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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Dec 13. 2022

도시와 상생하는 배달서비스의 디자인

도시가 난장판일 때 우리는 한 단어로 이를 표현한다. 난개발. 이 단어 하나면 어지러운 상황, 그리고 대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도시 난개발만큼 혼란스러운 시장이 배달서비스 시장이다. 혁신과 위기 대응 명분으로 이커머스 산업을 급속하게 키운 탓에 이커머스를 견인하는 배달서비스 시장이 ‘난배달’ 상황에 빠졌다.


과연 배달서비스로 누가 행복한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이해당사자가 불만을 토로한다. 코로나 상황이 완화되면서 배달 서비스 수요가 줄어들자 그동안 누적된 내부 모순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플랫폼 가맹점은 아우성(플랫폼의 불공정 상행위), 도로는 난리(배달 교통사고), 아파트 주차장도 난리(불법 주차), 지구는 시름(포장재 쓰레기), 플랫폼 노동자 처우는 제자리(노동환경과 인권), 배달 대행사는 경영 위기(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비용은 증가), 소비자도 불만(가격 인상) 등등.


대부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배달 플랫폼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행복한 사람은 플랫폼 기업에 투자해 큰돈 벌고 엑시트 한 투자자가 아닐까.


난배달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오프라인 자영업자다. 혁신을 위해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사회적 분위기 하에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문제는 난배달 문제의 해결 방법이다. 도시 난개발은 20세기 초부터 도입된 도시계획으로 제어할 수 있다. 최근 도시계획 추세는 지구단위계획이다. 주민과 이해당사자들이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도시의 많은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산업화 중심의 정부 대응

정부의 해법은 산업화다. 전면적인 공공배달은 아직 대안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잊고 있지만 1992 택배서비스가 처음으로 도입되기 전에는 소포 배달은 공공의 영역이었다. 현재 일부 지자체가 온라인 음식 서비스 분야에 한정해 공공배달 서비스를 도입했으나 시장과 소비자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배달서비스 산업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2021년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하 생활물류법)의 제정이다. 정부는 이법을 통해 생활물류서비스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관리하고, 종사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국토부가 위 그림에서 설명하는 대로 생활물류법은 통제 불능 상황의 택배산업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실제로 택배 종사자 보호, 사업자 자격 강화 등 일부 문제를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택배산업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상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법 주차, 교통사고, 포장재 쓰레기, 오프라인 상업시설 보호 등 생활물류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생활권 단위 배달서비스

필자는 도시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도시적 관점에서 보면 난배달은 난개발의 한 유형이다. 도로, 주차, 쓰레기 처리, 물류센터 등 충분한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달서비스를 확대한 것이 난배달을 초래했다.


택배서비스가 난개발 이슈라면 해법도 도시적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지구단위계획과 같은 도시계획으로 택배산업을 도시와 상생하는 산업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우리 도시와 동네가 주차 공간, 도로 시설, 물류센터 등 배달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비했는지, 환경 정책과 시설이 배달서비스가 배출하는 포장재 쓰레기와 대기오염에 적절히 대응하는지, 보행, 자전거 등 친환경 배달 수단 중심의 동네 단위 배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배달서비스 디자인 문제를 논의하는데 적합한 단위는 생활권이다. 생활권마다 도시 환경과 인프라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 다른 배달서비스 설루션을 찾아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생활권에서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배달서비스 관련 도시 인프라를 논의할 수 있다.


지구단위계획에서 반드시 논의해야 할 문제가 택배서비스와 오프라인 소상공인의 균형이다. 현재와 같이 온라인 중심으로 도시 운영을 몰고 가면, 그 끝은 집과 물류센터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택배도시가 될 것이다. 택배도시에서는 소상공인이 만드는 도시 문화와 가로를 즐길 수 있는 동네는 사라진다. 더 늦기 전에 보행환경과 건축환경을 개선해 오프라인 소상공인에게 필요한 상업시설과 유동인구를 창출해야 한다.


키워드는 균형이다. 배달서비스의 편리함을 유지하면서, 오프라인 소상공인이 제공하는 고유성과 문화성을 살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이테크와 하이터치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은 도시, 산업, 기업이 미래를 주도할 것이라는 존 나이스비트의 전망이 배달서비스 디자인에도 적용된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현재 상상할 수 있는 하이테크-하이터치 배달서비스 시스템은 전국 단위와 생활권 단위 배달의 분리다. 생활권 단위 배달서비스 기업은 친환경 수단으로 배달 품목을 개인에게 직접 배달하지만, 전국 단위 배달 서비스 기업(온라인 플랫폼 기업)은 동네 물류센터에 배달하는 것이다. 개인 소비자는 물류센터에 도착한 물품을 직접 픽업하거나 동네 배달 서비스를 통해 집으로 배달받을 수 있다.


동네 물류센터를 누가 운영하는지는 더 논의해야 한다. 전국 단위 배달 서비스 기업이 직접 운영할 수 있으나, 공공이 배달서비스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담당할 수 있다. 특히, 동네로 들어오는 모든 배달 품목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는 것을 원한다면 공공이 동네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맞다. 현재 소포 시장에서 역할을 찾지 못하는 우체국이 물류센터를 관리하는 것도 대안이다.


동네 단위 유통 시스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당근마켓과 네이버가 주민과 주민, 상인과 주민, 상인과 상인을 연결하는 하이퍼로컬 서비스를 확대하고, 중기부도 동키마켓 사업을 통해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로컬 유통 플랫폼을 지원한다. 동네 배달서비스를 하이퍼로컬 서비스 인프라를 바탕으로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전국 단위와 동네 단위 배달의 분리가 실현 가능한지,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전국 단위 배달 플랫폼이 모든 물품을 개인에게 직접 배달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아직 정답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실험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현재의 난배달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다양한 작은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각 도시와 동네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설루션을 찾아 실험하다 보면, 적어도 현재보다는 우월한 배달서비스 시스템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도시와 동네가 지속 가능한 배달서비스 디자인을 놓고 경쟁하는 미래를 상상해보자. 생활권 단위 배달서비스 디자인이 탈중앙화와 분권이라는 시대정신에 맞는 해법이 아닐까?


Photo by Kai Pilg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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