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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ug 05. 2023

인간의 일

AI 논쟁을 지켜보면 지적 혼돈의 원인은 인간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Al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하는데 정작 인간이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은지 논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현재 존재하는 모든 일이 인간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답지 않은 일은 AI와 기계에 맡기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인간다운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한 철학자가 19세기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다. 그는 인간다운 일을 희망이 있는 일로 간략하게 정의한다.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 인간이 해야 하는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모두 희망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어떤 일에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으로 일이 할만한 가치를 갖게 된다” (p181).*


일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세 가지다. 휴식에 대한 희망, 생산물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일 자체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한 희망이다. 일한 후 충분한 휴식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희망, 인간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일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한다. 인간이 이런 점을 고려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먼저 결정하는 것이 기계와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하는 길이다.


세 가지 유형의 희망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감정이 즐거움이다. 모리스에게는 휴식, 사용, 생산 과정에서 모두 즐거움이 따라야 인간다운 일이다. 즐거움과 즐거움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무가치한 일이고 노예의 일인” 것이다 (p183).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모리스의 기준을 만족할까? 모리스에게 가장 인간다운 일은 수공예다. 그 반대로 가장 인간답지 않은 일은 대량 생산 체제의 단순 노동, 그리고 무산계급의 노동으로 부를 유지하는 유산계급의 무위도식이다. 19세기 상황에서 도출한 이 분류가 현재 사회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리스가 왜 중세 수공업을 중시하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모리스는 근대 디자인 산업을 개척한 예술가다. 예술가인 그에게 중요한 가치는 예술적 아름다움이다. 그는 초지일관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고 아름다운 세상은 아름다운 일로만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이 바로 인간이 해야 할 일, 인간다운 일이다.


그에게 아름다운 생산물은 중세 공예품이다. “인간의 독창성으로 그런 작품을 만들어내려면 그것을 구상하는 머리와 직접 주조하는 손과 더불어, 세 번째 요소인 즐거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p20). 그가 중시한 아름다움은 일상과 격리된 일부 천재의 작품이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 구성원과 같이 일상적으로 노동하는 즐거움의 표현이다 (p12).


아름다운 노동과 아름다운 일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사회주의자인 모리스는 사회의 기본 구조를 바꾸는 혁명을 강조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이 주체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된 현대 크리에이터 경제에서 아름다운 일을 위해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리스가 지적한 아름다운 환경의 중요성은 아직 유효하다. 그는 개인의 아름다운 노동은 아름다운 작업장 (p205), 아름다운 주택 (p251), 아름다운 건축물(p252)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p250)에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Al 문제로 고민하는 현대 사회에 주는 모리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가장 인간적인 일을 찾아 그에 집중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적인 일에 가장 근접한 직업은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아름다움을 창출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다. 인간 사회를 크리에이터 중심으로 재편하려면, 더 많은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고 동시에 그들이 활동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플랫폼을 그들에게 유리하게 개혁하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작업장, 주택, 건축물, 도시를 제공해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윌리엄 모리스 산문선, 온다프레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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