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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pr 25. 2018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본질은 지역 문화의 재해석

로컬 트렌드의 큰 흐름 중의 하나가 라이프스타일이다. 전 세계 밀레니얼은 로컬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라이프스타일 샵,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 등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표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산업이 한국에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라이프스타일을 수출하는 라이프스타일 강국이 될 수 있을까? 아직까진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거의 예외 없이 도쿄, 뉴욕, 킨포크, 웰빙, 휘게, 노르딕 등 외국 라이프스타일을 수입하기 때문이다.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소비, 유통, 생산으로 구분한다면, 한국은 현재 라이프스타일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외국산 수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단계에 와 있다.  


한국이 라이프스타일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수입만으론 부족하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독자적으로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수입에서 생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라이프스타일의 '국적'이다. 외국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나 이를 단순 판매하는 리테일러와는 달리,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개발해 국내외 시장에 출시하기를 원하는 생산자는 국적을 따져야 한다. 과연 우리 것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성공적인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서점 매장에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츠타야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지역성   


최근 주목받은 라이프스타일의 대부분이 특정 국가나 지역이 배출한 문화인 사실에서 쉽게 추론할 수 있듯이, 지역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상품화하는 것은 어렵다. 힙스터, 빈티지, 카운터 컬처, 독립문화(인디)는 뉴욕과 캘리포니아, 웰빙, 비건, 그린 라이프스타일은 캘리포니아, 휘게, 라곰, 피카 라이프스타일은 북유럽, 미니멀 심플 라이프스타일은 캘리포니아와 일본에서 시작되고 산업화된 라이프스타일이다.


한국과 중국 소비자가 열광하는 미니멀리즘 브랜드 무인양품은 하라 켄야가 ‘섬세, 정중, 치밀, 간결’로 표현한 일본인의 가치관을 구현한 디자인을 판다. 이케아가 추구하는 실용성과 기능성은 이케야와 창업자가 성장한 스웨덴 스몰란드 지역의 문화다.


한국에서 라이프스타일 열풍을 일으킨 일본 기업 츠타야도 업의 본질과 올바른 삶에 대한 고민, 소비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등 일본 고유의 상인과 장인 문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재해석하는 기업이다.  


이처럼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기업들의 공통점은 지역 문화의 성공적인 상품화에 있다. 출신 지역에서 시장 가치가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발굴하고, 창업가의 경영 철학으로 흡수해 비즈니스 모델을 디자인하는 일. 지역 문화, 개인 가치, 시장 수요가 교차하는 영역에서 혁신적인 소재와 모델을 찾는 일. 지역 문화를 창업 철학과 시장 가치로 재해석하는 일. 이것이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본질이다.





라이프스타일 생산 과정에서 지역성이 중요한 이유는 진정성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 소비자가 체험하고 수용하길 원하는 '진짜' 라이프스타일이다. 라이프스타일 전파의 일반적인 유형도 특정 지역에서 생활화, 산업화가 된 라이프스타일이 해외나 다른 지역으로 수출되는 것이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에서 먼저 상품화된 라이프스타일이 캘리포니아 라이프스타일로 다른 지역에 수출된다. 역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하고 활동하지 않는 기업이 ‘캘리포니아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것에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역성은 또한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지역문화를 공유하는 소비자, 생산자, 전문인력으로 형성된 지역 생태계가 생산하는 라이프스타일 상품은 다른 지역이 쉽게 모방할 수 없다. 타 지역에서 이를 소비할 수는 있어도 생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역성이 반드시 사전적인 조건일 필요는 없다. 한 기업이 특정 라이프스타일의 생산 시스템을 새로운 지역에서 사후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 시애틀의 커피 산업과 포틀랜드의 아웃도어 산업을 사후적으로 지역성 조건을 만족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스타벅스는 시애틀에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카페 문화를 성공적으로 이식했으며, 나이키는 포틀랜드에 다른 지역에서 찾을 수 없는 아웃도어 산업을 만들었다.**


시애틀과 포틀랜드는 역설적으로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지역성이 왜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역 기반이 약한 라이프스타일을 산업화하려면 시애틀의 커피 산업, 포틀랜드의 아웃도어 산업 수준의 거대한 생태계를 건설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이키 중심으로 형성된 포틀랜드 아웃도어 산업 생태계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경영학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지역 문화, 시장 수요, 창업자 가치 기반으로 디자인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성패도 지역성, 지속성, 내재성 등 기본 경쟁력 요소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강화하는 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지역성, 즉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지역 생태계를 구하는 일이다. 로컬 소비를 통해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다른 지역에 수출할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육성할 수 있다. 처음부터 지역에서 생활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해 상품화하는 것이 지역 생태계를 상대적으로 쉽게 구축하는 방법이다. 

