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목길 경제학자 Jun 17. 2023

지방시대 지역주도성장의 세 가지 방법론

한국은 1960년대 이후 중앙정부와 대기업이 함께 수출진흥을 통한 경제성장 모델을 추진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경제개혁을 통해 시장 중심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추진함에 따라 대기업 재정 건전성 신장 등 소정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수출산업과 대기업 중심의 발전모델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이 스타트업(창업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의 창조경제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한국 정치경제 시스템의 대기업과 중앙정부 편중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중앙정부와 대기업 주도의 경제성장 모델은 더 이상 성장 동력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2008년 이후의 저성장은 한국발전 모델의 구조적 한계에 그 원인이 있으며 한국은 기존 모델을 벗어나 새로운 모델을 찾기 전까지는 지속성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성장론은 새로운 논의가 아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와 연구기관이 한국경제가 성장 주체를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과 창업기업으로, 제조업과 수출 산업에서 서비스와 내수 산업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필자는 한국경제의 재균형(rebalancing) 전략 중의 하나로 지역 주도 성장 모델을 제안한다. 경제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인재가 모이고 경쟁하는 도시를 경제성장의 주체로 연구해 왔다. 실제로 세계경제의 지리를 보면 국가보다는 국경을 초월한 지역군이 생산과 소비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영컨설팅기업 맥켄지는 2011년 보고서에서 세계 600대 도시가 세계 성장의 60%를 창출할 정도로 지역 경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앙정치의 난맥상을 볼 때 지속성장을 위한 중앙 정부의 지도력은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지역 정부가 중앙 정부의 대안으로 중요시되고 있으며, 실제로 세계 전역에서 지역 정부가 중앙 정부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지역 성장 모델은 다수의 독립적인 산업기반을 가진 지역경제가 상호 경쟁적으로 국가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모델이다. 선진국은 모두 이처럼 지역 경제가 성장을 주도한다고 볼 수 있으며, 실제로 한국과 같이 국가차원의 산업정책을 추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윤석열 정부도 지역이 성장을 주도하는 지방시대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지방시대의 지역 주도 성장은 창업 생태계, 라이프스타일 도시, 대학 경제 등 세 개의 축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방시대 성장 모델의 모색

한국적 맥락에서 지역 주도 성장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시 경제학은 두 가지 지역성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 수도권의 성장 잠재력이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 비수도권의 중형 도시가 급속한 성장을 통해 국가 전체의 성장을 주도하는 것이다. 중형 도시 성장론은 세계적인 추세다. 멕켄지 세계연구소는 기존의 초대형 도시(mega cities)가 아니라 중형 도시(middleweights)가 향후 세계경제의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도시화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진행됐고, 인구가 감소하는 동시에 경제 발전이 성숙기에 진입한 한국에서 중형 도시가 인구와 소득 증가를 통해 초대형 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두 번째 지역성장 시나리오가 기존 도시의 산업 구조를 다원화하는 것이다. 현재 특정 산업 중심으로 성장해 온 비수도권 도시가 기존 산업의 다변화와 신산업의 창출을 통해 다양한 산업 구조를 가진 도시로 전환하는 것이다. 제인 제이콥스 등의 도시경제학자는 다양하고 경쟁적인 산업 도시가 경제 주체 간의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를 극대화하므로 고속 성장에 가장 유리한 도시라고 주장한다. 비수도권 도시가 독립적인 산업 기반을 갖추게 되면 국가 전체의 산업 구조도 더욱 경쟁적이고 다양화될 것이며, 이 또한 성장 진작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비수도권 도시는 서비스업, 내수, 중소기업 등 새로운 성장 분야에서 다양화 기회를 찾을 것이다. 이들 분야는 보편적으로 지역경제 기반으로 시작하므로 지역경제가 우위를 갖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지역 산업의 다원화는 선진국과 한국인의 가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젊은 세대는 개성, 자아실현, 환경, 공유, 삶의 질 등 탈물질적 가치를 선호한다. 다양성과 생활 현장을 중요시하는 탈물질적 가치는 중앙 정부가 주도할 수 있는 성격의 문화가 아니다. 지역 정부가 지역 문화 정책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공급함으로써 다양성이 충만한 탈물질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선진국 경험은 우리에게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주요 지역에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자생적인 산업 생태계의 힘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미국처럼 한국도 지역 생태계가 혁신을 주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둘째, 지역 고유의 장점을 활용한 기업과 산업을 키우는 라이프스타일 도시를 육성하는 것이다. 글로벌기업을 키운 세계의 작은 도시는 공통적으로 자신만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이를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다. 셋째, 대학을 지역 경제의 중심에 세우는 것이다. 명문대학 보유 여부가 산업도시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 만큼 지역 경제에서 대학의 역할은 중요하다


