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목길 경제학자 Nov 14. 2023

영 셸던(Young Sheldon)

영 셸던(Young Sheldon)


기회 있으면 미국 한 달 살기에 도전하고 싶다. 1979년에서 1996년까지 18년을 미국에 살아 미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듣는 뉴스는 당황스럽다. 하이테크 산업의 힘으로 고도성장을 유지한다지만, 사회 기반은 무너지는 것 같다. 정치, 지역, 계층 등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가 악화된다. 대도시는 인종갈등, 공동화, 노숙자, 마약, 범죄 등 온통 나쁜 소식뿐이다.

    

내가 알던 따뜻한 미국 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 도시든 가족 중심으로 성실하게 살면서 자녀를 열심히 교육하는 가족과 동네가 많았다.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지만 내내 불안하다.      


그런데 미국 가족과 사회에 대해 나를 안심시킨 드라마를 만났다. TV 네트워크 CBS가 2017년에 시작해 현재 시즌 7을 방영 중인 과학 천재의 성장기 드라마 ‘영 셸던(Young Sheldon)’이다.      


드라마가 감동적인 이유는 전통가치 존중이다. 초개인주의, 정치적 올바름(PC) 분위기에서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운 대가족, 육아, 공동체, 교회, 소도시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에서 대가족, 육아, 교육, 교회, 소도시에서 행복을 찾는 가족에 대한 드라마를 마지막으로 본 적이 언제일까?    


1. 대가족

천재로 태어난 셸던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어머니 매리는 셸던을 외부의 편견과 질시로부터 보호하고 과학 재능을 살리기 위해 분주하게 활동한다. 셸던뿐 아니라 동생과 형을 키워야 하는 매리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육아 부담이다. 매리의 구원군은 바로 집 앞에서 사는 친정어머니다. 한국에서도 일부 감지되는 3세대 육아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셸던 가족만이 아닌 것 같다. 부모를 부양하고 자녀가 살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뒷마당 별채를 짓는 미국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3세대 근접 생활에서 육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복지제도만 의존하는 한국 사회와 사뭇 다른 모습니다.     


2. 육아

어머니 매리는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할 정도로 자녀 육아에 열정적이다. 한 번도 절망하지 않는 강한 어머니다. 풀타임 주부는 아니다. 교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가족 경제에 기여한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행복이다. 잠시라도 힘든 순간을 보일 법도 한데 항상 행복한 모습이다.


3. 공동체주의

미국의 반지성주의 전통 때문인지 친구와 이웃들은 과학 영재 셸던을 따돌린다. 부러워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매리는 어려운 살림에 부담을 줄 정도로 셸던을 교육을 지원한다. 동시에 다른 자녀들에게 셸던을 우대하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셸던을 대하는 학교와 선생들도 인상적이다. 한편으로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만, 셸던의 우월성을 '쿨하게' 인정한다. 셸던의 태도 또한 감동적이다. 주변 조롱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열정을 굽히지 않는다. 천재도, 일반인도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주의(평등주의)를 실천한다.  


4. 교회

드라마 배경은 기독교가 강한 동부 텍사스 소도시다. 셸던 가족은 독실한 침례교인이다. 매주 주일 예배에 참가하고 저녁 식사 때에는 가족이 손을 잡고 기도를 한다. 과학자 정체성이 강한 셸던은 신을 믿지 않는다. 목사님 앞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논쟁할 정도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과 지역 사회에 팽배한 기독교 문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타락한’ 서부와 동부 대도시를 비판한다.     


5. 소도시

드라마 내내 나타나는 정체성이 텍사스다. 텍사스 남자는 이렇다, 저렇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동부 기준으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수 있으나, 셸던이나 가족 모두 보수적인 텍사스 정신에 자부심을 느낀다. 소도시 정신도 엿볼 수 있다. 특별한 날에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레드 랍스터에 가고, 데이트도 동네 멕시칸 식당에서 한다. 그럼에도 대도시의 화려한 문화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총체적인 위기를 맞았다. 미국에서는 위기가 마약 중독, 범죄, 노숙으로 나타난다면, 한국의 위기 증세는 지역소멸과 저출산이다. 양국 엘리트는 공통적으로 복지의 확대에서 해결방안을 찾지만, 영 셸던이 암시하는 설루션은 가족, 공동체, 종교, 소도시 등 전통가치의 복원이다.      


이중 가족제도의 강화가 제일 시급하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핵가족에서 1인가구로 약화되는 가족제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보조금, 주택, 도시 정책을 통해 3세대 가족이 협력하는 새로운 가족 제도의 확산을 지원해야 한다. 지난 브런치에서 강조한 것처럼 ‘3세대가 모여 행복한 도시’를 조성해야 한다.     


두 번째가 지역 공동체의 강화다. 한국에서는 지역 공동체를 주민단체와 시민단체의 영역으로 인식하지만, 고전적인 지역 공동체 보루는 교회, 학교, 상권이다.  


맥도널드 창업기를 그린 영화 파운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외판원으로 미국의 수많은 중소 도시를 방문합니다. 아무리 작은 읍이라도 그곳엔 꼭 두 가지가 있더군요. 하나는 성조기를 펄럭이는 법원과 다른 하나는 십자가를 세운 교회입니다. 난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법원, 교회와 더불어 황금아치의 맥도널드 매장을 볼 수 있게 할 겁니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도 교회, 학교, 상권의 공동체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과연 교회, 학교, 기업이 지역 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을까?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려면, 지역 기업뿐 아니라 교회, 학교, 도서관, 미술관 등 모든 공적 기관이 지역과 상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방송계가 영 셸던과 같은 가족, 공동체 친화적인 드라마에 눈을 돌리면 다른 사람의 일이 수월해진다. 한국 방송계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