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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Feb 14. 2018

더 미룰 수 없는 군산의 사케 산업 육성

GM의 군산 공장 철수로 군산 경제가 또 한 번 휘청거린다. 이제 탈산업화는 군산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됐다. 군산은 대세를 인정하고 새로운 지역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새로운 산업을 백지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이미 형성된 지역 산업을 탈물질주의 경제가 요구하는 산업으로 고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고도화 대상으로 가장 유망한 산업이 바로 군산의 양조산업이다.   


군산이 벤치 마크할 수 있는 도시가 미국의 포틀랜드다. 도시 곳곳에 와인, 맥주, 양주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소규모 양조장이 들어서면서, 양조산업이 도시 경제와 문화를 이끄는 주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때문에 여러 양조장을 방문해 술을 시음하고 구입하는 관광코스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포틀랜드의 독립 양조장들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 동시에 지역 문화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도시가 자랑하는 술이 지역 전통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당연하다. 와인, 맥주, 양주 등은 모두 다른 나라에서 유래한 술 아닌가?


사실 주조로 유명한 도시 대부분이 외국 술로 지역 양조산업을 키우고 관광객을 유치한다. 예를 들어, 보드카의 원산지는 동유럽이지만,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보드카 브랜드를 소유한 나라는 동유럽이 아니 다. 보드카 중 가장 고급으로 평가받는 그레이구스는 프랑스에서, 우리나라 사람도 즐겨 마시는 스미노프와 앱솔 루트는 각각 영국과 스웨덴에서 생산된다.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원산지인 스코틀랜드 에 미국, 아일랜드, 캐나다, 일본 등 다양한 나 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스키가 만들어지고 있다. 권위 있는 위스키 가이드북 <위스키 바이블 2015>가 선정한 Top 5를 보면, 일본 산토리사의 싱글몰트 위스키 ‘야마자키(山 崎) 셰리캐스크 2013’이 최고등급의 영광을 차지했고, 스코틀랜드산은 리스트에 아예 없다.


그럼 왜 유독 우리나라는 포틀랜드처럼 외국 술을 지역 산업 아템으로 잡은 도시를 찾아보기 힘든 걸까? 전통주만을 지역 술로 인정하는 보수적인 풍토 때문 아닐까? 우리나라 도시도 세계적인 보드카, 진, 위스키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전통적으로 만들어 온 술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한국이 전통주 범주를 넘어서 외국 술을 지역 술로 육성하기 위해 나선다면, 현재 가장 유리한 도시는 군산이다. 국내산 사케의 중심지가 군산이기 때문이다.



사케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몇 안 되는 외국 술 가운데 하나다. 롯데주류 군산 공장은 백화수복, 청하, 국향, 설화 등 대표적인 국산 사케 제품을 생산한다. 군산의 사케 생산 역사는 1945년 적산 기업을 인수한 조선양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양조는 이후 백화양조로 개명하고, 1970년대에 백화수복, 베리나인 양주를 히트시키며 굴지의 주류회사로 성장했다. 1970년대 후반 내부 사고와 시장 환경 변화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은 이 회사는 1985년에 두산주류로 매각됐다. 그리고 2009년에 롯데 주류가 두산주류를 인수하면서 군산의 사케 생산은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군산은 이미 사케 생산에 관한 오랜 전통과 기반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케를 지역 브랜드로 내세우지 않고 있다.


롯데주류도 일본 술을 생산한다는 이미지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서인지 사케 마케팅에 소극적이다. 예컨대 백화수복을 차례주로, 청하를 여성주로 브랜하는 등 국내 시장에서 일본산 사케와 직접 경쟁하는 것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왜 이래야 하는 걸까? 군산이 일본식 건물을 새로 건설하면서까지 근대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한국 사회가 일본의 대중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군산과 롯데주류가 여론을 의식해 사케 산업 육성을 자제할 필요가 있을까?


군산 사케가 일본 사케와 경쟁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고급 사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물과 쌀이 중요한데, 일본 전역에서 명품 사케가 생산되는 것을 보면 한국의 물과 쌀로도 경쟁력 있는 사케를 생산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한국은 사케 생산용 쌀을 해외에 수출 있기도 하다. 사케 시장의 미래는 밝다. 이자카야와 사케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초밥, 야키도리, 라멘 등 사케와 같이 즐길 수 있는 일본 요리도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게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을 두고서 정부와 기업이 수입 대체 방안에 무관심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사케 산업을 지역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군산시와 롯데주류의 협력이 중요하다.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협력 사업은 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사케 생산 설비 일부를 도심의 근대 문화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 제안은 회사 이익과도 부합한다. 백화수복과 청하 같은 저가 사케는 차치하더라도, 국향, 설화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공업 단지에서 생산하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 문화 지역에 새로운 사케 양조장 단지를 조성해서 그곳에 새로운 사케 기업의 창업을 유인해야 한다. 사케가 군산의 지역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케를 생산하는 다수의 양조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기 단계에는 양조장 내에서만 술을 판매해도 관광객을 중심으로 충분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산은 근대 문화유산을 비롯한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추고 있다. 지역관광산업에서 지역 술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이미 지역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 잡은 사케를 핵심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외국 음식과 문화에 관대한 요즘 분위기에서 국내 사케 생산을 거의 독점하는 군산이 세계적인 사케 도시로 도약하는 것을 반기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출처: 라이프스타일 도시, 위클리비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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