지역 주도 성장을 추진한다는 것은 산업 정책의 패러다임을 국가 산업 정책에서 지역 산업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력산업의 고도화와 경쟁력 강화 문제는 기업에게 맡기고 정부는 창조경제, 라이프스타일경제, 대학경제 등 지역경제의 자생적, 창조적 기반을 구축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

자생적인 지역 경제와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 패러다임을 국가 산업 정책에서 지역 산업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역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산업 생태계에 필요한 기술, 자본, 인재를 지역경제에 모으면 가능하다.


산업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 인재다. 아쉽게도 한국은 서울과 수도권에 인재가 집중되어 있다. 지역의 인재유출은 대학진학 단계에서 시작된다. 지역인재들이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진학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타 지역으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은 한번 지역을 떠나면 쉽게 돌아오지 않는 지역 인재들이다. 현재 지자체가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해서 이러한 지역 인재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지만 이는 지역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 재고해야 할 관행이다. 오히려 지역에 잔류하거나 지역으로 새로 유입되는 인재를 지원해야 한다.


인재 활용과 관련해서 과연 한국지역이 한국 인재로만 경쟁력 있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2011년 실리콘밸리의 외국인 비중은 전체 인력의 47%, 이공계 인력의 64%였다. 2006-2012년 사이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의 약 44%를 이민자가 창업했다. 구글의 창업주 중 한 명인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대표적인 사례다. 러시아 이민 2세인 브린은 6살 때 가족과 미국으로 건너왔다. 학부 졸업 후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던 중,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공동으로 구글을 창업했다. ‘캡 링크드’의 CEO 에릭 잭슨은 "포춘 500대 기업 중 18%를 이민자가 창업했고, 이민자가 CEO인 미국 기업들의 연간 매출액은 7,700억 달러"로 "이민자의 모험 정신과 창업가 정신을 적극 활용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실리콘밸리 사례만 봐도 산업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내국인 인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지역도 외국인재 유치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더욱 어려운 문제는 기술, 자본, 인재의 상호 작용이다.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충족된다 하더라도 경제 성장을 주도할 기술과 기업이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정부 주도로 조성된 혁신생태계의 성공 사례를 거의 찾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기술, 자본, 인재의 시너지를 창출하는가? 많은 사람이 실리콘밸리의 고유한 문화를 꼽는다. 새로운 하이테크 문화를 만들려면 격식 없는 문화가 굉장히 중요하다. 새로운 벤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0명의 모르는 사람과 일을 해야 한다. 지역 문화가 모르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고 이들 간의 소통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지 않으면 벤처산업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격식 없는 문화 지역으로 캘리포니아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중요한 비즈니스 협상은 모두 팰로앨토 카페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이러한 캘리포니아의 격식 없는 문화는 문화 성향이 다른 엔지니어와 자본가가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해 준다.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저항문화 (Counter Culture)를 살펴봐야 한다. 저항문화의 주류는 히피문화이며 스티브 잡스를 포함한 많은 실리콘밸리 지도자들이 히피운동 출신이다. PC역사를 보면 저항문화의 영향은 명확해진다. 히피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당시 미국 컴퓨터 산업의 중심은 동부였다. IBM, DEC 등 동부의 메인 프레임 회사들이 컴퓨터 산업을 독점했다. 서부에서 개인 컴퓨터를 개발한 사람들의 꿈은 개인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개인을 메인 프레임으로부터, 즉 기득권을 대표하는 정부와 대기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하이테크 산업에서 시작된다.


