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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Jun 12. 2023

로컬 콘텐츠 타운이란

지역소멸 대응의 핵심은 농촌 재생이다. 지역 대도시는 거점 도시로서 현재 수준의 인구와 활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소도시도 원도심 자원을 잘 살리면 쇠락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농촌 마을이다. 오랫동안 대안으로 제시된 식가공, 재배지 관광 중심의 6차 산업은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식가공은 브랜드 파워가, 재배지는 경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 농촌 작물 성격상 대규모 투자해도 재배지를 서구 와인너리와 같은 장소로 만들기 어렵다.

 

1/ 대안은 농촌과 도시 콘텐츠를 읍면 소재지에 집적한 로컬 콘텐츠 타운의 육성이다. 새로운 개념의 농촌 마을을 조성해 농촌이 청년 크리에이터와 로컬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양성하도록 도와주는 사업이다.

 

크리에이터를 유치해야 하는 이유는 농촌 생활과 생산 인프라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크리에이터 접근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지를 선호하는 기업보다는 마을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가 농촌을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농촌에 필요한 크리에이터는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업 크리에이터에 한정되지 않는다. 캠핑, 명상, 아웃도어, 체험, 펜션 콘텐츠를 제작하는 농촌 생활 크리에이터, 독립서점, 커피, 베이커리, 게스트하우스를 창업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농촌과 농업 관련 온라인 콘텐츠를 공급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농촌, 농업 굿즈와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온라인 셀러가 진입해야 로컬 콘텐츠 타운이 가능하다.

 

로컬 콘텐츠 타운이 기존 농어촌 상권과 다름 점은 콘텐츠다. 보편적인 로컬 콘텐츠에 농촌과 농업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더한 융합 콘텐츠가 로컬 콘텐츠 타운의 차별성이다. 농촌 지역의 로컬 콘텐츠는 이처럼 독립서점, 게스트하우스, 커피, 베이커리 등의 도시 콘텐츠, 디저트, 차, 기념품, 식가공 제품과 같은 농산물 콘텐츠, 자연, 문화, 문화시설 등의 생활 콘텐츠로 구성된다.


로컬 콘텐츠 타운이 농촌 지역의 지역소멸 대응 방안으로 중요한 이유는 첫째, 청년 정주 여건이다. 농촌 마을, 특히 읍내나 면소재지는 일정 수준의 도시 콘텐츠를 보유한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전환해야 하고, 농촌 지역 로컬 콘텐츠 타운도 도시와 같이 로컬 상권이 견인해야 가능하다.

 

둘째, 농산물 콘텐츠의 다양화와 고도화다. 현재와 같이 생물의 신선도로 경쟁하는 방식으로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 특산물을 재배지 지역 읍면 소재지에서 도시 콘텐츠로 만들어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한다. 농촌 콘텐츠를 농촌 지역 중심지에 모은 곳이 로컬 콘텐츠 타운이다.

 

2/ 로컬 콘텐츠 타운의 기본 조건도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건축자원, 보행환경, 문화시설, 크리에이터 커뮤니티 등 4가지 조건이 매력적인 상권을 만든다.

 

현재 농촌 마을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이 건축물과 가로다.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건축물과 걷기 좋은 보행로가 콘텐츠를 생산하는 상권, 즉 콘텐츠 상권의 기본 조건이다. 읍면 소재지 콘텐츠 상권도 적절한 수준의 건축자원과 보행 환경을 보유해야 시작할 수 있다.

 

문화자원도 중요한 성공 조건이다. 상권이 자체적으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지만, 자연, 문화재, 문화시설 등 독립된 문화자원과 연결되면 콘텐츠 생산이 용의 해진다. 자연과 농업을 활용할 수 있는 농촌지역이 건축물과 인공적인 문화시설에만 의존하는 도시보다 풍부한 문화자원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건축, 보행, 문화 자원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이런 자원을 활용해 로컬 콘텐츠를 생산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특히, 농촌 콘텐츠를 공간 비즈니스로 구현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농촌 지역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로컬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고 커뮤니티를 지원해야 한다.

