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은 도소매, 외식업, 개인 서비스, 운수업 등 업종으로 분류된다. 역할로 분류되지 않는다. 역할이 언급될 때도 진정성이 의심된다. 소상공인을 지역 경제의 실핏줄로 치켜세우는 정도다.
하지만 조금만 관찰하면 소상공인의 역할이 보인다. 첫 번째가 필수형 소상공인이다. 동네에 뿌리내려 동네에 필수 서비스와 사회적 자본을 제공하는 소규모 사업자다. 일반적으로 도소매, 외식업, 개인 서비스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 사업자가 필수형에 속한다. 지역에 커뮤니티 자본을 공급하는 마을기업, 협동조합, 커뮤니티 비즈니스도 필수형 소상공인이다.
두 번째가 크리에이터형 소상공인이다. 지역 자원이나 나다움으로 차별화에 성공해 브랜드로 인식되는 소상공인 기업이다. 전통적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 예술, 콘텐츠, 디자인, 공예 기업, 지역에서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온라인 셀러, 여행자에게 살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관광벤처, 개인 브랜드 시대를 맞아 부상하는 스몰 브랜드, 로컬 브랜드, 로컬 크리에이터,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소상공인 크리에이터다.
세 번째 역할이 앵커스토어다. 동네 거점 기업으로 거점공간, 랜드마크, 유동인구, 주차장, 정체성 등 상권 공공재를 제공하는 앵커 기업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동네 기업이 지역 앵커스토어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역할이 상장형 소상공인의 기업 생태계 지원이다. 소상공인-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기업 생태계는 소상공인 기반 없이는 작동하지 못한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 국가산업과 연계된 소기업이 성장형 소상공이다.
소상공인을 이처럼 역할로 분류하면, 정부의 정책도 역할에 따라 달라야 하는 것을 깨달는다. 생태계 중심으로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면, 필수형, 크리에이터형, 앵커형 소상공인은 그들의 생태계인 상권을 활성화하는 사업으로 지원하고, 성장형 소상공인은 스타트업과 같이 투자 생태계로 지원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재 정부는 소상공인의 필수 서비스 공급, 로컬 콘텐츠 생산, 상권 안정화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소상공인을 금융 지원이 필요한 생계형 소상공인으로 대우한다. 상권 활성화도 마찬가지다. 콘텐츠 생산지로 기능하는 상권의 생산 능력을 높이기보다는, 주차장, 공동 마케팅 등 기존 상인의 매출을 늘리기 위한 인프라 사업에 투자한다.
문화경제 시대가 부상하면서 소상공인과 상권의 기능이 유통 채널에서 콘텐츠 생산으로 변하고 있다. 소상공인 정책을 단순 금융 지원에서 로컬 콘텐츠 메이커스페이스 운영과 건축디자인 지원을 양축으로 소상공인과 상권의 콘텐츠 개발 능력을 높이는 상권 생태계 사업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상권과 동네를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만드는 것이 소상공인 정책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