박근혜 정부는 지역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2013-2015년 전국 18개 지역에 대기업과 연계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웠다. 대기업이 한 지역을 맡아 집중적으로 지역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사업 모델인데 한국의 지역 현실을 고려할 때 초기 단계에서 대기업의 지원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지역 기업과 산업이 지역 생태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의 지역경제가 창조경제혁신센터 중심으로 진정한 의미의 산업 생태계로 발전할 것이다.  


라이프스타일 도시

지역 주도 성장 전략에 모델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개념이 라이프스타일 도시다. 라이프스타일 도시는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지역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이 라이프스타일을 지역 산업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마케팅, 그리고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도시를 말한다.


라이프스타일 도시의 육성은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이 국가 과제로 지목한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에 부합하는 전략이다. 문화융성과 창조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색을 가진 고유의 문화가 융성해야 하며,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기업과 산업을 보유한 도시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이 꿈꾸는 문화융성, 창조경제 국가는 문화에 기반을 둔 창업으로 도전하고 경쟁하는 도시가 많은 나라이다. 도시문화와 지역경제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창조경제는 새로운 도시문화를 요구하고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도 한다. 경제 지리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도시의 부상을 설명하면서 창조도시는 창조산업을 만드는 인재가 선호하는 문화를 가진 도시라고 주장한다.


도시 문화는 역으로 창조경제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현재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많은 창조도시는 그 내재된 가치와 문화를 키워 발전하는 도시다. <작은 도시 큰 기업>이 소개한 바와 같이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키우는 라이프스타일 도시가 반드시 한 나라의 중심도시일 필요는 없다. 작아도 문화의 힘을 가진 도시라면 창업과 문화로 중심도시와 대도시와 경쟁할 수 있다. <작은 도시 큰 기업>이 소개한 세계적인 기업을 배출한 라이프스타일 도시는 시애틀, 포틀랜드, 오스틴, 알름훌트, 브베, 교토 등이다.


시애틀과 스타벅스 - 스타벅스의 창업자는 하워드 슐츠다. 1981년 뉴욕의  주방기기 수입 회사에서 일하던 슐츠는 시애틀의 작은 가게에서 들어온 대규모의 커피 기구 주문에 주목하게 되었다. 현재의 스타벅스로 성장한 그 작은 가게는 당시 원두를 로스팅한 핸드드립 커피를 파는 전통적인 커피 전문점에 불과했다.


슐츠는 그곳에서 커피의 미래를 예견했다. 그 당시 미국인들에게 스타벅스와 같은 고급 커피는 대중적이지 않았다. 스타벅스 마케팅 책임자로 입사한 슐츠는 밀라노 여행 중 경험한 에스프레소 카페 문화를 미국에도 정착시키고자 했다. 에스프레소 카페를 열고자 했던 슐츠의 제안은 창업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으며, 당시 스타벅스 주인들은 전통적인 커피 전문점을 고수하기를 원했다. 결국 슐츠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985년 ‘일 지오날레’를 창업하여 매장을 운영했고, 1987년 스타벅스 창업자들이 캘리포니아의 피츠커피를 인수하여 이사를 가게 되자 스타벅스를 인수하여  그의 경영 철학에 따라 리모델링했다.


이전부터 시애틀은 커피문화에 중요한 도시였다. 시애틀은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이곳은 비의 도시라고 할 만큼 연중 내내 비가 자주 내린다. 이러한 지역 기후를 바탕으로 시애틀에서는 따뜻한 차나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매우 발전했고, 커피 선호도가 높았다. 이러한 기후 덕분에 비와 커피는 시애틀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시애틀은 현재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중요한 하이테크 중심지다. 스타벅스는 소비재 기업이지만 마이크로 소프트나 아마존 등 세계적인 하이테크 기업들도 시애틀에 위치해 있다. 시애틀 주민들은 실리콘밸리 사람들보다 여유가 있다고 자부한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과 산업 문화가 상당히 경쟁적인 분위기 속의 자본주의 중심 사회라면, 시애틀은 상대적으로 여유와 여가를 즐기는 도시다. 여유와 여가를 즐긴다 하는 것은 카페를 선호하는 분위기와도 연결된다.