 

자연 마을 형태의 로컬 콘텐츠 타운을 조성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테마파크형 콘텐츠 단지를 조성할 수 있다. 로컬 콘텐츠 타운은 이렇게 마을형, 단지형 등 두 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로컬 콘텐츠 타운이 과연 농촌 지역에서 가능할까? 도시만큼 큰 규모의 상권은 어렵지만, 2-30개의 공간이 모인 작은 상권은 가능하다. 월정리, 사계리, 종달리 등 제주의 수많은 리단위 마을뿐 아니라 양양군 현남면 죽도해변, 홍성군 홍동면 갓골마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완주시 고산면 읍내리, 충주시 노은면 신효리 등 많은 농촌 마을이 골목상권 업종을 보유한 작은 상권으로 관광객을 유치한다.    

 

3/ 물론 모든 읍면 소재지가 로컬 콘텐츠 타운 사업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 자연마을형, 단지형 로컬 콘텐츠 타운을 다수 배출한 일본 사례는 디자인, 장인정신 등 크게 두 가지 성공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가 건축디자인의 힘이다. 농촌 지역 주택과 상가 건축물이 상대적으로 우수하고, 농촌 지역 상점이지만 포장, 포스터, 인테리어, 건축 등 도시 못지않은 디자인 실력을 보여준다. 디자이너 창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창업자의 디자인싱킹이 중요하다. 일본 도쿠시마현 인구 1,000 명의 산속 유자마을 기토를 기반으로 직원 600여 명의 지역 재생 기업을 키운 기토디자인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유자 생산과 가공, 게스트하우스, 편의점, 캠핑장, 스포츠헬스, 디저트공방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마을을 디자인하는 기업이다. 기토디자인홀딩스라는 사명은 기토를 디자인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두 번째가 장인 정신이다. 일본 로컬 콘텐츠 타운은 공통적으로 한 크리에이터, 한 마을, 한 콘텐츠, 한평생 등 4개의 한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한 크리에이터가 한 마을에서 한 콘텐츠로 한평생 재생하는 것이다. 한 사람만 참여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의 앵커 기업이 로컬 콘텐츠 타운을 주도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4/ 추진 과정에서 대규모로 확충해야 할 자원은 건축과 크리에이터다. 농촌 재생이 도시 재생보다 어려운 이유는 크리에이터를 유인하는 건축 자원의 부재다. 정부가 농촌 공간 정비를 통해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로 만들 수 있는 건축물과 가로를 공급하지 않으면서 크리에이터의 진입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현재 정책 현장에서 논의되는 대안은 건축디자인 지원이다. 서울 연희동에서 단독주택 72채를 리모델링한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는 정부가 동네 건축 마스터플랜을 설계하고 이에 따라 주택과 상가를 리모델링한 건축주에게 건축설계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건축디자인 사업으로 제안한다.  

 

농촌 크리에이터 공급에도 혁신이 필요하다. 막연하게 지역 대학과 학교가 크리에이터를 육성할 것으로 기대하지 말고, 로컬 콘텐츠 타운 예정지에 로컬 콘텐츠 사업화 기술을 교육하는 로컬 콘텐츠 메이커스페이스를 운영해야 한다. 모든 메이커 분야를 지원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간 크리에이터에게 공동적으로 필요한 디자인, 인테리어 공사 기기, 그리고 지역이 특화하는 농산물을 가공하는 기자재 중심으로 메이커스페이스를 구성해야 한다.

 

한국 농촌 상황이 어렵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번도 제대로 활용해 본 적이 없는 로컬 자원을 갖고 있다. 현재 중요한 것은 사고의 전환이다. 농촌에도 크리에이터를 모으는 크리에이터 타운을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지역 재생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제주, 양양도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곳이 각각 예술, 서핑과 결합된 로컬 콘텐츠로 청년이 살고 싶어 하는 로컬 콘텐츠 타운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콘텐츠 기업 화제인이 주관하는 세하나(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투어에서 방문한 '로컬 콘텐츠 타운' 리스트 (2023년 2월) 


1. 카가와현 쇼도시마정 야수다마을 나무통 간장 장인 야마모토 야스오 대표의 야마로쿠간장

2. 카가와현 쇼도시마정 니시무라마을 올리브 가공 장인 모치즈키 야유므 대표의 올리브가든

3. 돗토리현 지즈정 오세마을 천연균 발효 빵 장인 와타나베 이타루 대표의 다루마리

4. 돗토리현 야즈정 하시모토마을 자연 방목 달걀 장인 오하라 리이치로 대표의 오에노사토자연목장

5.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정 관계 인구 유치 장인 오오미나미 신야 대표의 그린밸리 가미야마

6. 도쿠시마현 나카정 기토마을 유자 콘텐츠 장인 후지타 야스시 대표의 미래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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