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목길 경제학자 Dec 24. 2022

윌리엄 모리스의 후예들

윌리엄 모리스의 후예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흔히 말하죠. 맞습니다. 크리에이터 경제도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크리에이터 경제가 꿈꾸는 세상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크리에이터 경제의 본질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입니다. 크리에이터에게 질문합니다. 왜 이 직업을 선택했나요? 흔히 듣는 답입니다. 살고 싶은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아름답고 즐거운 삶을 살고 싶다, 느슨하게 연대하여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등등.


키워드가 많죠? 키워드를 3 단어로 줄여야 한다면 아름다움, 의미, 재미[의 창조와 연대], 더 줄여야 한다면 개인 창조와 느슨한 연대, 한 문구로 줄여야 한다면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온다프레스가 2021년 출판한 윌리엄 모리스 산문집의 제목입니다. 네, 크리에이터 경제의 역사적 기원은 매일의 일을 통해 일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예술적 삶을 꿈꾼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안 사회주의에서 찾아야 합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존 러스킨과 함께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문학, 평론, 공예, 디자인,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르네상스맨이지만, 한국에서는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세기 자본주의와 기계문명에 비판적인 모리스는 예술을 '인간이 노동하며 느끼는 즐거움의 표현'으로 정의하고 예술적 노동에서 인간성과 아름다운 삶을 복원하기를 원합니다. 실제로 예술적 노동을 실천하기 위해 세운 디자인 기업과 출판사가 현대 디자인 산업, 더 나아가 크리에이터 경제의 시작입니다.


그가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한 중세 수공예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노동이 1970년대 이후 물질적인 풍요가 가져온 탈물질주의와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 세계에서 가능해진 것이 크리에이터 경제의 한 문장 역사입니다.


몽상가로 조롱받았던 인간주의 사상가와 그를 추종한 많은 선지자 덕분에 이제 많은 사람이 조직사회의 대안으로 크리에이터,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의 일을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간사회주의 대 국가사회주의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윌리엄 모리스가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크리에이터 경제의 창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윌리엄 모리스가 사유재산을 폐지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모리스에게 사회주의는 수단입니다. 다양한 사회주의가 가능하다 생각하고 20세기 사회주의 국가 선택한 국가사회주의를 반대합니다. 1단계 혁명으로 계급혁명을 지지하지만 완성된 사회주의에서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가 주도하지 않는 인간 중심의 사회주의가 도래한다고 믿습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유토피안 사회주의입니다. “계급투쟁이 발전하지 못한 상황과 그들 자신이 처한 환경 때문에 (…) 그들은 사회 전체의 변화를 제창하면서 계급의 차이를 무시하려 든다. 아니, 지배계급을 오히려 두둔한다. (…) 그래서 모든 정치적 행동, 특히 혁명적 행동을 거부한다.”



모리스의 인본주의 유토피아

모리스는 유토피아 구상을 1890년 출판한 ‘에코토피아 뉴스’라는 유토피아 소설에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국가사회주의와 다른 점을 강조합니다. 모리스는 노동, 기술, 중앙화, 도시, 예술 등 5가지 이유에서 국가사회주의를 불편해합니다(Leopold, 2003).


노동: 국가사회주의와 가장 큰 차이는 일에 대한 철학의 차이입니다. 국가사회주의가 노동을 벗어나야 또는 줄여야 하는 고통으로 인식한다면, 모리스는 노동을 자아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여깁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일을 통해 행복과 의미를 찾는다고 주장합니다. 그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매력적인 일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사회주의인 거죠.


많이 알려졌지만 모리스는 중세의 수공예 문화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에게는 기계 생산, 노동 분업이 도입되기 전의 생산 방식, 즉 한 수공예자가 생산의 전 과정을 책임지면서 그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을 손수 제작하는 방식을 자아실현 노동의 전형입니다.


모리스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기 앞서 그가 생각한 바람직한 일과 노동이 현세대의 크리에이터가 원하는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같은 욕구를 표현합니다.


기술: 기계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국가사회주의자보다 회의적입니다. 국가사회주의자는 인간을 노동을 덜어주는 기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가사회주의 사회에서 대규모 산업시설과 공장을 유지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모리스는 기계를 결국 인간이 포기해야 하는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어떻게 기계를 발전시켜도 기계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고 믿습니다. 현대 정보사회 기술과 같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인간 노동을 보완하는 기술을 예상하지 못한 거죠.


‘에코토피아 뉴스’에서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에토코피아 주민들은 결국 기계를 포기하고 모두 농업과 수공예로 돌아갑니다. 수공예 생산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로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중앙화: 중앙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사유재산을 포기한 에코토피아에서는 경제 자원을 독점 기업이나 산업에 집중하는 산업 중앙화는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이 독립 노동자로서 생산 과정에 참여합니다.


모리스는 정치 중앙화도 반대합니다. 국가 통제 시스템보다는 주민 자치를 실천하는 작은 지역 공동체의 연합을 선호합니다. 그가 구상한 ‘공화(Commonwealth)’ 제도는 중앙집권과 대비되는 자치분권 체제입니다. 공산당 일당 독재는 공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가 원하는 사회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도시: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주민들은 대부분 전원에서 거주합니다. 사회혁명 후 주민들이 대거 대도시를 떠나 농촌의 목가적인 생활을 선택합니다. 런던은 대도시로 남아 있지만 19세기와 달리 전원도시로 변신합니다.  


에코토피아의 주민들은 어디에 거주하던 영국의 중세시대와 같이 소박하지만 자연과 공동체 친화적으로 삽니다. 도시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공업 지구입니다. 맨체스터와 같은 산업 도시도 통째로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루이스 멈포드가 이상적인 도시 모델로 제시한 전원도시가 마을과 도시에서 실현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술: 예술에 대한 생각도 다릅니다. 예술사에서 모리스가 기억되는 이유는 생활예술의 강조입니다. 모리스는 평민의 일상과 괴리된, 천재 예술가 한 두 명을 찬양하는 행태를 교양주의로 비판합니다. 진짜 의미 있는, 그리고 아름다운 예술은 일반 사람이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공동으로 만든 일상 예술품을 특히 높이 평가합니다.


아시다시피 현대의 크리에이터도 엘리트 예술가가 아닙니다. 크리에이터가 만드는 콘텐츠는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그리고 일상에서 소비되는 모리스가 말하는 생활예술 작품입니다.


정리합니다. 지금의 크리에이터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창조적인 일을 하고 느슨한 연대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중세 수공예자와 다른 것은 기술과 수요입니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콘텐츠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났고 크리에이터와 소비자, 크리에이터와 크리에이를 연결하는 플랫폼 기술이 발전해 크리에이터 경제가 많은 사람에게 가능해진 거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대 크리에이터가 윌리엄 모리스의 후예인 거 맞죠?




김기협, 인류의 꿈 이상향을 찾아서, 중앙일보 2022년 12월 16일

정소영 편,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2021, 온다프레스

David Leopold, An Introduction, In News from Nowehre, Oxford World's Classics, 2003

William Morris, News from Nowhere, Oxford World's Classics, 1891 [2003]



Photo by Birmingham Museums Trust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 문화력 문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