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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04. 2024

윌리엄 모리스와 현대 크리에이터의 친화성

윌리엄 모리스와 현대 크리에이터의 친화성 


현대 크리에이터는 19세기 영국 미술공예운동의 선구자인 윌리엄 모리스의 정신적 후예로 볼 수 있다. 크리에이터의 기원을 모리스에서 찾는 이유는 그와 현대 크리에이터가 공유하는 가치 때문이다. 둘은 공통적으로 예술과 창의성의 중요성, 노동의 즐거움과 자유, 지역 자치와 커뮤니티, 생활예술과 예술적 삶을 강조한다.


하지만 모리스는 예술과 노동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삶과 세상을 재구성하기를 원했다. 박홍규는 '윌리엄 모리스 평전'에서 모리스의 이러한 희망을 “삶을 예술처럼, 세상을 예술처럼"으로 표현한다. 모리스가 모든 영역에서 생활예술을 추구했기 때문에 "모리스의 문학을 생활문학, 그의 예술을 생활예술, 그의 사회주의를 생활사회주의, 그의 유토피아를 생활유토피아(p9)"로 정의할 수 있고 말한다.


크리에이터의 미래 관점에서 주목해야 하는 모리스의 작업은 유토피아다. 그는 '에코토피아 뉴스'에서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어 일상의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장인유토피아'를 인류의 미래로 제시했다.


크리에이터 경제가 현재 추세로 계속 확장하면 결국 크리에이터 중심의 경제, 즉 모리스의 '장인유토피아'와 유사한 경제로 진화할 것이다.  


크리에이터 경제가 실제로 장인유토피아로 진화할지는 현대 크리에이터가 얼마나 가까이 모리스의 철학을 따르는지에 달렸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모리스의 철학을 문화, 경제, 정치, 사회의 네 가지 주요 분야로 나누고, 각 분야를 다시 세부 주제로 세분화하여 각 주제별로 모리스와 현대 크리에이터를 비교할 것이다.



모리스의 정치관

윌리엄 모리스는 산업사회 내의 기득권 구조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그에 대한 대안적 이념을 제안했다. 정치적으로 모리스가 반대한 주요 기득권 이념에는 제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의회주의, 중앙 집중화가 포함된다. 이에 대항하여 모리스는 반제국주의, 생활사회주의, 시민운동, 지방 분권을 강력히 지지했다.


모리스의 반제국주의는 제국주의적 확장과 권력 집중에 반대하는 것으로, 현대 사회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진 이념이다. 그는 제국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지역 사회의 자율성을 억압한다고 보았다. 


생활사회주의와 시민운동에 대한 그의 지지는, 정치가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되어야 하며, 개인과 지역사회가 직접 참여하는 민주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에코토피아 뉴스'의 시민들은 의회 건물을 거름 창고로 쓰면서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의회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표명한다.  


지방 분권에 대한 모리스의 관점은 중앙집중식 권력보다는 자치분권을 지지했다. 그는 자치분권을 통해 지역 단위에 자치와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을 옹호하며, 이러한 자치분권이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커뮤니티 형성을 가능케 한다고 믿었다. 이 분권화된 소규모 창조 커뮤니티가 모리스 유토피아의 기본 공동체 단위다.


현대 크리에이터 운동은 모리스의 이러한 정치적 이념을 상당 부분 계승한다. 크리에이터들은 반제국주의적 태도를 취하며, 중앙 집중화된 권력 구조 대신 지역적, 탈중앙화된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통해 창작 활동을 전개한다. 의회주의와 같은 정당 정치보다는 생활 속에서의 참여적 운동과 시민운동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사회주의에 대한 모리스의 강한 지지와는 달리, 현대 크리에이터 경제에 사회주의 이념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시각은 드물다. 현대 크리에이터들은 지역 사회와의 연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자원 공유와 같은 원칙을 중시하지만, 이를 사회주의적 이념의 필수적 구성 요소로 보기보다는 독립적 창작 활동의 자율성과 연계되는 가치로 간주한다. 이는 모리스가 제시한 정치적 이념이 현대에 재해석되고 적용되는 과정에서 변화된 사회 경제적 맥락을 반영한다.


모리스의 경제관

윌리엄 모리스의 경제관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과 창조성에 대한 깊은 존중에서 비롯된다. 모리스는 산업화 시대가 초래한 지배계급의 과도한 지배, 노동의 도구화, 기계 의존성, 자연환경의 파괴, 그리고 사유재산 제도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보았다. 이러한 문제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사유재산 제도와 이로 인한 탐욕을 사회적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모리스가 이상적으로 여긴 경제 체제는 중세의 장인 경제로, 이 경제 체제에서 노동은 단순한 수단이 아닌 자기표현의 한 형태로 간주된다.


중세시대의 장인들이 조화로운 협력을 통해 창조한 공예품, 건축물, 마을은 모리스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단순히 시각적인 만족을 넘어서 사회적 가치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한다. 모리스는 이를 통해 모든 인간이 예술가가 될 수 있으며, 이상적인 경제 체제는 인간 중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 크리에이터들과 모리스 사이에는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공통된 지점으로 연결된다.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의 창작 활동을 통해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는 모리스가 중세 장인의 이상에서 본 아름다움의 추구와 유사하다.


모리스는 기계 사용이 노동의 도구화와 대량 생산을 초래하여 아름다움을 저해한다고 보았지만, 모든 기계 사용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 노동을 경감하고 인간의 창조력을 증진시키는 기계 사용을 지지했다. 현대 크리에이터들도 기술과 기계를 창조적인 방식으로 활용하여, 모리스가 추구했던 아름다움과 인간 중심의 가치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모리스의 사유재산에 대한 비판과 사회주의적 경제 모델에 대한 지지는 그가 꿈꾼 아름다움이 만연한 사회의 구현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인간이 자신의 창조적 본능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모리스의 경제관은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신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현대에도 여전히 큰 영감을 제공한다.