스타벅스는 이러한 시애틀의 커피와 카페 문화가 결합된 비즈니스 모델의 결과물이다. “다른 기업을 보니, 혁신하지 않으면 항상 추월당한다”라고 했던 슐츠의 주장을 반영하듯이 시애틀 경제에 많은 기여를 한 마이크로 소프트 역시 모바일 산업이 발달하면서 구글 같은 기업에게 역전을 당했다. 이러한 점에서 스타벅스 자체적으로도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시애틀의 이러한 기업 생태계는 스타벅스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애틀의 지역환경문화와 더불어 도시산업 문화, 기업 문화, 비즈니스 문화는 스타벅스의 창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이러한 문화는 스타벅스가 끊임없이 신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지만 시애틀 스타벅스에서는 음악, 제과, 음료수와 같은 상품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와인 바와 함께 운영되는 디너 레스토랑을 2년째 시행 중이다. 이는 스타벅스가 커피숍에서 시작하여 요식업으로 영역을 넓혀 이동하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포틀랜드와 나이키 – 포틀랜드의 많은 유명한 기업 중 나이키는 포틀랜드 문화를 가장 대표하는 기업이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가장 아웃도어 활동이 활발하고 산과 강이 많은 도시이며 미국 육상의 중심지다. 자전거와 조깅이 발달한 도시이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인구 비율이 8%로 미국에서 가장 높다. 한국 도시의 상권은 자동차와 전철 길 중심인 반면, 포틀랜드는 자전거 도로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될 정도로 자전거가 보편화되어 있다.


야외 활동이 활발한 포틀랜드에서 나이키와 같은 아웃도어 스포츠 용품 회사가 탄생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오레곤 대학 육상 코치로 일하던 빌 보어만은 좋은 신발을 만들기 위해 나이키를 창업했다. 창업자 보어만은 스포츠의 일상화를 주장하며 “몸이 있으면 모두 운동선수다”라는 말을 남겼다.


마이클 조던이 점프하는 사진의 나이키 프리의 로고는 매우 유명하다. 자유롭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포틀랜드의 소비자에게 나이키 프리는 매력적이며 적합한 상품이다. 자유와 새로움이라는 포틀랜드 자체의 문화가 반영된 지역 라이프스타일과 나이키의 제품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일치한다.


포틀랜드는 매우 진보적인 도시로, 인권, 환경, 자선사업을 강조하고 대중교통이 발달하여 자동차가 거의 진입할 수 없다. 시 정부는 정책적으로 독립 브랜드를 권장하고, 독립 상공인을 지원하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포틀랜드에 위치한 미국최대 규모의 서점이 내셔널 체인이 아닌 독립서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포틀랜드가 얼마나 진보적인 성향의 도시인지 알 수 있다.


대중교통,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진보적인 사고관을 가진 이 도시에서 자란 나이키 역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이다. 나이키의 창업 과정, 성장 과정, 기업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도시의 자유와 새로움, 라이프스타일, 사회적 책임과 같은 지역 문화를 알아야 한다.


오스틴과 홀푸드마켓 - 오스틴은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유명한 하이테크 중심지다. 오스틴의 도시 문화를 대표하는 기업은 단연 홀푸드마켓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유기농/자연식품 슈퍼마켓인 이 기업은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다. 오스틴의 도시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홀푸드 마켓과 관련해 많은 오스틴 사람들은 홀푸드 마켓이 없는 도시에는 살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초록마을, 올가, 한살림 등 자연식품 마트가 있지만 모두 소규모 점포이다. 한살림은 원주에서 시작한 유기농 식품점으로서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도 1980년대까지는 주로 협동조합이 자연식품을 판매했으며 그 시장을 슈퍼마켓 중심으로 산업화한 기업이 홀푸드 마켓이다. 창업자 존 멕케이는 협동조합의 경우 취지는 좋으나 좋은 자연식품을 많은 소비자에게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홀푸드마켓은 니만 마쿠스 백화점과 더불어 텍사스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기업 중 하나이다. 흔히 텍사스 음식이라 함은 스테이크, 바비큐, 멕시칸 음식 등 기름진 음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역 이미지를 고려해 볼 때, 오스틴에서 자연식품 슈퍼마켓이 탄생한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홀푸드마켓은 오스틴의 히피문화를 기반으로 시작했다. 히피는 식품의 기업화와 상업화를 반대하고 자연식품을 선호한다. 오스틴에서 히피족이 자연식품 운동을 시작했고, 홀푸드 마켓 창업자인 맥케이 역시 히피였다.


