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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Dec 12. 2022

자립발전론

지역발전은 보수 정당이 약한 분야다. 1970년대 이후 모든 정부가 이념과 관계없이 지역발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2000년대 이후 지역발전 담론을 주도한 진영은 진보다. 진보 정당이 일관되게 중앙 정부와 중앙 산업의 자원을 재분배하는 균형발전을 추진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균형발전의 상징적 사업이 됐다.  


진보 내에서 전략적 차이는 존재한다. 참여정부가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건설 등 중앙 자원을 활용한 지역 역량 강화에 우선순위를 뒀다면, 문재인 정부는 중앙정부 권한을 지역 정부에 대폭 이관하는 자치분권을 강조했다. 그중 핵심은 지방 재정 확충이다. 현재 8대 2인 국세·지방세 비율을 점진적으로 6대 4로 조정하는 것이 목표였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현재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가? 보수 정당이 진보 진영의 균형발전론을 계승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균형발전을 추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국가 구도에서 자원을 분배하는 재분배 정책으로 귀결된다. 보수라면 재분배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지역발전을 지원해야 한다. 균형발전은 또한 지역 다양성을 저해한다. 획일적 기준으로 지역에 부족한 것과 필요한 것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경제 효율성을 쫓아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전국 단위로 국가 산업을 배분하고 관리하는 발전국가 시대의 '전국발전' 모델도 대안이 아니다. 중앙화가 아닌 탈중앙화가 시대정신이다.


지역의 자생력을 제고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가 중앙 자원의 재분배고 다른 하나가 독립적인 지역 산업 생태계의 구축이다.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재분배와 생태계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교과서적인 답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지가 정당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진보가 균형발전에서 정체성을 찾는다면, 보수 정체성에 맞는 지역발전 방식은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한 자립발전이다. 자립선택한 지역은 스스로의 힘으로 중앙과 독립적인 산업을 개척한다.


자립발전의 정당성은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한국 발전의 원동력 자체가 독립정신이었다. 1960년대 한국은 수출 주도 성장이라는 독립적인 발전 전략을 추진했다. 어떻게 수출 주도 성장을 실현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지적 자신감이 있었다. 이런 지적 독립정신은 1962년 수립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그대로 담겨 있다. 한국 경제 설계자들은 1차 5개년 계획의 목표를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기반 구축으로 설정했다.


한국의 발전모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당시 한국 정부가 유치한 외부 자원의 성격이다. 한국 정부가 원한 것은 투자가 아닌 차관이었다. 차관이 외국인 투자보다 경영 자율성을 유지하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는 국가 우선순위 중심의 산업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에게 장기 성장 기반이 중요하다면, 외국인 투자 기업에게는 단기 투자 회수가 중요하다.


외국인 투자 기업의 본국 중심 주의도 고려했다.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지만, 외국 기업이 핵심 기술과 인재를 타국에 이전할 가능성은 낮다. 설사 외국인 인재가 한국에 와도 한국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1960년대 한국 사회는 자체적으로 경제 발전 설루션을 찾았고, 이의 타당성을 외국 정부와 원조 기관에 설득해 필요한 외부 자원과 이를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비록 자원 확보 수단은 외부 자원과 시장에 의존했지만 해법 창출과 추진 체계는 독자적이었다.


보수 정당의 지역발전 정책도 독립적인 산업 개발과 추진 능력 강화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 지역의 자생적 성장 기반은 지역 대학, 연구기관, 대기업을 연결하는 R&D 지원 시스템과 지역 대학, 문화와 관광 지원 기관, 로컬과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연결하는 콘텐츠 지원 시스템의 구축에 달렸다. 전자가 지역의 혁신 생태계라면, 후자는 창조 생태계다.


지역의 자생적 창조 능력 강화는 문화창조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지역발전 과제다. 전반적으로 지역 상황이 암울하지만, 지역에서 기회를 찾는 청년과 지역 자원을 연결해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등장은 희망적인 신호다. 지역사회 중심으로 로컬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고 그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크리에이터 생태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를 양축으로 ‘지방시대’을 열겠다고 약속한다. 언뜻 보면 균형발전과 자립발전 요소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는 중앙의 기업과 투자를 유치하는 균형발전 정책, 지역 맞춤형 창업·혁신 생태계 조성과 지역의 창조 능력 강화는 자립발전 정책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시대론의 기조는 '지역 주도 성장’이다. 말 그대로 지역이 성장을 주도할 환경을 만들 테니 실제로 주도해달라는 주문이다.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도 자립발전 환경을 구축하는 정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와 같이 물리적으로 중앙 자원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정책 디자인으로 기업을 유치하는 방식이다.


1960년대 이후 국가 자원을 동원해 지원한 중앙 산업으로 성장한 한국이 중앙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성장 축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중앙 정치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각자 다른 대안으로 경쟁하고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 지방시대의 의미도 보수가 자립발전 중심의 새로운 지역발전 대안을 제시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지역도 변해야 한다. 지역 주도 성장을 실현하려면 지역이 중앙보다 먼저 중앙 중심에서 지역 중심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의 지역 중심 사고는 자립발전의 선택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지역을 돕는다.


/일러스트 - 박상훈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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