모리스의 사회관

윌리엄 모리스의 사회관은 그의 시대에 급진적이었다. 그는 사회의 기본 구조인 종교, 가족, 법치, 교육을 기득권 유지의 도구로 보았고, 이에 반대하여 자유롭고 개방된 대안을 제안했다.


모리스는 제도화된 종교가 영적인 생활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개념에 반대했다. 그는 오히려 '원시 도덕적 사회적 책임'과 같은 공동체 문화와 상호 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영성이 종교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p173).* 이러한 관점은 제도적 종교보다는 개인과 공동체의 직접적인 영적 탐구를 강조한다.


가족 구조에 대해서도 모리스는 전통적인 법적 보호와 제약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개인의 자유 의지를 중시하며, 사랑과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로운 결합을 지지했다. 이는 법적이고 제도적인 구속보다는 개인 간의 약속과 합의를 더 중요시하는 접근이다.


법치에 대해서는, 감옥과 법원과 같은 사법기관의 필요성을 부정했다. 사유재산 제도가 폐지된 상황에서는 범죄를 저지를 유인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비판과 평판 손실이 범죄에 대한 충분한 억제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봤다. 형벌 중심의 법체계보다는 공동체의 자정 능력을 신뢰했다. 


교육에 있어서는, 학교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 "지식을 배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무엇이든 익히는 신체적 기능 숙련을 중시했다. 예컨대 수영, 목공, 양털 깎기, 요리, 빵 굽기, 재봉 일 등이다."(p213)* 그가 교육의 본질을 생활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학습 과정으로 보았음을 의미한다. 유년기 교육은 부모가 주도해야 하며, 아이들은 필요에 따라 현장에서 직접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리스의 사회관은 진보적인 가치에 우호적인 현대 크리에이터들에게도 여전히 도전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그의 사회적 비전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중심의 삶을 강조하며, 현대 사회에서 크리에이터의 정체성과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다. 모리스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개혁과 혁신을 추구했으며, 그의 사회관은 인간 중심의 가치와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현대적 논의에 기여한다.


모리스의 예술관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관은 생활예술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는 모든 사람이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일상생활 속에서 예술이 꽃피워야 한다는 신념을 반영한다. 모리스는 엘리트 중심의 예술을 거부하고, 공예 장인과 노동자가 창조적 활동을 통해 예술을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라, 노동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근본적인 인간 활동이었다.


모리스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예술가의 재능이 아닌, 창작 과정과 작업 환경에서 찾았다.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창작하는 것, 즉 자유 의지로 즐겁게 작업하는 과정이 좋은 예술 작품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신념은 모든 창작물이 그 생성 과정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협업의 가치도 모리스의 예술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협력하여 창조된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14세기 고딕 양식을 예로 들며, 이 시기의 건축물이 위대한 건축가의 작업이 아닌 마을의 보통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 탄생했기 때문에 가치 있다고 보았다 (p109).


이러한 모리스의 예술관은 현대 크리에이터 문화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개인과 커뮤니티가 협력하여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모리스가 꿈꿔온 예술의 실현을 보여준다. 커뮤니티와 협업의 중요성은 현대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도 강조되며, 이는 크리에이터의 성공이 단순히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관객, 구독자, 고객과의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모리스의 예술관은 따라서 단지 예술 작품의 창조에만 국한되지 않고, 예술을 통한 사회적, 공동체적 연결과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예술이 인간 경험의 근본적인 부분이며, 모든 사람이 그 창조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모리스의 신념을 반영한다.




지금까지 윌리엄 모리스의 정치, 경제, 사회, 예술에 대한 철학과 그것이 현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분석했다. 현대 크리에이터들이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모리스의 철학을 거의 모든 영역에서 계승하고 있다. 모리스의 급진적인 사회관도 일부 크리에이터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 이는 현대 크리에이터들이 모리스의 정신적 후예라는 주장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 크리에이터가 수용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모리스 가치는 사회주의일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수용하지는 않지만 공유경제, 탈중앙화 등 ‘사회주의적’ 혁신에 대해서는 개방적이다.


제러미 리프킨이 '한계 비용 제로 사회'에서 제시한 공유 커먼즈는 자원의 분배와 접근을 민주화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촉진하는 플랫폼으로, 모리스가 꿈꿨던 공동체 중심의 경제와 사회적 조화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Web3 기술은 이러한 비전을 더욱 확장하며, 크리에이터들이 중앙 집중화된 플랫폼의 제약 없이 자신의 작품을 공유하고, 직접적인 가치 교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을 기반으로 한 이 플랫폼들은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이는 모리스가 추구했던 장인정신의 부활과 창작물의 공유를 통한 공동체적 가치의 실현에 부합한다.


이러한 Web3 기반의 크리에이터 플랫폼은 모리스의 생활유토피아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크리에이터와 소비자는 단순한 경제적 거래를 넘어서, 상호 의존적이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창작물은 단지 상업적 상품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간의 연결고리와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수단이 된다.


모든 크리에이터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크리에이터들이 모리스의 가치관을 계승하고 기술 혁신을 통해 그의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크리에이터와 모리스의 이러한 가치적 친화성을 고려할 때, 크리에이터 경제가 내재적 논리대로 작동하면 궁극적으로 모리스의 유토피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로 진화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참고문헌>

*박홍규, 윌리엄 모리스 평전, 개마고원, 2007

제러미 리프킨, 한계 비용 제로 사회, 민음사, 2014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윌리엄 모리스 산문집, 온다프레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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