  

2) 라이프스타일의 지속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관에 기반한 라이프스타일은 단기적인 유행이나 트렌드와는 다른 현상이다. <물욕 없는 세계>의 저자 스가스케 마사노부는 “패션은, 그 경향이 현저해 강의 흐름처럼 흘러가는 것과 바닥에 침전해서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것이 있다”라고 설명함으로써 유행과 라이프스타일을 구분한다.  


지속성은 지역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라이프스타일이 그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시장에서 장기간 수요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창업 후에는 소비자와 함께 호흡하고 동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많은 마니아, 더 열정적인 팬층을 확보함으로써 라이프스타일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  


3) 라이프스타일을 기업 문화로 내재화하는 일이다. 창업자와 더불어 조직 전체가 기업이 표방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해야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취향을 적극 표출하고 직접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소비의 질적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피상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만족하지 못한다. 생산방식, 기업 내 조직문화 등은 물질주의 시대적 방식에 머무르면서, 라이프스타일을 새로운 마케팅 도구로만 인식하는 기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라이프스타일의 내재화는 궁극적으로 사회와 지역 전체에 탈물질주의의 수용을 요구한다. 1970년대 이후 서구 문화는 물질적 성공, 경쟁, 사회적 지위를 강조하는 물질주의에서 개성, 다양성, 삶의 질을 중시하는 탈물질주의로 전환했다.   

  

탈물질주의 경제는 가치 지향적 소비와 생산 활동을 중시한다. 소비를 통한 질 높은 삶/문화적 체험/정체성/사회정의의 추구, 친환경 상품과 유기농 먹거리의 대중화, 공유경제의 일상화, 골목상권의 부상 같은 움직임은 모두 탈물질주의의 확산을 반영한다. 한국이 선진국 수준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원한다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자기표현, 삶의 질, 정체성 등 그에 필요한 탈물질주의 가치의 수용은 불가피하다.  

 


한국 라이프스타일 산업은 지역 문화에서 시작해야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한국 정부의 과제는 명확하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 문화와 가치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노력을 지원하는 일이다. 해외에서 유입된 라이프스타일을 무조건 배격할 필요는 없다. 외국 라이프스타일도 한국 문화와 융합해 독창적인 라이프스타일 상품으로 재창조할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의 발굴과 재해석에 필요한 한국적 문화 의식과 정체성은 무엇일까? 그 누구도 시원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CJ, 이마트 등 대기업이 한국 라이프스타일 기업을 자처하고 산업계가 한국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도 라이프스타일 테이커(taker)에서 메이커(maker)가 될 수 있다. 

  

지역 문화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소재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미 제주, 부산 등 여러 지역에서 그 '지역 다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도시>는 제주의 자연주의 화장품, 강릉의 커피, 대전의 제과, 홍대 지역의 패션과 화장품을 지역 기반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제시한다.  

  

정부가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본격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하려면 몇 가지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


1) 지역 라이프스타일 산업 현황에 대한 DB의 구축이다. 주민인식조사, 빅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지역의 생활문화(가치관, 관심사, 라이프스타일 등)와 문화 정체성(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인식하는 정체성, 이미지, 브랜드, 장점과 단점 등)을 조사하는 것이다.


2) 지역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혁신적 사업 모델의 발굴이다. 제주의 화장품과 녹차산업, 대전의 첨단과학산업, 부산 신발과 해양레저산업, 포항 철강 문화산업, 강릉 커피산업, 경주 불교산업, 안동 유교 산업, 안산 다문화 산업 등이 1차 대상이 될 수 있다.


3) 지역 라이프스타일 산업 육성의 세부전략이다. 지역별 유망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지정과 지원, 신규 사업의 공모, 잠재적 창업 인력의 훈련과 교육, 지역 라이프스타일 산업 홍보를 통한 관광객 수요 창출 등 체계적인 육성 방안을 구축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삶의 질, 창조적 문화와 기술, 디자인의 융합을 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경제에 부응하려면 새로운 사고방식과 방법을 시도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 개인이 힘을 합쳐 지역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다수의 자생적인 라이프스타일 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창조경제’ 이후에 추구해야 할 새로운 창조경제 모델이다.




*이 글은 2018년 4월 30일 오전 10시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최하는 ‘별별 세미나’에서 발표할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강연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 <작은 도시 큰 기업>은 스타벅스와 나이키가 진입하기 전에도 시애틀에는 커피 문화, 포틀랜드에는 아웃도어 문화가 존재했음을 강조한다. 시애틀과 포틀랜드도 사전적 지역성 조건을 만족한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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