히피 문화로 유명한 오스틴에서 자연식품 슈퍼 마켓이 성장했다. 오스틴은 보수적인 텍사스에서 유일하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도시이며 젊은 층이 몰려드는 대학 도시이다. 뿐만 아니라 히피와 같은 진보 성향의 텍사스 사람들이 오스틴에서 모여서 살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문화가 주류 문화가 되었다. 오스틴 시 정부는 히피문화를 도시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홍보했다. “Keep Austin, Weird”은 오스틴 대표적 슬로건으로 weird라는 단어는 ‘엉뚱하고 독특하고 이상하다'라는 의미이다.


오스틴은 음악이 매우 발달한 도시로, 90년대 초반 인디밴드 축제로 시작한 SXCSW 축제는 현재 세계적인 미디어 산업의 축제가 되어 전 세계의 하이테크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공식 행사 후에 오스틴의 유명한 바나 공연장에서 오스틴 음악을 체험한다. 오스틴은 저항문화, 히피문화의 중심지였고, 그것을 수용하는 도시 문화, 음악이 결합되어 홀푸드 마켓이라는 세계적 기업을 배출했다.


알름훌트와 이케아 - 세계 최대의 가구 기업인 이케아 역시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스웨덴 남부의 작은 농업 지역 스몰란드에서 탄생한 이케아는 싸고 편리한 가구를 만드는 데 그 경쟁력이 있다.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스몰란드 농부를 위해 만들어진 실용적이고 편리한 가구는 이제 세계 중산층들이 열광하는 가구가 되었다. 인구밀도가 낮은 스몰란드 지역에서 시작한 가구 사업은 이후 카탈로그 세일, 자동차 쇼핑, 플랫팩 가구 등의 사업 모델을 개발했다.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만든 비즈니스 모델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것이다.


이케아는 검소, 근면, 실용주의를 기업 문화로 실천한다. 바람으로 인해 들판에 돌담을 쌓는 스몰란드의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여 이케아는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마다 화려한 기념비 대신 돌담을 쌓고 팻말을 올려놓는다. 공단과 같은 모습의 이케아 본사 건물은 검소하고 실용적인 기업 문화를 표방한다. 도시 지역 문화를 반영한 이케아의 정신이 전 세계적으로 이전되고 있는 단상이다.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이케아는 현재 세계 곳곳에 매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핵심 전략 지는 알름훌트이다. 이케아의 가장 중요한 경영 전략은 카탈로그 제작을 통해 전 매장에 똑같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카탈로그 제작이 알름훌트에서 진행되는 것 또한 알름훌트가 이케아에 있어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가난한 농업 지역, 척박한 기후, 근면 절약 정신, 실용주의는 지금의 이케아와 이케아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였다.


브베와 네슬레 - 브베는 인구 만 팔천 명의 스위스 로잔 인근 도시로, 네슬레 본사가 위치한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식품회사 중 하나인 네슬레는 독일에서 이민 온 약사였던 앙리 네슬레가 1865년 창업한 기업이다. 네슬레는 지역에서 생산된 곡물과 알프스 산맥에서 생산된 우유로 유아용 이유식을 만들었다. 청정 알프스 자락의 농업지역 브베에서 창업한 네슬레는 지역문화와 관련이 깊다. 네슬레가 건강하고 환경 친화적인 음식을 홍보하는 데 있어 청정한 브베의 이미지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기업 문화로 네슬레는 실용주의를 강조한다. 단순하고 검소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네슬레는 지역환경을 모델로 시작되었으며 더 나아가 스위스 국가 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앙리 네슬레가 은퇴한 후 네슬레는 세 번의 위기를 겪는다. 첫 번째 위기는 제네바기업의 네슬레 인수 시도를 브베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결국 결렬시킨 것이다. 두 번째 위기는 초콜릿 회사와의 합병으로 인해 형성된 다른 도시와의 경쟁에서 이긴 사례이다. 스위스 동부 함이라는 도시에 본사를 둔 초콜릿 회사 아메리칸 초콜릿 컴퍼니와 합병한 네슬레는 그 결과로 본사가 두 개로 분리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으나, 브베 지역 주민들의 지지로 실질적인 본사는 브베에 위치하게 되었다. 마지막 위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위스가 고립으로 인한 세계시장 관리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네슬레의 본사를 뉴욕으로 이전시킨 것이다. 전쟁 종료 후, 본사를 뉴욕에 유지하고자 했던 네슬레의 의도에 반발한 브베 지역 주민들의 요구로 네슬레 본사는  다시 브베로 이전하게 됐다. 지역 리더와 주민들의 노력을 통해브베는 지금까지도 네슬레의 본사가 위치한 지역으로 남을 수 있었다.


