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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ug 03. 2023

한국 지역발전의 동력은 라이프스타일

라이프스타일 매개론의 가능성


2013년 ‘작은 도시 큰 기업’으로 시작한 지역발전 연구가 마무리되는 것 같다. 모든 연구에서 강조하는 지역발전 동력은 정체성이다. 필자는 그동안 일관되게 지역 발전은 물리적 조건이 아닌 개인과 지역의 정체성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글에서 사용된 단어는 정체성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이다. 필자가 강조하는 정체성은 생활 방식을 바꾸는 정체성, 즉 라이프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글로벌 대기업을 배출한 소도시는 무엇이 다를까? 사례 연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작은 도시 큰 기업’의 비밀은 지역 라이프스타일에서 찾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스위스 네슬레의 브베, 미국 나이키의 포틀랜드, 미국 스타벅스의 시애틀, 스웨덴 이케아의 앨름훌트 등 글로벌 대기업을 배출한 소도시는 하나 같이 지역의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을 사업화했다. 신선한 곡물과 우유를 생산하는 브베에서 식품 회사 네슬레가, 아웃도어 활동이 활발한 포틀랜드에서 아웃도어 브랜드 나이키가, 우중충한 날씨 탓에 커피 문화가 발달한 시애틀에서 스타벅스가, 소박한 농부가 실용적인 가구를 선호하는 앨름훌트에서 조립식 가구 기업 이케아가 태어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의 골목상권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연희동의 보보와 킨포크 문화가 요리, 집 가꾸기, 가드닝, 가구, 뜨개질 등 일상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브랜드를 배출한다. 망원동의 진보적인 1인 가구가 망원동을 제로웨이스트, 페미니즘, 비건 브랜드의 성지로 만들었다. 골목상권 브랜드 원조는 서교동이다. 홍대 지역의 디자인, 인디, 소셜 문화 속에서 독립서점, 디자인숍, 디자인패션, 복합문화공간 등 홍대를 대표하는 로컬 브랜드가 성장했다.


소멸위기를 맞은 지역의 소도시는 다를까? 지역 재생의 성공 사례로 불리는 제주와 양양의 사례를 보자. 이주민과 청년이 추구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생산과 소비문화로 발현, 제주와 양양만의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주와 양양의 라이프스타일은 각각 보헤미안과 서핑이다.


제주와 양양의 성공 과정을 단계별로 정리하면 이런 문장이 가능하다. 제주와 양양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로 시작된 경제 활동을 로컬 문화로 만들고, 이를 골목상권 중심의 로컬 브랜드 생태계로 육성해 성공한 것이다.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개척한 외국의 소도시, 골목상권 브랜드를 개발한 한국의 골목상권도 마찬가지로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 창업자들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로컬 자원을 연결해 대체하기 어려운 로컬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기회를 찾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로 시작된 경제 활동을 로컬 문화로 만들고, 이를 골목상권 중심의 로컬 브랜드 생태계로 육성해야 한다.


학문적으로 더 발전시켜야 하지만 일단 이 가설을 라이프스타일을 매개로 한  지역재생 이론(라이프스타일 매개론)이라고 불러 본다.


라이프스타일, 로컬, 골목길 등 라이프스타일 매개론의 세 개의 키워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골목길이다. 로컬 콘텐츠 생태계 성공 여부는 결국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브랜드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의 유입과 활동에 달렸다. 절대다수의 오프라인 크리에이터는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건축물과 가로가 있는 곳, 한국에서는 원도심 골목지역에서만 활동한다. 건축과 골목 자원이 부족하면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한국 지역의 현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골목길 자본론’은 골목길을 포스트 모던 도시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자본으로 개념화했다. 라이프스타일 매개론은 골목길이 어떻게 기업을 만들고, 기업 생태계를 만드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골목길에서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활동을 골목 문화로 만들고, 이를 골목길 중심의 로컬 브랜드 생태계로 확장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라이프스타일 매개론은 골목길 자본론의 구체적인 작동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는 골목상권과 동네에서 어떤 비즈니스가 가능하고, 머물고 싶은 동네에 어떤 업종과 상권이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반경이 좁혀지고,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늘었다. 상권의 범위도 일자리, 주거시설을 포함한 동네로 확장했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 매력적인 상권뿐 아니라 근거리에서 일하고 생활하면 즐길 수 있는 직주락 센터가 필요하다. 로컬 비즈니스도 이에 따라 업무시설, 주거시설 창업으로 진출한다.   


라이프스타일 매개론이 설득력이 있다면 정부가 할 일은 명확하다.

1. 라이프스타일 다양성과 생활화 지원

2. 라이프스타일 활동의 지역 집적을 통한 로컬 문화화 지원

3. 건축물, 가로, 문화시설 등 건축과 골목 자원 확충

4. 로컬 콘텐츠를 사업화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와 브랜드 지원


그렇다고 정부가 로컬 콘텐츠 타운의 모든 것을 직접 기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맞다. 라이프스타일과 로컬 문화를 결합해 지속적으로 로컬 콘텐츠를 사업화하는 브랜드를 배출하는 로컬 콘텐츠 타운을 지역 재생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할 지역 크리에이터를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로컬 콘텐츠 타운 조성을 위해 정부가 집중해야 하는 사업은 건축자원을 확충하는 건축디자인 지원, 기술 기반으로 로컬 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로컬 콘텐츠 메이커스페이스 운영이다.


지난 20년의 한국 지역 상황을 돌이켜보면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지역재생의 동력이었다. 앞으로도 라이프스타일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 서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가 설명하듯이, 19세기 이후 라이프스타일 혁신이 산업의 변화와 다양화를 이끌었다. 한국의 보다 많은 지역이 라이프스타일 매개론의 구체화와 사업화를 통해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주는 기회를 활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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