문화산업, 크리에이터 산업, 도시산업을 연결하는 콘텐츠 투자 시스템이 창조 시스템이다. 현재 한국의 창조 시스템은 홍대, 이태원, 성수동 등 기초단체보다 작은 생활권 단위에서 형성된다.  

 

흥미로운 점은 도시 크기와 혁신과 창조 능력이다. 도시가 너무 크면 혁신과 창조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에서는 차분히 사고할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인구와 산업이 밀집된 수도권이 혁신을 일으키고, 개성과 창의력 있는 인재를 충분히 배출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재의 집중을 방해하는 사람과 행사가 너무 많다.

 

자생적 산업 생태계로 성장하는 지역경제

창조 기업과 산업을 창출하는 혁신과 창조 생태계는 기본적으로 지역 단위 경제 시스템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혁신 생태계 유지를 위한 도시 규모는 더욱 감소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경험을 볼 때 이제 인구 50-100만 규모의 '작은 도시'도 충분히 혁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창조 생태계는 그보다 작은 생활권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성장 잠재력의 한계를 드러낸 국가 경제를 '작은 도시' 단위의 지역 혁신 생태계로 분산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길이다. 한 지역의 막대한 경제적 우위를 가정하고 규제와 재분배를 통해 지역 간 균형을 추구하는 '균형발전' 정책은 지역 주도의 자생적 산업 생태계 구축을 방해할 수 있다.

 

모든 지역이 고유의 특색과 장점을 살린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로 경쟁하고 상생하는 '독립발전'이 한국 사회, 아니면 적어도 균형발전의 대안을 찾는 보수정당이 선택해야 하는 지역발전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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