교토와 교세라 - 교토는 일본 문화의 중심지로 전통문화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교토는 세계적인 기업을 배출했으며, 특히 완제품 회사보다 부품 회사가 발달된 도시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10대 전자부품 기업 중 6개가 교토에 있으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교세라이다.


교세라는 교토 세라믹의 준말로, 교세의 ‘교’ 자는 프리미엄을 뜻한다. 교세라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여긴다는 것에서도 교토의 이러한 ‘교’ 문화가 지역 자부심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토 지역주민들은 지역문화에 대하여 높은 우월감과 경쟁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도쿄에 대한 적대심은 메이지 유신 때 수도가 도쿄로 이전하면서 생긴 박탈감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교토 지역 기업들은 타 지역 기업이나 신생 기업을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


교토 지역 기업은 도쿄 중심 기업과의 경쟁에서 자국 내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시장 진출을 겨냥한다. 이러한 배경 아래, 교토 지역 기업은 세계 진출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다. 실제 이나모리 회장도 가고시마 태생으로, 교토에서 시작한 세계적인 기업의 상당수는 타지인이 만든 회사이다. 또한 도쿄에서 대학을 졸업하여 창업을 위해 교토로 이동하는 사람의 수가 많은 것을 통해서도 교토 창업 시장의 개방성을 알 수 있다.


교토 대학 역시 과학 공학 분야는 도쿄 대학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대학이며 교토 대학을 중심으로 벤처문화,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문화 역사, 전통이 뛰어난 교토는 교 문화, 우월심, 도쿄에 대한 경쟁의식, 학술 문화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독특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세계적 기업을 배출하고 있다.


대학 경제

제조업 사양화를 먼저 경험한 미국의 산업도시가 한국의 지역중심 성장의 세 번째 모델을 제시한다. 최근까지 한국에서 지역경제의 성장을 주도한 도시는 산업도시다. 하지만 한국의 산업도시는 현재 기로에 서있다. 6대 주력산업의 동시 불황으로 울산, 포항, 창원 등 거의 모든 산업 도시가 실업, 인구 유출, 지역 상권 붕괴를 우려한다. 돌이켜보면 지역 불균형을 비판한 시절은 오히려 "행복한" 시절이었다.


무엇이 한국의 산업도시를 구할 수 있을까? 한국의 산업도시가 성공적으로 서비스경제 도시로 이행하지 못하면 한국에서 어떤 도시가 지역중심 성장을 주도할지 막연해진다. 최근 한 기사는 대학이 미국 산업도시의 운명을 갈랐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2013년 디트로이트의 파산을 지켜본 저자 저스틴 포프는 이런 질문을 한다. 디트로이트에 명문 사립대가 있었다면 도시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많이 알려진 대로 디트로이트에는 명문 사립대학이 없다. 미시간 주의 대표적인 대학인 미시간대학은 디트로이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앤아버에 위치해 있다.


피츠버그, 클리블랜드, 로체스터 등 제조업 구조조정의 여파를 이겨낸 산업도시에서는 공통적으로 명문 사립대학의 기여가 컸다고 한다. 이들 대학이 대학과 부속 병원을 통해 많은 사람을 고용할 뿐 아니라 등록금, 의료비, 연구비 수입을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산업도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또 하나의 도시가 북부 뉴욕주 도시 시라큐스다. 시라큐스의 도시 경관은 오렌지 색으로 가득하다. 도심 거리와 빌딩에서 50가지 그림자를 연상할 만큼 다양한 오렌지 색을 만날 수 있다. 시라큐스가 오렌지 도시로 변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표적인 지역 대학 시라큐스대학의 공식 색이 오렌지다. 시라큐스대학은 2005년부터 4천만 달러 가까운 예산을 도심 재생 사업에 투입했다. 그 결과 도심이 오렌지 색으로 채워진 것이다.


다른 성공한 산업도시와 마찬가지로 시라큐스도 지역대학을 지렛대로 교육과 의료 산업을 키우고, 새로운 산업을 유치했다. 한국에서도 지역대학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때가 됐다. 지역경제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대학의 지역경제 지원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대학-지역정부 협력의 성과를 도시 경관에서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정부 모두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방인재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지역 대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지역의 산업적 특성을 고려한 대학의 특성화와 구조조정, 지방대학 재정 지원 확대, 특정 비율 이상의 지역균형인재 선발, 지방 대학 기능의 확대, 인프라 구축을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에서 기회를 창출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지역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산업정책과 교육정책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면 지역중심 성장의 또 다른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시대에 걸맞은 지역 주도 성장

지방시대의 지역 주도 성장은 지역산업의 자생화와 다원화를 의미한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탈산업화 시대의 지역 중심 성장은 한국 경제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며, 지역 창업 생태계, 라이프스타일 도시, 대학 경제를 통해 그 잠재력을 실현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가 지역 창업 생태계다. 지역 경제가 하루빨리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창조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경제에서 과연 몇 개의 산업 생태계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최소한 5+2 광역경제권은 창업 생태계 구축을 통해 자율적으로 지역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생태계로 발전해야 한다.


두 번째가 라이프스타일 도시의 건설이다. 모든 지역 도시는 고유의 문화와 장점을 활용한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지역 라이프스타일 산업은 지역 특산품과 관광산업에서 시작해서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산업이다. 한국의 지역 도시도 양양, 제주가 보여준 것 같이 고유의 라이프스타일로 다른 도시가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지역 산업을 키울 수 있다.


세 번째 과제가 지역 대학 중심의 대학 경제의 활성화다. 현재 일정한 규모를 갖춘 (예, 인구 10만 이상) 한국의 도시는 적어도 한 개 이상의 대학을 보유하고 있다. 대학은 낙후 지역에서도 젊은 인재와 고급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 주체다. 이러한 대학을 지역 경제의 중심으로 활용해야만 소규모 도시는 자생적인 산업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참고문헌

Jacobs, Jane. The Economy of Cities. New York: Random House, 1969

Lucas, Robert. "On the Mechanics of Economic Growth."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1988

Florida, Richard. Cities and the Creative Class. Routledge, 2004.

Lerner, Josh. 2009. Boulevard of Broken Dreams: Why Public Efforts to Boost Entrepreneurship and Venture Capital Have Failed and What to Do about It.  Princeton, NY: Princeton University Press.

Markoff, John. What the Dormouse Said: What the Sixties Counterculture Shaped the Personal Computer Industry. Penguins Books, 2006.

McKinsey Global Institute. Beyond Korean Style: Shaping a New Growth Formula. April 2013.

McKinsey Global Institute. Urban World: Mapping the Economic Power of Cities, March 2011.

Ohmae, Keinich. The End of the Nation State: The Rise of Regional Economies. Free Press, 1996.

Pope, Justin. "Could a Private University Have Made a Difference in Detroit?" The Atlantic, July 23, 2013.

Wadhwa, Vivek, Saxenian, AnnaLee and Siciliano, Daniel. 2012. “Then and Now: America’s New Immigrant Entrepreneurs, Part VII.” Ewing Marion Kauffman Foundation Research Paper, October.


벤자민 바버. 뜨는 도시, 지는 국가. 21세기북스, 2014.

모종린. 작은 도시 큰 기업. 알에치케이, 2014.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 창조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